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재즈페스티벌 2025 1일차
기분 좋은 만남과 순간으로 가득찬 서울재즈페스티벌 2025 1일차였다. 광활한 후지산 배경으로 1시간 세트를 연출한 영국 재즈의 기수 유세프 데이스의 공연이 “십분의 전율”을 안겨줬다. 예매내역을 입장팔찌로 교환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서 딱 10여분 밖에 못 본 게다. 나중에 꼭 단콘을 보고플만큼 짜임새 넘치는 연주로 이뤄진 고밀도 10분이었다. "이 영상 보내줄 수 있니?" 유세프가 DM을 보내왔길래 서면 인터뷰를 제안했지만 아직까지 답변은 못 받은 상태.
퓨전 재즈 마니아로서 기대감을 품었던 스나키 퍼피는 못내 아쉬웠다. 4명의 금관악기 연주자를 비롯한 10명의 연주자가 구현한 소리가 풍성했으나 솔로 구간이 타이트하지 못하고 늘어졌다. 엔지니어와 소통이 덜 되었는지 전반적인 음향도 아쉬웠다.
현재 가수 이상은의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는 어느 베테랑 세션은 스나키 퍼피의 리더 마이클 리그를 예시로 “리더가 B급이면 다른 구성원들도 B 혹은 C급이 되어버린다. A급을 알아볼 안목이 없거나 자기 보다 고능력을 포용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B급 리더론을 설명했다. 재즈와 훵크(Funk), 월드비트를 아우르며 20여년간 5개의 그래미 트로피를 수확한 스나키 퍼피에게서 사뭇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스타 세션 집단이란 측면에서 유사한 볼프펙에 비해선 아카데믹하고 침착한 연주를 들려주는 스나키 퍼피 두 개 콜라보 무대에서 상기한 아쉬움을 극복했다. 한국 퓨전 재즈 밴드 JSFA(Jazz Snobs Funk Addicts) 일원이자 스카키 퍼피의 첫 키보디스트였던 이지영의 리드미컬한 연주에 마이클 리그가 벅찬 표정으로 반응했던 순간. 게임음악처럼 깜찍한 건반 연주하는 일본 출신 피아니스트 빅유키도 존재감을 발산했다.
스탠딩 존에 어느 관중이 베이스 들고 있길래 “위험할텐데. 반입을 제한해야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퍼피의 베이스주자가 나서서 “네가 들고 있는 베이스로 연주해볼까?” 제안하는 광경을 보니 아마 매 공연에 이어지는 관행아닐까 한다.
첫째날 최고의 순간은 역시 레이(RAYE)였다. 2024년 브릿 어워드에서 “올해의 아티스트”와 “올해의 음반” 포함 6개 부문을 휩쓴 “영국 팝계 최대어”는 이번 서재페 무대에서 왜 그가 대세일 수밖에 없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초반부 작게 들렸던 마이크 음량 빼곤 흠잡을데없던 70분은 2023년 화제작 < My 21st Century Blues >을 통째로 경험하는 좋은 기회였다.
연기와 같은 가창의 ‘Oscar Winning Tears’와 래퍼 070셰이크가 참여한 강력한 알앤비-힙합 ‘Escapism’ 등 뮤지컬 혹은 영화적 연출이 이어졌다. 제임스 브라운의 고전 ‘It’s a Man’s Man’s Man’s World’ 커버도 인상적이었고. 함께한 음악 유튜버는 < My 21st Century Blues >을 작년 한 해 가장 많이 들었다며 “곧 글래스톤베리 헤드라이너로 서지 않을까요?” 과감한 예측도 내놓았다.
주술적인 착장과 거대한 체구로 위풍당당하게 등장한 카마시 워싱턴은 외양만큼 카리스마 넘치는 퍼포먼스를 이룩했다. 기본적으론 전위적인 아방가르드 재즈와 프리 재즈가 주도적이었으나 웨스트코스트의 전설적인 프로듀서 디제이 배틀캣과 베이시스트 마일스 모슬리의 조합에선 재작년 로버트 글래스퍼의 힙합 내음을 상기했다. 아버지 리키 워싱턴의 플루트 연주도 특별했으며 애니메이션 < 카우보이 비밥 > 사운드트랙으로 본인이 직접 만든 ‘Lazarus’도 서재페 2025만의 특권이었다.
워싱턴의 여운을 뒤로 하고 SPARKLING DOME(KSPO DOME)으로 향했다. 미국 팝록 밴드 레이니의 미남 프론트퍼슨 폴 제이슨 클라인의 열창에 여성팬들이 함성으로 화답했다. (동행인은 내내 지루한 표정이었지만) 국내에서도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트렌디한 이 팀이 궁금했다. 작년 헤드라이너였던 라우브와 함께한 ‘Mean It’과 피날레를 장식한 화끈한 ‘XXL’를 비롯해 한국이 사랑하는 히트곡 ‘Malibu Nights’와 ‘ILYSB’까지 90분 세트로 단독콘서트급 레퍼토리를 가져갔다. 레이니 팬들에겐 선물 같은 시간. 웹진 IZM에 이들의 2021년 작 < gg bb xx >를 리뷰했기에 ‘dna’와 ‘ex I never had’, ‘dancing in the kitchen’같은 킬링 트랙을 확인하고 싶었다.
높은 표값의 진입 장벽을 지적받는 서재페지만 그에 걸맞은 라인업을 올해도 성공했다. 재즈 쪽이 눈에 띈다. 영국 출신 드러머 유세프 데이스와 카마시 워싱턴처럼 재즈 신을 이끌어가는 주역들과 썬더캣, 제이콥 콜리어 같은 퓨전 계열의 아이콘이 라인업 중심축으로 기능했다. 칙 코리아와의 협업으로 그래미를 수상했던 미국 명품 밴조 연주자 벨라 플렉, 클래시컬 뮤직을 아우르는 브라질 피아니스트 엘리아네 엘리아스 등 재즈 골자가 단단했다.
대단한 팀들이 서로 타임테이블이 겹쳐 하나를 미처 다 못 보고 여러 스테이지를 왔다갔다해야 했던 유럽 대형 페스티벌에서의 경험. 어쩌면 그 즐거운 압도감과 행복한 압박감을 주는 축제가 올림픽공원의 장소적 이점과 더불어 국내에선 서울재즈페스티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어차피 “재즈”라는 타이틀을 계속 가져가야 한다면, 고가 티켓 정책을유지해야 한다면 이런 화려한 라인업과 인스타그래머블한 이벤트로 “국내 최대 국제 음악 축제”의 기조를 이어나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