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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Jun 24. 2022

시아버지와의 협상 테이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협상이 결렬되었다

많은 분들이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가? 하시는 궁금증이 많이 있으시겠지만


정말 웃기게도 이 모든 대화는 정말 120% 실화이다. 그리고 2022년 초반에 일어난 일이다.


나는 그날 새벽 아이를 방에 재워놓고 방안에 딸려있는 작은 옷장에 들어가서 남편, 시아버지, 시어머니랑 아주 대판 싸웠다.


시어머니도 이때부터는

| 시어머니 :

"내 아들한테 너 뭐하는 짓이야!!"

하고 난리 치기 시작했고


내가 당장 아이랑 내가 있는 친정으로 내려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남편:

"내가 왜가, 안가. 어차피 이혼할 건데 왜가"

라고 버텼고


| 시어머니 :

"우리 OO가 안 간 데잖아. 이제 그만하고 갈라서. 둘이 안 맞아. 내가 OO 데리고 있다가 외국 보낼 거야"

등등을 시전


아주 3대 1 싸움이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었는데, 그때 나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그날 전화를 일단 끊고, 밤을 꼴딱 세고 눈물을 꾹 참은 채 짐을 챙겼다. 하루를 있던 이틀을 있던 얼마가 될지 모르니 일단 필요한 것들을 싸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하는 내 아이가 다 잠든 깜깜한 추운 새벽에 혼자 몰래 택시를 불러 나갔다.


그날이 1월이었는데 유난히 추웠다. 나는 극한의 스트레스로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혼자 그저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이럴 때 어떻게 하라고 알려준 적이 없었다.


새벽차를 탔다. 서울 시댁으로 올라가는데 발걸음이 왜 그렇게 무겁던지.

그날은 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심장이 너무 아팠었다. 이러다 죽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나는 시아버지의 소리 지름과 그들의 행동들이 홈그라운드에서 어떻게 펼쳐질지 전혀 예상이 되지 않았었다.

나는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깊숙이 잘 모르기도 했었다. 외국에서 전화로만 대응했지, 실제 그들이 어떨지는 난 몰랐었다.

 

그래서 혼자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지금 심장이 너무 안 좋은데, 그 시아버지가 자기 집에서 나를 폭행하거나 혹은 밀치거나 해서 내가  그 집에서 나 쓰러지면 어떡하지?"


"아니면 혹시라도 그 셋이 합세해서 나와  몸싸움을 하거나 나를 때 리거나, 나를 어떻게 해버리면 나 어떻게 해야 되지?"


"만약 그래서 내가 응급실을 가거나 심장마비가 오거나 하면.. 사실 지금 당장 죽어도 되긴 하는데

아... 자고 있는 아이에게 서울 간다고 말도 못 하고 나왔는데.. 나를 기다릴 텐데.. 자는 아이 이마에 뽀뽀라도 하고 엄마 다녀올게 하고 말이라도 하고 올걸"


"아.. 무뚝뚝해도 엄마 아빠 한번 어제 안아주기라도 할걸 후회 많이 되네.."


하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그때 올라가면서 혼자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서울 올라가는 내내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너무 많이 무서웠었다.


"아빠라도 깨워서 아빠 보고 같이 가달라고 할걸... 나 혼자 저 셋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런저런 생각이 너무 많이 들었었다.


모든 게 처음이었던 나는, 이런 상황을 살면서 경험도 해본 적도 없던 나는, 어디 누구한테 이런 극한 상황을 들어본 적도 없던 나는 그날 내 몸상태와 더불어 별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내가 이전 일하던 곳에서 친하게 지냈던 공익 동생이 최근에 최근에 경찰이 되었다고 연락 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축하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정말 한몇 시간 동안 이 문자를 쓸까 말까 고민을 1000번은 했던 것 같다. 괜히 그 아이에게 걱정거리를 줄까 봐. 괜히 일이 크게 될까 봐.


진짜 고민을 많이 하다가 서울에 도착한다는 신호가 나왔을 때. 그 동생에게 결국 이 문자를 보냈다.


OO야, 나야.

나 정말 많이 고민하고 보내.


이 번호 내 번호인데 나 잠시 한국 왔거든. 지금은 서울 시댁에 가고 있어

혹시라도 이번 일요일까지 네가 내 번호로 (000-000-000) 연락 여러 번 했는데 내가 그때 안 받으면

미안하지만 000-000-000 (아빠 성함), 000-000-000(엄마 성함)으로 전화 좀 해 줄래?

