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개관 20주년 기념 영화제에서 몇 작품을 감상하다.
요즘은 예술영화 틀어주는 곳이 많아서 갈 곳도 많지만 여전히 내 본거지는 서울아트시네마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3개월의 휴지기를 가지고 종로3가에서 광화문~서대문역 사이로 이사했다. 이사한 이후로 진행된 몇 차례의 특별전에서 <장고>, 요나스 메카스의 <행복한 삶의 기록에서 삭제된 부분 >등 다양한 작품을 봤지만, 연속성 있게 하나의 프로그램을 본 건 오랜만인 것 같다. 서울아트시네마 개관 20주년 기념 영화제 - <영화 유산, 공유와 전달>에서 본 6편의 영화를 간단 소개한다.
헝가리의 여성 감독 일디코 엔예디의 <나의 20세기>는 참 독특하다. ‘1980년대 말에 나온 흑백영화’란 것도 그렇지만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내레이션하고, 시퀀스 전환을 할 때 만화적인 기법을 활용하며, 에디슨의 발명을 여성 서사와 관련지었다는 지점에서 그렇다.
어릴 때 안타깝게 이별한 일란성 쌍둥이 릴리와 도라는 한 명은 애국주의자, 다른 하나는 창부가 된다. 각자 다른 삶을 살던 그들은 우연히 재회하게 되고 그 중심에는 묘연한 사나이 Z가 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땐 Z를 테슬라라고 생각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전구와 전보라는 산업혁명의 기술 발전에 두 여성의 인생에 대응해 삶의 방향성을 논하고 있다. 색깔은 다르지만 ‘릴리와 도라 둘 다 잘 살아가고 있어!’라며 응원을 보낸다.
<흑인 소녀>는 세네갈 출신 감독 우스만 셈벤이 1966년에 발표한 영화다. 프랑스 뉴웨이브의 경쾌한 리듬을 따르지만, 내용은 결코 밝지 못하다. 세네갈 다카르에서 유모로 일하던 디우아나는 주인 부부의 권유로 프랑스 휴양지 앙티브에서 일하게 된다. 칸과 니스를 여행하는 부푼 맘을 품고 프랑스에 도착하지만, 다카르에서와 달리 주인집 부부는 디우아나를 하대한다.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지’, ‘난 보모로 온 거지 하인이 아닌데’라는 독백이 반복되며 냉기를 쌓는다. 부부에게 소소한 반항도 해보지만 먹히지 않고 디우아나는 결국 자살을 택한다. 일견 당황스러운 결론이지만 독백과 멍한 표정은 허무주의를 암시했고 꿈의 좌절은 패배감을 증식했다.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니 더욱 안타깝다.
조셉 로지의 <사랑의 메신저>는 부드럽고 우아한 연출로 대가의 솜씨를 입증했다. 유력한 가문의 시골 별장에 놀러 온 꼬마 레오는 맵시 있는 숙녀 마리안(줄리 크리스티)에게 반하고 그녀가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기로 결심한다. 약혼 상대 트리밍엄이 있지만 동네 청년 테드와 사랑하고 있는 마리안. 비밀을 지키느라 고생했던 마리안과 테드는 레오 덕분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요즘에야 거리와 무관하게 의사를 주고받는 게 너무도 쉽지만 그때는 편지를 보내더라도 시간이 노력이 필요했다. 마리안과 테드의 사랑에 사랑의 메신저 레오가 중요했던 이유다. 하지만 어쩌면 이 시간은 레오에게 더 중요했다. 사랑을 배웠고, 아픔을 알았으며 어른이 되어가는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레오는 늙은 마리안의 부탁을 한 번 더 들어주기 위해 그녀의 손자에게로 향한다. 영원한 충심(忠心). 1971년 제24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다.
나머지 세 작품은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