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김수철, 소리그림"
수십년간 그려온 10000여점에서 160-70점을 추렸다는 전시 개요에 시선이 멈췄다. 그 많은 작품을 언제 다 그린 것일까. 잠깐 리버풀 도심의 어느 갤러리에서 배우 조니 뎁과 밥 딜런의 그림 몇 점, 도쿄 하라주쿠의 유니버설뮤직 팝업에서 롤링스톤스의 기타리스트 로니 우드의 회화를 본 기억이 스쳐갔지만 이내 국가대표 예술가에게로 정신이 집중되었다.
자전적 에세이 < 작은 거인 김수철의 음악 이야기 >가 품었던 “예술에 의한 예술을 위한, 예술의” 사나이는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3월 29일까지 열린 "김수철, 소리그림"에 오롯이 살아 있었다.
추상회화가 주를 이뤘고 혼합 재료를 활용한 실험적 콜라주도 돋보였다. 광산에서 흘러나온 은빛 액체가 소리의 파형을 암시한 듯한 “소리탄생 27”과 커다란 붓의 획으로 소리의 양감 혹은 부피감을 표출한 듯한 “수철소리 13”은 작가의 의도를 곱씹는 맛이 충분했다. 큰 코의 단순한 얼굴 형태가 왠지 모르게 익살맞은 “자기얼굴1”과 정신없는 획에 조그만 눈알을 두 개 붙여 놓은 “자기 얼굴 5”에서 김수철 특유의 해학성이 나타났다.
여러 종류의 혼합 재료에 사방팔방 퍼져있는 선과 형으로 난장판 혹은 아수라를 표현한 “소리탄생”은 소리 탄생 과정의 비선형성과 비정형성을 알렸고, 스페인 입체주의 화가 호안 미로처럼 한눈에 의미를 간파하기 어려운 도상들이 나열된 “소리탄생 44”과 도상이 간결하게 응집해 있는 “자기얼굴 14”는 호안 미로를 상기했다. 푸른색과 주홍색을 가로로 넓은 캔버스에 쭉 펼쳐 놓은 듯한 그림은 명상적 분위기에서 김환기가 떠오르기도.
직관적으로 음악과 연결되는 작품도 더러 있었다. VHS 테이프 속 자기 테이프를 한껏 풀어헤쳐 김수철 특유의 자유분방함을 드러낸 “자기얼굴 13”과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붐이 인 LP와 바이닐을 형상화한 듯한 “수철소리 14”는 영화배우와 작가, 화가의 다채로운 정체성 중에서도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음악가 김수철”을 상기하기에 충분했다.
바로 뒤에 전자 음악가 원오트릭스 포인트 네버의 공연이 있는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외려 특별한 순간도 찾아왔다. 현재는 1952년 설립된 국내 굴지의 음반사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근무하는 젊은 청년이자, 고전 가요에 관해 깊은 애정과 지식을 갖춘 김민준 씨를 우연히 만났다.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서로의 근황을 주고받고 향후 오아시스의 계획도 들을 수 있었다.
지하철 타러 부리나케 전시장을 빠져나가는 터, 멋진 블레이저 차림의 김수철과 만났다. 달콤한 전화위복. 그와 똑 닮은 큰형님 내외가 전시회 마지막 날을 축하해주러 찾아온 모양. 잠깐이나마 인사드리며 IZM에서 인터뷰 진행 및 음반 리뷰를 썼다고 말씀드렸다.
“수철의 수절”. 몹쓸 운율이지만 이런 말이 입에 맴돌 만큼 인생을 예술혼으로 가득 채운 사람. IZM 인터뷰와 공연 관람, 전시회에서의 조우까지, 약소하게나마 이 불세출 예술가와의 인연을 맺게 되어 그저 감사한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