우리 부모님이셔.


부모님한테 내가 위치 추적하는 어플은 깔아놔서 내 위치는 파악하실 것 같은데 혹시 몰라서.

내가 지금 너무 안 좋은 일이 있어서 근데 너무 개인적인 일인데  혹시 만약에 나한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부탁 좀 하려고 해.


내 주위에 법을 아는 경찰이 너 하나뿐이라서 네가 생각이 났어. 정말 어려운 부탁일 텐데 미안해.


라고 보냈다. 이걸 보내면서 정말 눈물이 많이 났었는데 내가 지금 울면 무너질까 봐 정말 꾹꾹 참았었다.


서울에 도착 전에 남편에게 연락해서


|와이프 :

"이게 마지막으로 네 부모님이랑 이야기하는 게 될 수 도 있고 너랑도 마지막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될 수도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너의 부모님을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를 좀 해야겠어. 난 정말 너무 할 말이 많고, 그동안 일들도 다 이야기를 해야 되겠으니, 아무튼 만나야겠으니 기다리고 있어"라고 말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난 그 호랑이굴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대응할 힘이라도 있어야 될 것 같아서  혼자 설렁탕집에 들어가서는, 입에 들어가지도 않는 밥알을 꾸역꾸역 내 입에 넣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시댁 앞으로 갔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다행히 그 세명이 있었고, 나는 가장 먼저 시아버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는 그와의 기싸움에 밀리고 싶지 않았다.


시아버지를 보고 말했다


|며느리 :

"아버님 방에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시죠"


이때 시아버지가 방에 들어가면서도 노발대발 욕하고 소리 지르고 삿대질을 했었다.

 

| 시아버지 :

"너랑 할 말 없어! 왜 왔어, 무슨 말을 해! 할 말 없으니 내 집에서 나가!"라고 했다.


나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며느리 :

"저는 할 말 많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말들이 쌓이고 쌓였는데.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저 아들 새끼랑 끝을 내던 뭘 하던 아버님이랑 그동안의 이야기는 매듭 지어야 할 것 같아 왔으니 제 말 듣기라도 하세요."


시아버지가 삿대질하면서 소리 지르면 나도 같이 삿대질하고 소리 질러줬다.


| 시아버지 :

야!!! 내가 너한테 할 말이 없어!! 왜 여기 와서 지랄이야!!!


| 며느리 :

"저한테 소리 지르지 마세요! 저는 아버님 소리 지르는 거 들을 이유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고 나도 똑같이 소리 지르며 시아버지에게 말했다


| 며느리 :

"할 말 없으시면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제 말 들으세요. 제가 그동안 할 말이 많았는데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얼굴 보고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이렇게 생겼으니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 말할 테니 할 말 없으시면 제가 하는 말이나 들으세요. 앉아서 들을 거면 앉고 서서 들을 거면 서서 이야기할게요"


그때 방문 밖에서는 남편이


| 남편 :

"아빠!! 제발 며느리 말 한번 들어봐 제발 내가 부탁이라고 했잖아.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며느리가 이야기하려고 아침에 새벽부터 왔잖아!!!!! " 하면 말하고 있었다


|시어머니 :

"좀 들어봐. 제발 말 좀 끊지 말고 이야기 들어줘. 며느리가 이야기하러 왔데잖아!"


난 속으로 그랬다.  어젠 그렇게 셋이 똘똘 뭉쳐 사람 하나 나락 보내더니 아주 웃기고들 있네 하고.


그리고 방안에는 나를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화가 나서 방방 뛰어다니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시아버지를 보면서 3살짜리 미취학 아동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행동이 굉장히 같잖다 생각을 했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니 내가 오면서 가졌던 걱정을 쓸데없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3대 1 이거 해볼 만 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아버지는 내 말을 듣기로 했다.


|시아버지 : "어디 말해봐"


나는 그간 있었던 하나하나를 다 말했다. 이때 아니면 기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혼식 때 멀리서 온 내 손님들 그렇게 한 거, 노래방 기계 켜고 노래 부른답시고 손님들 식사 하나 안 챙기고 결국 우리 엄마가 힘들게 마련한 음식 동네 사람 다 나눠준 거 등등


그 이야기하니 자기는 그 일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다행이건 그 부분은 본인이 잘못한 거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난 말했다.


| 며느리 :

" 아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그 부분에 대해 아버님이 잘못한 것 같다고 하셨으니 저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해주세요. 저는 오늘 사과받을 거 다 사과받고 가려고요"라고 말했다.


