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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와 관객 모두에게 선물같은 시간

정원영 밴드 단독 공연: Homecoming

by 염동교

공식 셋리스트의 마지막 곡 ‘우린’을 연주할 때 무대 배경엔 정원영 밴드의 추억이 가득 담긴 사진과 영상 모음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아코디언을 비롯해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는 박혜리가 편집한 이 영상을 본 멤버들은 울음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6년 만의 공연은 이렇듯 멤버들에게도 뜻깊고 귀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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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 노랫말에 여운 가득한 ‘순대국’과 비틀스와 비치 보이스를 닮은 ‘가령’같은 후반부 선곡이 반가웠다. 두 곡다 정원영 밴드의 2020년 작 < HOME > 수록곡으로 이번 공연의 포스터와 제목 < HOMECOMING >도 이 앨범을 모태로 했다. 티켓 부스에서 구입한 < HOME > CD엔 다섯 멤버의 사랑스러운 싸인이 적혀있었다. 여건상 언제 또다시 뭉칠지 모르기에 괜스레 내 맘도 뭉클해졌다.


정원영 밴드의 구성원들은 국내 유수의 예술대학을 졸업한 정원영의 제자들로 현재도 각자의 위치에서 음악에 매진 중이다. 20여 년 전 부산 맥주 축제를 따라갔다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홍성지는 시종일관 소울풀한 코러스를 더해줬고, 외모만 보면 “쎈캐”같지만 막상 여리다는 최금비는 ‘Earth Song’에서 블루스 록 보컬을 들려줬다.



얼마 후 윤종신 콘서트에 참여한다는 베이스 주자 한가람은 앵콜곡 ’그냥‘에서 멋들어진 슬랩과 멜로디 연주를 들려줬고 드러버 박은창은 조금 어눌한 말투와 달리 전체적인 에너지 레벨을 높여주는 파워 드러밍을 선보였다. 현재 독일 거주 중인 그룹 메이트 출신 기타리스트 임헌일을 염두에 두고 가사 썼다는 ‘기타맨’에서 임헌일의 가창과 솔로잉이 빛났다.


유희열과 김동률, 이적 등 음악가들이 하나같이 입 모아 존경을 표시하는 정원영이라 그런지 몰라도 그의 경력을 훑는 이번 공연에서 외려 후배들의 흔적을 느꼈다. 긱스를 함께 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크게 공통분모가 없어 보였던 이적이 공연 목록 곳곳에 퍼져 있었다. 정원영과 이적 두 사람의 공통분모는 레논-매카트니와 < Rubber Soul >(1965)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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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에 예상치 못했던 ‘가버린 날들’이 들려오자 정원영과의 2023년 4월 인터뷰가 떠올랐다. 갓 리이슈된 1993년 정규 1집 LP와 고가에 구매한 “쉼” 바이닐에 받은 싸인과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몽크를 동경한다던 그의 이야기까지. 못내 최애곡 ‘다시 시작해’까지 기대했지만 대신 1998년 정규 3집 < Young Mi Robinson >의 ‘그냥’을 후반부에 선물했다. 아! 이 음반 오프닝 트랙 ‘Dugout’과 2018년 ‘Table Setters’에서 드러나듯 그는 더 클래식 김광진처럼 야구광이기도 하다.


공연이 끝나고 잠시 그와 인사를 나눌까 고민했다. 혹시 나를 기억해줄까, 어떤 인사를 전해야할까 머릿속 상상이 피어났다. 윤일상과 조정치 같은 뮤지션들을 보고 이내 자신감이 홀쭉해졌다.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시간도 많이 걸릴터였다. 대신 SNS에 이런 글을 남겼고 감사하게도 음악가가 스토리 리그램으로 화답했다.



“밴드를 사랑합니다” 말미에 정원영이 건넨 한마디. 많은 이들이 솔로 시절 ‘가버린 날들’과 ‘다시 시작해’ 속 세련미를 기억하지만 약관에 실험적 연주를 들려줬던 “쉼”과 수퍼그룹 “긱스”, 제자들과 함께한 “정원영 밴드”까지. 밴드 음악을 향한 순정이 동료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정원영 밴드의 다음 공연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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