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겔리스가 세상을 떠났다. 1943년 3월생으로 여든을 못 채운 셈이다. 코로나 19 치료 중 사망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고령의 록스타, 뮤지션들이 세상을 뜨는 게 놀랍지 않지만, 이상하게 그의 죽음이 크게 와닿았고 ‘반겔리스의 음악을 꽤 좋아했구나’ 싶었다.
반겔리스의 어마어마한 경력을 훑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내가 아는 수준에서만 기억에 남는 몇 곡을 추려봤다.
https://www.youtube.com/watch?v=2I7QG12ojg0
전자음악으로 반겔리스를 접한 이들은 ‘이 곡이 반겔리스 노래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그리스의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아프로디테스 차일드의 곡이다. ‘Forever and ever’ 같은 솔로 히트곡도 있는 데미스 루소스의 목소리가 구슬픈 ‘Rain and tears’, 차트에서 큰 성공은 못 거뒀지만, 국내에서 애청된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이 있다. 어렸을 때 왜 봄,여름,겨울 그리고 가을로 순서가 안 맞게 제목을 정했을까? 의아했다.
*어머니는 데미스 루소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털복숭이 외모가 매칭 안 되어 당황하셨다고 한다.
반겔리스의 디스코그래피는 솔로 앨범, 프로젝트, 사운드트랙으로 방대하다. 1975년에 발표한 <Heaven And Hell>은 솔로 경력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LP의 양 면에 ‘Heaven and hell pt. 1, pt. 2 한 곡씩만 수록되어있다. 4부 구성의 ‘Heaven and Hell Part I’는 22분짜리 대서사시로 마치 전자음악 교향곡을 듣는 듯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Hv3qZ8g8rr4
반겔리스의 영화음악은 작품 수는 적지만 하나하나 임팩트 있다. 개인적으로 반겔리스하면 자동반사적으로 연상되는 ‘Conquest of paradise’는 리들리 스콧의 <1492 콜럼버스>에 쓰였는데 영화는 보지 못했다. 스콧의 SF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사운드트랙에선 시사 프로그램에 쓰일법한 ‘End title’과 재즈풍의 ‘One more kiss dear’가 빛난다. 1983년에 BAFTA(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와 골든 글로브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지만,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나온 건 1994년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OP63BRzKmB0
존 앤드 반겔리스는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예스의 보컬 존 앤더슨과의 프로젝트 그룹이다. 이색적인 조합이지만 반겔리스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아프로디테스 차일드로 본격적인 경력을 시작했으니 관심사가 통했을 것이다. 정규 3집 의 수록곡 ‘Polonaise’는 국내에서 사랑받았고 ‘He is sailing’은 예스 느낌이 물씬 나는 록뮤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d1Mve9T4x8U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주제곡 ‘Anthem’을 제공하여 한국과 접점도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8r-dvbPt9o
반겔리스를 좋아하지만 잘 안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 같다. 특히 전자음악의 실험으로 가득한 솔로 앨범들은 아직 반도 못 들어봤으니까. 아이러니하지만, 거장의 죽음은 때론 발자취를 좇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반기는 ‘전자 음향에 파묻혔던' 그리스 거장의 음악을 좀 더 자주 찾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