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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동교 Jan 20. 2022

배철수의 음악캠프 x 오드 리스닝룸

전통의 라디오 프로와 현대적 감각의 사운드 편집숍의 콜라보레이션 

‘인생 라디오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어떤 정답이 나올까? 몇 가지 후보가 떠오르지만, 답은 명징하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1990년 3월 19일에 시작한 이 유서 깊은 프로그램은 햇수로 33년이 된 대한민국 대표 팝 음악 방송이다.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내내 듣지는 못하더라도 여유가 생기면 첫 번째로 찾게 되는 방송.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운드플랫폼 오드(ODE)의 편집숍 리스닝 룸(Listening Room)과 음악캠프가 콜라보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마침 1월 12일 수요일이 행사 종료일이길래 잽싸게 여의도 현대백화점에 다녀왔다. 신촌에서 출발, 서강대교를 건너가는 길은 아름다웠지만 대신 무지하게 추웠다. 콧물과의 전쟁.



도착한 여의도 현대백화점은 삐까뻔쩍했다. 목적지가 명확해 바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니 여러 상점이 눈에 띄었다. 젊은이들이 좋아할 법한, 소위 말해 힙한, 미국 혹은 유럽처럼 꾸며놓은 가게가 많았다. 연신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저 위 어딘가 천장에서 나오는 ‘백화점 음악’이 아닌 내 키와 동일 선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음파였다. HEIGHTS는 바이닐과 의류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편집숍이었다. 느낌만 주려고 몇 장 가져다 놓은 줄 알았던 바이닐 섹션이 의외로 컸다.



소울, 훵크와 신스팝에서 요트 록까지. 군침 흘리는 작품들이 줄을 이었다. 장르와 레이블, 출시연도 표기가 잘 되어있었고 음반 상태도 좋았으나 이상하게도 모서리가 잘려있는 제품이 많았다. 아쉽게도 그런 녀석들은 불합격.


헉 소리가 나온 음반이 있었다. 대니 윌슨(Danny Wilson)의 1987년 작 . 솔로가 아닌 스코틀랜드 출신 밴드 대니 윌슨은 프랭크 시나트라가 출현한 에서 따왔다. 그러니까, 데뷔 앨범과 영화의 이름이 같다. 예전에 멜론에서 어느 컴필레이션(아마 1980년대 뉴웨이브 모음집으로 추정)을 들었는데 거기에 수록된 ‘Mary’s prayer’와 ‘Davy’에 꽂혀버렸다. 한국서 음반으로 만나기 매우 어려울 것 같은 작품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한 장을 더 골라야 하는데… 후보군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미국의 소울 뮤지션 조 텍스나 소울 그룹 임프레션스의 보컬 출신 르로이 허슨의 음반 등. 그 와중에 커버에 큼지막하게 얼굴을 들이민 한 사나이 안드레 사이몬이 보였다.


미네아폴리스 사운드를 조사하다 알게 된 이 아티스트는 58년 개띠로 마이클 잭슨, 프린스와 동갑이다. 알고 보니 프린스 & 더 레볼루션 조직 이전 프린스의 투어 밴드에서 베이스를 연주했다고. 프린스가 제공한 ‘The dance electric’으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까지 올랐으니 여러모로 인연이 깊다. 콧수염도 그렇고 생긴 것도 비슷하다. 나는 US R&B 차트 31위까지 오른 1985년 작 <AC>를 구매했다.


헌칠한 종업원분께 ‘여기는 분점인가요?’ 여쭤보니 합정동 쪽에 본점이 있는데 외려 레코드는 별로 없다고 답해줬다. HEIGHTS에서의 구경을 마치고 목적지인 리스닝룸으로 향했다. 리드미컬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턴테이블 위 레코드는 하염없이 회전 중. 중심에 배철수 아저씨의 사진이 보이고 양옆엔 의미심장한 내용의 손글씨 대본도 있었다. 더불어 독특한 턴테이블, 오디오 시스템이 유명한 음반과 매칭되어 멋들어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직사각형의 아기자기한 모양의 턴테이블은 혼네의 (아따 제목 길다. 분량 잡아먹기?)와 조화를 이뤘고, 투명한 본체로 유명한 스웨덴의 브랜드 트랜스페어런트의 스피커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사운드트랙 앨범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앨범에 수록된 수프얀 스티븐스의 ‘Mystery of love’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가장 큰 볼거리는 디제이 배철수가 선정한 팝 명반. 음반에 걸쳐진 띠지에 그의 한 줄 평이 적혀있다. 예를 들자면, ‘Crosby, Stills Nash & Young의 일원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이런 좋은 앨범을 발표하다니 님 좀 짱인 듯’ 캐나다의 록커 닐 영의 1970년 작 < After The Gold Rush >를 두고 한 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 Kind Of Blue >를 듣고 감동을 하지 못한다면 재즈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라는 말엔(배철수가 한 얘기는 아니고 누가 얘기한 걸 인용했다) 동의하기 어려웠지만(물론 나는 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전반적으로 재밌는 한 줄 평이었다.



콜드플레이의 2002년 작 (일명 피꺼솟 앨범) 과 함께 리스트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축에 속하는 버브의 가 보였다. 정말 좋아하는 1990년대 영국 앨범이다. ‘Sonnet’, ‘The drugs don’t work’, ‘Lucky man’ 등등 버릴 게 없다. 물론 가장 유명한 건 ‘Bittersweet symphony’. 롤링스톤스의 ‘The last time’의 선율을 따왔단 이유로 표절 시비에 휘말린 이 곡의 저작권은 결국 믹 재거/키스 리처즈에게 돌아갔다. 버브의 리더 리처드 애쉬크로프트는 ‘스톤스가 수십 년 만에 히트곡(Bittersweet symphony)을 냈군’이라며 뒤끝을 보였다.


리스닝룸에서 레코드를 구매하지는 않았다. 이미 HEIGHTS에서 돈을 썼고, 이미 CD로 많이 있는 리이슈 반들이 고가를 지불한 만큼 끌리지 않았다. 그래도 음악과 관련된 멋진 콘텐츠를 담뿍 눈에 담고 갔다.



어쩌면 자기가 좋아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점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이 들려주는 음악은 비효율적일지 AI시스템이 취향에 따라 맞춤분석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하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라디오처럼 여러 가지 취향의 음악을 연속성 있게 접하는 매체가 있을까?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라디오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도 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들으며 매일같이 새로운 곡을 만난다. 청취자들의 취향, 디제이와 라디오 작가의 안목이 만나 탄생한 선곡표는 말라버린 줄 착각했던 금맥이다. 이번 콜라보를 통해 다시금 매일 기댈 두 시간이 있음에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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