시아버지는 자존심을 굽히기 싫었는지, (요즘 초등학생들도 안 하는 행동인데) 귀찮다는 식으로 대충 미안하다고 말했다.


| 며느리 :

"지금 그게 미안하다고 하신 거예요? 저도 그럼 지금부터는 아버님이 속상하셨던 부분들에 대해 아버님이 하신 것처럼 아주 대충 사과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시아버지는 내 말을 정말 중간에 많이 끊어 먹었다. 정말 ADHD 아닐까 싶을 정도로 산만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나는 끝까지 말들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다 말씀드렸다. 나에게 함부로 이야기하고 항상 일방적으로 전화 끊었던 부분부터 시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했던 행동들이  외국에서 남은 우리들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였는지


일방적으로 지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정말 많이 싸우고 힘들었었고, 지금 이 결혼생활의 갈등의 근원지는 아버님인 부분도 있다고.


대신 내가 잘못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는 나는 정말 명확하게 사과드렸다.


| 며느리 :

"아버님이 그동안 저희가 연락도 자주 못 드렸는데 연락을 할 때마다 저랑 또 의견 차이로 싸우시고 그러셨을 때 정말 마음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아버님이 며느리한테 기대하셨던 부분도 있으셨을 건데 제가 그 기대에 부흥을 못했던 부분도 있었고. 제가 그런 부분을 맞춰 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살갑게 해드리지 못해서 그간 얼마나 맘고생 많으셨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시아버지는 그때 내 말에 서운함이 좀 풀렸는지, 눈물을 보이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 시아버지 :

" 나 정말 다른 사람들이 며느리랑 어디 다녀오고, 여행 다녀오고 하면 그게 그렇게 부러웠었어.

나 정말 나도 며느리 하나 있는 건데 잘 지내고 싶은데, 맘대로 안되더라고."


| 며느리 :

"아버님이 그동안 많이 서운하셨을 것 같네요. 살갑지도 않은 성격이기도 하지만, 또 외국에 있다 보니 아버님한테 제가 더 다가가지도 못했고, 자주 찾아뵙고 하지도 못했어요. 죄송해요. 제가 나중에 꼭 안정된 직장 잡게 되면 아버님 모시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좋은 옷도 사드리고 제가 남 부럽지 않게 해드릴께요. 약속드릴게요"


정말 이렇게 말했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내 손을 꼭 잡으시고는


| 시아버지 :

"진짜 우리 이제 잘 지내자. 진짜 잘 지내고 싶어"라고

눈물을 흘리시며 말씀하셨다.


저 때 내 말 한마디 한마디는 다 진심이었다. 앞서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내가 지키지 못할 말, 내가 마음에 없는 말을 절대 안 한다. 나는 정말 진심을 다해서 그와 대화를 했었다.


그와 풀고 싶었던 마음이 크기도 했었다. 이렇게 서로 앙금을 풀면 뭔가 내 결혼생활도 좀 편해지지 않을까. 나도 남편과 시댁 문제에 대해서는 해결했으니 둘이 정서적으로 안정감 있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컸었다.


그러고 나서, 금전적인 부분을 빼놓을 수 없어 말씀드렸다.

시아버지 아킬레스건인 금전적인 부분은 아니나 다를까 그를 또 흥분하게 만들었다.


정말 신기했다. 그렇게 울면서 내 손잡고 있던 그가 금전적인 이야기에 또 노발대발 삿대질하며 방방 뛰며 소리를 또 지르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한 광경이었다.

마치 내가 아이랑 잘 지내다가 아이가 가지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데 오늘 못 사준다고 했을 때 갑자기 울면서 생떼 부리던 그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다시 시아버지를 앉아보시라고 한 뒤 말씀드렸다.


| 며느리 :

" 아버님. 저는 아버님이 저희 금전적으로 도와주시는 부분에 대해서 절대 공짜라고 생각 안 하는 사람입니다. 아버님이 그동안 힘들게 이 돈을 버신다고 얼마나 고생을 하셨겠어요. 많이 힘드신 과정 거치신 거 다 알아요. 아버님이 어렵게 버신 돈으로 저희를 도와주신다면 저는 그 누구보다 감사하게 생각할 것 같아요. "


"비록 저랑 아버님 아들이 지금 자리를 잡아가는 단계인지라 너무 아무것도 없어서 힘들어서 이렇게 염치없게 부탁을 드리는 거지만, 저희가 평생 금전적인 도움을 바라는 것도 아닙니다. 저희가 버는 돈에 비해 렌트비가 너무 많이 나가서, 그 부분을 정말 해결하고 싶어요."


