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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Jan 06. 2022


장소성이라는 것.

종로 3가 서울아트시네마에 작별 인사를 건네다.

장소성: 한 장소에서 드러나는 특별한 성격.

나 또한 장소성이란 말을 가끔 써왔지만, 그것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다. 디자인이나 크기 같은 표면적인 특성이 아닌 ‘어느 장소에 대해 몸으로 느끼는 무언가’로 상정해왔기 때문이다. 장소성을 실감하려면 해당 장소에서 아주 결정적인 순간을 갖거나 그곳에서 오랜 시간 끈끈한 정을 쌓아야 할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에게도 그런 곳이 있다.


종로3가 서울극장에 몸을 의탁한 서울아트시네마. 특별히 멋진 실내장식을 가진 것은 아니다. 작은 라운지에 들어서면 그간 열렸던 프로그램의 포스터가 쫘르륵 붙어있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들어가는 문 기준 왼쪽 면엔 스크린과 키노 등 옛날 한국 영화 잡지들과 접하기 힘든 영화, 영상 관련 전문 서적이 한가득 꽂혀 있다.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숨 쉬는 기분이다.



종로3가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관은 단 하나다. 내 생애 그토록 많이 찾은 상영관이 앞으로도 있을까? (음, 생각해보니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가 이전하지 않는다면 기록을 깰지도 모르겠다) 유치하지만 몇 번이나 방문했는지 세보고 싶어진다. 정확한 수치를 아는 건 어렵겠지만 언젠가부터 지류티켓을 모아왔으니 그것들을 바라보며 ‘이런 영화를 봤었구나’라는 추억에 빠질 것이다.



영화 시작 시각에 맞춰 입장하는 편이라 숨을 돌리고 나면 서울아트시네마의 시그니쳐 영상이 흘러나왔다. 그 멜로디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벌집의 정령> 속 아나 토렌트의 어딘가를 응시하는 맑은 얼굴. 많은 예술영화 극장이 그런 것처럼 여기도 크레딧이 다 오른 후에 불이 켜졌다. 어찌 보면 지루할지도 모르는 그 시간이 영화의 여운을 머금어 극장 문을 나서서까지 잔상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크레딧은 상영관 안팎을 영화로 이어주는 소중한 매개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수많은 영화와 시네토크를 꺼내긴 버겁다. 어떤 식으로든 자잘한 기록으로, 머릿속 흩어진 조각들로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회고전 혹은 특별전 형식으로 연속성 있게 본 영화의 리뷰를 작성했고, 나름의 특집으로 기획한 적도 더러 있다. 때를 놓쳐버린 글귀들을 다시 꺼내어 조립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가도, 언젠가 재조명하여 서울아트시네마의 추억을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고픈 마음도 든다.



극장엔 보통 지하철을 타고 갔다. 상대적으로 외진 강동구 쪽에 살지만 5호선으로 한 번에 종로3가까지 간다는 이점이 있다. 지하철에서의 3~40분이 아까워 독서, 넷플릭스 영화 감상 등 여러 가지를 해봤지만 역시나 조는 게 최고다. 알람 없이도 왕십리 즈음에서 자동으로 깨어나는데, 20분 정도 졸고 나면 정신이 맑아져 영화 보기에 최적화된다. 서울극장 옆엔 군밤, 오징어, 계란빵 등을 파는 노점 두 개가 날마다 온기를 뿜어댔고 그 따땃한 공기가 내 뺨을 수없이 스쳐 갔다.


아무래도 극장을 들어설 때보다 끝나고 난 후의 기억이 풍부하다. 짧으면 90분 길면 3시간의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면 날이 이미 저물어버리기 허다했다. 웬만하면 바로 귀가했으나 너무 허기가 지면  ‘나름 단골’이라 할 수 있는 생선구이 집에 가거나 조금 더 걸어 광장시장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영화 감상 – 레코드 가게 구경 – 육회비빔밥은 나만의 행복 코스였다.



서울아트시네마가 없어진다는 소식이 마음을 긁어왔다. 그리 넓지도 않은 상영관에 소규모 라운지, 몸을 의탁한 서울극장은 미로처럼 어지러웠고 한기와 서늘함이 감돌았지만 수많은 나의 시간이 이 장소에 묶여있지 않는가. 다른 사람 과대화를 나눈 것도, 뇌리에 선명한 순간이 남은 것도 아니지만 영화를 마주하려고 했던 반복적이고 일률적인 행동들이 거기에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확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어느 곳에 둥지를 틀든 응원의 마음은 변치 않을 것이다. 새로운 시작에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종로3가에서의 서울아트시네마는 끝났고 나와의 인연도 과거시제로만 남게 되었다. 적어도 일주일 한번 방문하던 습관이 없어질 테니 몸 한구석이 허할 것 같은 기분이다. 나에게 물리적인 장소성을 체감하게 해준 종로3가 서울아트시네마, 잊지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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