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의 취향이 담뿍 반영된 을지로4가역 레코드 샵을 찾았다.
정확히 언젠지는 기억 안 나지만 2~3년 전에 세운상가 내부 레코드 샵들을 구경했다. 종로좌판은 판들의 상태가 좋았고 탐나는 1960~70년대 한국 음반이 많았다. 그러나 밀려오는 가격의 압박.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돌아오리’라는 클리셰를 되뇌며 문밖을 나섰다. 그다음 행선지가 미오레코드였다. 작지만 힙한 공간. 접하기 힘든 일본 음반들에 한 번, 음반 우측 상단에 적힌 레이블, 음반 상태, 장르(혹은 스타일)의 꼼꼼함에 두 번 놀랐다.
을지로4가역 근처로 둥지를 옮긴 미오레코드는 여전히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프런트에 놓인 2대(혹은 3대)의 턴테이블과 한구석에 걸린 티셔츠, 소품들이 곳곳에서 센스를 발휘하며 사장님의 취향을 담뿍 반영했다.
들어가는 문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태국, 베트남, 자메이카 등 아시아 음반이 있고 오른쪽엔 더욱 많은 양의 바이닐들이 록, 디스코, 시티팝의 이름을 달고 자태를 뽐냈다. 유독 소울,재즈 기반의 음반이 많아서 이쪽 분야의 팬들에게는 아주 좋은 디깅 플레이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일본어가 들린다.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손님들은 주인장과 안면이 있는 듯했고 일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 미오레코드의 주인장은 일본인. 하지만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고 친절하시니 지레 겁먹지 말 것.
금방 두 명이 더 들어왔다. 한적했던 내부가 금세 체온으로 더워졌다. 다른 손님과 달리 턴테이블을 구매하려고 온 듯한 이들은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냈고 주인장은 한결같이 친절하게 답했다. 그들은 전문적인 디제잉보다는 카페나 뮤직바에 둘 제품을 찾고 있는 듯했다. 아무쪼록 그 두 여인과 주인장 모두에게 윈-윈하는 결과가 나왔길 바란다.
록과 시티팝 등 다양한 스타일이 앨범이 구미를 당겼지만, 유독 소울, 재즈 기반의 음반이 많았다. 1950~70년대를 관통하는 소울 재즈, 재즈 펑크(Jazz Funk) 팬이라면 미오레코드를 들려 볼 것. 지금 딱 머리를 스쳐 가는 건 해먼드 오르간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미국의 재즈 오르가니스트 로니 스미스. 미오레코드는 로니 스미스처럼 통통 튀고 신나는 음악을 다량 보유했다.
한참을 고민했다. 처음 눈독 들인 건 음반 커버에 적힌 활자조차 해독 불가능한 태국/말레이시아 작품들이었다. 거기서 두세 장 고를까 생각하다 왠지 모르게 ‘막상 들었을 때 별로인’ 리스크가 걱정되어 코끼리의 살거죽이 그려진 압도적인 음반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다음엔 자석처럼 소울/재즈 코너로 끌려갔다. 맥코이 타이너, 지미 맥그리프 같은 뛰어난 건반 연주자가 보였다. 아 건반이란 악기가 재즈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가. 빌에반스같이 섬세하고 감수성 넘치는 피아노 연주부터 해먼드 오르간을 유행시킨 지미 스미스의 펑키한 주법, ‘Chameleon’에서 펜더 로즈의 매력을 극대화했던 허비 행콕까지. 사설이 길었다.
비브라폰의 거두 게리 버튼이 보였다. 비브라폰은 악기 몸통이 진동하며 음색을 내는 체명악기의 일종으로 커다란 실로폰 같은 모양새. 특유의 영롱한 소리에 중독될지도 모르니 조심할 것! 팝과 록, 블루스와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 레이블 RCA 레코즈를 통해 1967년 발표했던 <Duster> 를 찾았다.
라인업은 짱짱하다. 버튼을 리더로 해 독보적인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래리 코리엘과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로 전향한 최초의 더블 베이스 연주자 중 한 명’이라는 스티브 스왈로우까지. ‘최초의 재즈 퓨전 앨범 중 하나’로 꼽힌다는 본작을 들을 생각에 벌써 설렌다.
정체성 분명한 레코드 샵을 만나는 건 언제나 즐겁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특색은 대부분 주인장에 의해 결정된다. 음악에 대한 안목과 친절함을 두루 갖춘 사장님 덕분에 미오레코드는 작지만 내실 있는 공간이 되었다. 끌리는 음반을 바로 틀어볼 수도, 느낌 있는 후드 티셔츠를 살 수 있으니 을지로를 지나는 바이닐 마니아들이라면 한 번쯤 들러볼 만한 곳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