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트시네마 신도 가네토 특별전 - 인간의 기록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한 <신도 가네토 특별전 - 인간의 기록>에서 <원폭의 아이>(1952), <벌거벗은 섬>(1960) 두 편의 영화를 감상했다. 예전에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KOFA에서 관람한 <치쿠잔의 여행>(1977)까지 하면 특별전의 세 편을 만난 셈이다. 세 편으로 작품세계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신도 가네토를 소개하는 마음으로 간단한 리뷰를 써본다.
영화의 줄거리를 금방 까먹는 편이지만 <치쿠잔의 여행>은 선명하다. 하야시 류조가 연기한 치쿠잔 캐릭터가 원체 강렬해서다. 방방곡곡 돌아다니며 일본 전통 현악기 샤미센을 연주하는 맹인 음악가는 때론 따귀를 맞고 밥을 굶을지언정 음악을 놓지 않는다. 기다란 삿을 쓰고 유랑하는 모습에서 방랑시인 김삿갓이, 예술가 자체를 논한다는 점에서 짐 자무시의 <패터슨>이 떠오른다. 예술에 혼을 바친 치쿠잔에게서 아티스트의 진정성을 본다.
가네토의 흑백 초기작 <벌거벗은 섬>은 무인도에서 100퍼센트 로케이션으로 촬영해 흡사 다큐멘터리 같다. 로버트 플래허티의 <아란의 사람>(1934)에서 ‘물’의 이미지가 뗏목을 집어삼키는 광포의 이미지라면 <벌거벗은 섬>에선 생활의 필수요소다. 힘들게 언덕을 올라 채소 심는 곳에 물을 흘리는 상징적인 장면을 반복한다. 남편은 미끄러져 물동이를 놓친 아내의 뺨을 가차없이 때린다. 금세 불편해지지만 가족의 생리를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만은 않다. 함부로 확단할 수 없는 그들만의 세계. 아들, 남편이 목욕했던 목욕 통에 들어가 밤공기를 쐐며 미소짓는 아내.
고된 삶 가운데 가끔 찾아오던 행복감은 맏아들 다로의 때 이른 죽음으로 산산조각 난다. 귀여운 자식들을 보며 힘내던 부부는 노동의 목표를 잃었다. 아직 둘째 아들이 있고 상처도 조금씩 아물겠지만, 가슴 한구석에 평생의 슬픔이 남을 것이다.
<원폭의 아이>는 히로시마 원폭의 후유증을 그린다. 히로시마에서 유치원 선생님을 하다가 원폭 후 작은 섬에서 교편을 잡은 다카코는 오랜만에 고향에 방문하고, 그곳은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불임이 된 친구, 서서히 죽어가는 제자, 염증이 얼굴을 뒤덮은 이들에게 원폭은 일시적 사건이 아닌 죽을 때까지 가는 상흔이다.
본인도 팔 한쪽에 유리 파편이 박힌 다카코지만 비극성을 극복한 유일한 길이 사랑임을 몸소 증명한다. 자기 집에서 집사로 일하던 아저씨의 손자 다로, 원폭이 아이를 섬으로 데려간다. 집사는 사망하고 아이는 구원된다. 전쟁의 물리적 상처가 없는 아이들을 구원해 밝은 미래로 데려가야 한다고 가네토는 말한다.
가네토는 사람들의 몸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시각화하고 원폭의 주체가 아닌 전쟁 그 자체를 악으로 규정한다.
<벌거벗은 섬>과 <원폭의 아이>에 둘 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배우가 노부코 오토와다. 전자에서 땡볕에 타 바짝 마른 얼굴은 후자의 귀염뽀짝한 베이비페이스로 변한다. 두 영화에 8년의 간격이 있긴 하다. 그녀는 가네토와 결혼했고 그의 작품에 다수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