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캐롤>은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연출로 마니아를 양산했다. 물기 어린 화면을 일컬어 감독 토드 헤인즈는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의 영향력을 언급했다. ‘타고난 영화 예술가 헤인즈에게 영감을 준 사진은 누구의 손에서 탄생했을까?’ 라는 궁금증에 날 좋은 4월 서울 회현동으로 향했다.
그가 포착한 뉴욕 풍경은 프레임 종종 불완전해 보인다. 엉뚱한 물체가 대상을 가리고 피사체가 흔들리듯 찍혔다. 최근에 롯데뮤지엄에서 본, 완벽하게 연출된 알렉스 프레거의 사진과는 상반되지만 레이터 사진의 매력은 우연에서 나온다. 어쩌면, ‘완벽한 구도에 너무 구애받지 말렴’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다.
전시회 제목처럼 창문을 투사한 시선이 돋보인다. 레이터는 렌즈가 또 다른 렌즈와 부딪히며 생기는 오묘함에 주목했다. 거울에 분절된 피사체는 입체주의 회화 같고 창문에 번져 흐릿해진 모습은 두꺼운 붓 터치 같다. 거듭 등장하는 우산에서 구스타브 카유보트의 <파리의 거리, 비 오는 날> 이 떠오른다.
그는 계속해서 사진을 찍었다. 노년이 되어서야 위대한 작가로 인정받았고, 앞서 나간 컬러 필름의 사용도 당대에는 가치 폄하 당했다. 누가 뭐라고 하던, 사람들이 알아주지도 않아도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그것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뉴욕에 있던 기간은 3개월이 채 안 되지만 그의 작품을 통해 뉴욕이 그리워졌고 동행인도 뉴욕의 향수를 느꼈다. 경험하지 못한 노스탤지어(Nostalgia). 그와 나는 2010년대의 뉴욕을 거닐었고 레이터는 1950~60년대의 뉴욕을 프레임에 담아냈다. ‘5~60여 년 세월의 차이가 있지만 맨해튼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아’ 동행인이 말했다.
오랜 파트너였던 모델 겸 화가 솜스 밴트리를 담은 사진들과 거울을 활용한 독특한 패션 사진, 사진과 회화를 결합한 듯한 '페인티드 누드',층마다 설치해둔 귀여운 흑백 고양이 사진까지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다.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의 느낌도 참 좋았다. 전시가 끝나고 옥상에 나와 꽃내음 맡으며 유유자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