"저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겠지만, 지금 저희가 어려울 때 도와주신다면 나중에 저희가 잘 되었을 때 더 배로 갚아드리고 더 잘해드리도록 할까요. 저는 진짜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이에요."


| 시아버지 :

 "나는 그래도 너희한테는 땡전 한 푼 보태줄 생각 없어 결혼을 했으면 너희가 알아서 해!!"라고 하셨다.


나는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구차하지만 다시 한번 이렇게 말씀드렸다.


| 며느리 :

"아버님 사업하셨었잖아요. 사업가들은 투자가치가 있는 상품에 투자를 하잖아요. 미래를 내다보잖아요. 아버님이 아시겠지만, 앞으로 우리나라 실정을 봤을 때 제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이 전공이 그 누구보다 투자가치가 있고 전망이 밝으시다는 거 아시잖아요."


"아버님. 저는 제가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뭐 공부하고 제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기 위한 단계라 이렇게 하루 밥벌이식으로 살고 있지만, 저는 진짜 제가 나중에 그 누구보다 잘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전 정말 그렇게 될 거예요."


"저 진짜 투자가치 많은 사람이에요. 저희가 괘씸하다 생각이 들어서 금전적인걸 도와주시고 싶지 않으시다는 거 알지만, 앞으로의 제 가치를 보시고, 저한테 투자하신다 생각으로 저희 조금만 도와주세요."


"아버님 주변에 해외 박사 있는 며느리 있는 사람 있는지 봐보세요. 없잖아요. 근데 아버님한테 저는 해외박사 며느리 잖아요. 저 진짜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 들어가고 자리 잡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외국에서 아이를 봐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없고, 너무 하고 있는 일을 끝내기에도 너무 힘들어요. 저 평생 도와달라고 안 할게요. 자리 잡을 때 까지라도 도와주세요." 라고 했다.


(참고로 나는 한국사람들이 전혀 안 하고 있는 특수한 전공을 하고 있다. 근데 지금도 앞으로도 한국에서 외국에서 아주 많이 필요로 하는 전공하고 있다).


시아버지는 이 말들이 와닿았는지 모르겠지만 알겠다고 했다. 워낙 계산적인 사람이니 수지타산이 맞는다라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 시아버지 :

"알겠다. 너희를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게. 걱정 마"라고


그리고 시어머니께도 방에 들어오시라고 하고 나는 정말 진심으로 말씀드렸다.


| 며느리 :

"어머님. 남편이 외국까지 온 저희 어머니한테 함부로 하고, 밀치고 하는 모습에 제가 너무 많이 화가 났었어요. 그 일로 남편에 대해 그동안 쌓인 게 다 터져서 원망이 많이 생겼었어요."


"그래서 새벽에 통화할 때도 감정적이 었던 것 같아요. 그걸 어머님께 보여드리고 실망시켜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는 안 되겠지만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습니다."라고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드렸었다.


| 며느리 :

"어머님 저 진짜 지금 하는 일을 끝내야 되거든요. 계약이 곧 만료되는데 정말 하나도 성과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저희 엄마한테 빌고 빌어서 아이 좀 봐달라고 부른 거였는데 그 기간을 남편이 다 망쳐버렸어요."


"그래서 이제는 어머님이 와서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코로나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오래 맡길 수가 없어요. 어머님께서 오시면 아이 집에 왔을 때 저녁밥 차려 주시고 자기 전까지만 봐주시면 돼요. 저 8월까지라도 도와주세요. 딱 3개월만 도와주세요. 부탁드려요"라고


| 시어머니 :

"너희 사정 알겠다. 내가 3개월 가도록 할게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부모님께 말씀드렸다.

| 며느리 :

" 그동안 귀한 아들 얼굴 몇 해 동안 못 보셨으니, 이제는 마음 편하게 아드님과 맛있는 것도 드시고 좋은 시간 많이 가지세요"  


"제가 오늘은  아이한테 서울 간다 말도 없이 나와서 아이가 저를 기다릴 것 같아 먼저 가보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나는 일단 시부모님과 대화를 끝마쳤다. 나가기 전에 시어머니가 밥이라도 먹고 가라고 늦은 점심을 차려 주셨는데 식탁에 앉아서 마치 그동안 일이 다 해결된 것 마냥 쩝쩝거리면서 밥을 먹고 있는 남편이 너무 꼴 뵈기 싫었었다.


