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뤽 고다르의 죽음
‘인생 영화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미치광이 피에로>를 언급했던 이유는 그 영화가 가장 재밌거나 깊은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가장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고다를를 통해 영화 매체를 달리 바라보게 되었고 정해진 틀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여자는 여자다>(1961) <비브르 사 비>(1962), <국외자들>(1964)과 <주말>(1967), 그의 작품은 낭만적이고 사랑스럽다가도 세상의 더러운 곳을 가리키며 폐부를 찔러왔다. 그의 시공간엔 적나라한 현실과 꿈결이 공존했다.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를 관류하는 작품들은 만만찮았다. 안느 마리 미비유(Anne Marie Mieville)와 설립한 소니마쥬(Sonimage)에서 발표한 작품들과 장 피에르 고랭(Jean Pierre Gorin)과 지가 베르토프 그룹의 일원으로 내놓았던 일련의 정치적 영화들은 프렌치 뉴웨이브 시절 고다르에 익숙한 이들에겐 당혹스럽다. 1980년대에 <미녀 갱 카르멘>(1984), <탐정>(1985) 같은 영화들로 일말의 장르성을 드러내긴 했다.
만신전에 들어간 존 포드, 로베르 브레송, 오즈 야스지로를 제치고 130년이 채 안 되는 영화 역사의 단 하나 혁명아를 꼽자면 고다르일 것 같다. 프렌치 뉴웨이브 시기의 걸작들로만 기억되기엔 그 이후 50여 년간의 행보를 실험과 도전으로 가득 채웠다. 마지막으로 극장에서 본 고다르 영화는 <필름 소셜리즘>(2010). 80세에 내놓은 이 작품을 보면서 단지 오락으로 치부하기엔 영화 매체의 가능성이 너무도 크다는 걸 재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