로이 토마스 베이커(1946 - 2025)
로이의 위대성은 퀸에서 그치지 않는다. 1970년대에 영국을 중심으로 글램-프로그레시브-스페이스 등 하나같이 개성 넘치는 작품에 참여했던 그가 70년대 말엽 뜻밖의 선택을 감행하니 그게 바로 카스의 데뷔작 < The Cars >다. 모델의 함박웃음이 담긴 아름다운 앨범 아트부터 ‘Good Times Roll’과 ‘Just What I Needed’ 같은 웰메이드 아메리칸 파워팝을 수록한 이 수작도 로이 디스코그래피의 하이라이트로 남았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지 퀸처럼 카스와도 < Candy O >와 히트작 < Shake It Up >(1981)까지 동반관계를 이어갔다. 출중한 음악적 능력으로 위저와 미국 아트 펑크 듀오 수어사이드(Suicide)를 제작했던 카스의 중핵 릭 오케이섹의 간택이 대서양 너머 또래 프로듀서의 음악성을 간접 증명했다.
70년대 말 정력적 행보를 선보였다. 카스와 더불어 1980년대 미국 중요한 밴드였던 저니의 1970년대 말 두 작품 < Infinity >(1978)와 < Evolution >(1979)을 맡았고 당대 세련된 아메리칸 하드록의 대명사 포리너의 1979년 작 < Head Games >로 미국 록 시장에 자리 잡았다. 로큰롤이란 테두리만 같을 뿐 비교적 간결한 카스와 장대하고 웅장한 아레나 록을 지향했던 저니, 포리너를 아우르며 스펙트럼과 기술력을 표출했다. 퀸과의 협업에서 얻은 경험치가 두 미국 록 거함에 잘 녹아들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1980년대 양상은 더욱 다채롭다. 둘 다 1982년 발표된 칩 트릭의 < One on One > 실험적 음악 집단 디보의 < Oh, No! It’s Devo > 영국 포스트 펑크/ 펍 록의 자존심 스트랭글러스의 10, 과 헤비메탈 대부 오지 오스본의 1988년 작 < No Rest for the Wicked > 까지. 이미 명장이 된 그에게 다채로운 밴드들이 러브콜을 보냈던 시점이다. 2000년대에도 다크니스의 < One Way Ticket to Hell… and Back >(2005)와 예스의 < Heaven & Earth >로 베테랑의 품격을 떨쳤다.
개인적으로 로이의 2000년 대 작품군에선 스매싱 펌킨스의 2007년도 음반 < Zeitgeist >가 돋보인다. 야망과 욕구로 가득 찬 “호박들”의 중핵 빌리 코건이 최종 결정을 내릴 프로듀서로 아무나 선택할리가 없다. 클릭 트랙(곡의 템포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메트로놈이 녹음된 트랙)과 추가 편집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채 라이브 리코딩을 감행했던 < Zeitgeist >에 1970-80년대 아날로그 질감의 높은 이해도를 가진 숙련가가 필요했고 펌킨스가 “소울메이트”로 칭할 만큼 친근감과 존경을 표했던 로이가 적격이었다. 1995년 얼터너티브 록 걸작 <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와 같은 24트랙 테이브 리코더를 사용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음악색을 하나로 규정하긴 어렵다. 팔레트에 놓인 여러 물감처럼 특정 밴드엔 그들의 음악에 맞는 물감을 고르는 게 프로듀서의 몫이며 로이의 팔레트는 풍성했다. 영국의 도전적인 록 집단과 결탁했던 1970년대 초반과 퀸의 절정기를 피웠던 1970년대 중후반, 카스와 저니 같은 미국 특급 록밴드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지평을 넓혔던 1980년대까지 그의 영향력은 계속됐다. < A Night at the Opera >와 보헤미안 랩소디의 전설을 함께햿으며, 그 이외에도 산더미같이 좋은 작품이 많았던 영국 음악인 로이 토마스 베이커를 기억하고, 추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