진짜 너무 이상하게도 3년 내내 나랑 연애를 하고 사랑을 했던 사람이 아닌, 낯선 사람 같았다.


눈도 마주치기 싫어 나가려는데, 나한테 역까지 데려다줄게 말도 한마디 없이 (어디 멀리 나갈 생각도 없었던 것 같다) 맨발에 슬리퍼 질질 끌고 나오는 그를 보면서 정말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정이 다 떨어졌었다.

정말 더 이상 그의 얼굴이 보고 싶지가 않았다.


엘리베이터에서

| 와이프 : 그냥 올라가서 부모님이랑 시간 보내

| 남편 : 어.


나는 그렇게 시댁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카톡을 보니 경찰 동생이 너무 내가 많이 걱정이 되었는지


| 경찰 동생 :

 "어디세요? 괜찮으세요? 제가 지금 거기로 갈까요? 어떻게 되었는지 시간 나시면 꼭 연락 주세요"

하고 보낸 메시지를 봤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사람인 것 같았다.


나오자마자 긴장이 풀렸는지 다리가 풀렸다. 한 겨울이었는데 종로 낯선 골목 구석에 혼자 들어가서 날 걱정해주는 경찰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괜찮다고 말을 해줬어야 했었다. 수화기 건너 경찰 동생이

"괜찮으세요?"라고 말을 한마디 하는데


새벽부터 내가 응어리지게 참았던, 시댁에서도 혀 깨물면서 참고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동생은 내 울음을 묵묵히 들어주었다. 길가 골목이어서인지 내가 너무 울어서인지 자세히 설명은 못했지만 그냥 그 자리에서 수화기를 잡고 엉엉 울었다. 정말 많이.


경찰 동생에게 겨우 말 한마디 했다.

| 나 :

"나 이제 괜찮아.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 바쁠 텐데 걱정하게 해서 정말 미안해.."라고


이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고 지하철 역으로 가서 지하철 카드를 충전하는데 정말 이상하게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내가 지금 돈을 넣고 어떤 버튼을 눌러야 되는지 어떤 방향으로 들어가야 되는지 지도를 아무리 봐도 몸이 안 움직였다.


정말 내 머릿속 사고가 일시 정지된 느낌이었다.


주변은 바쁘게 움직이는데 나는 기억상실증이 걸린 것 마냥. 혼자 그렇게 개찰구 앞에서 멍하게 서있었다.

이렇게 지하철을 타고 어디를 가다가는 내가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이 순간들이 너무너무 비참해서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내가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다시 역에서 걸어 나와 혼자서 멍하게 생각했다.

"나 지금 어떻게 해야 되지"


"엄마 아빠가 너무 많이 보고 싶은데"


"지금 집에 너무 가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는데 어떻게 집에 가야 되지"


"내 아이가 기다리는데 집에 가야 되는데..."

라고 멍하게 생각하면서 한참을 길에 서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내 대학교 친구가 번뜩 떠올라서 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친구가 그때 내 연락을 바로 받아줘서 너무 많이 고맙다.


그때 당시 내가 한국에 있는 걸 아는 사람은 그 경찰 동생 한 명뿐이었고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내가 한국에 이런 일로 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기도 싫었고, 누굴 만나기도 싫어서 아무에게도 연락을 안 했었다.


정말 고맙게 그때 내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나에게 와준 내 친구 덕분에 그때 그 당시를 이겨내고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이 친구에게 세상 어떤 말을 다 써도 모자랄 만큼 고맙다. 내 인생에 은인인 것 같다.


난 정말 그때 길에 쓰러질 것 같았는데 이 친구가 와서 나를 그날 구해줬다.


오늘 이 이야기를 쓰기 전에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때 감정과 그때 생각들을 지금 생각만 해도 눈물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런 대화를 통해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남편 문제는 해결이 되었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NO이다.


이번에 정말 인생 경험 많이 했고 많이 배웠다.

사람이 밑바닥일 때 본성이 드러난다는 사실과, 사람은 절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딱 2일 뒤 남편이 다시 친정으로 왔고, 시어머니의  문자가 왔고, 시아버지는 3일 뒤 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들은 그날 서울에서의 나의 처절함을 아주 보란 듯이 무참히 밟고 무시했다.


세상 멋모르고 사람을 쉽게 믿었던 어리숙한 내 행동에 대한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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