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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 Jun 18. 2022

시아버지께 할 말은 하자

 귀 열고 내 말 들어

외국에서 살고 있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 티브이에서 연예인들이 외국에 사는 모습을 보면 아주 의리의리 한 집에 마당 딸리고, 방에 화장실이 몇 개인 집에서 아이들 좋은 학교 보내서 교육시키고 하는 모습들은 외국에 사는 나같이 외국에서 공부를 하는 사람들 삶에는 좀 허황된 모습으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여유롭게 살지 못하는 학생 부부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두 번째는 한국 사람이 들이 항상 그리우면서도 나와 뜻이 잘 통하는 사람을 만나기는 많이 어렵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나의 오래된 친구들이 살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오랜 한국 친구를 갑자기 만들기도 불가능하고, 친한 사람이 있다 해도 내 모든 걸 다 터놓기엔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닌 것 같다. 혹시 또 모른다 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소문이 날지도.


세 번째는 가장 나에겐 힘든 부분이다.

시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 그는 일방적으로 험한 말 다 내뱉고, 할 말 못 할 말 구분 안 하고 우리 부부를 상처 주면서, 우리가 아니 내가 말을 하려고 하면 자기 열받는다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고, 그리고 폰을 꺼놓으신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회피 방법이다)


외국에 살고 있는 우리 부부는 그런 상황이 오면 눈이 돌아갈 것 같았던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을 한 시아버지의 행위에 대한 대가는 오롯이 그의 아들인 내 남편에게 화살이 돌아갔고, 그 시아버지로 인해 우리 부부는 외국에서 의지할 곳이라곤 둘 밖에 없는데 의지는 커녕 정말 많이 싸웠었다.


나는 이런 상황들을 시아버지라는 사람을 통해 많이 경험했었지만, 어디 잘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친구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어도, 한국시간 외국 시간 맞춰가며 이야기를 한두 시간 하고 싶지도 않았었고

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국에서 잘 살고 있는 친구들한테 굳이 이야기해서 그들의 기분을 나로 인해 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한테 이야기를 해도 엄마가 속상해하니 어느 순간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외국에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해도, 나에 대해 깊게 모르는 그들에게 내 이야기는 가십거리이자 내 얼굴에 침 뱉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답답한 마음을 어디 말할 곳도 위로받을 곳도 없어 한참을 화병을 지니고 지내다가

정말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어떻게 주는지 듣고 싶어서

네이 X 판이라는 곳에 한두 번 글을 올려봤었다.


많은 분들이 나에게 현실적인 답변을 주셨고, 나를 공감해 주셨었다.

그게 내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근데 그 사람이 나를 100% 공감하는 것 같지 않았기에 나름 많이 답답했던 것 같다.


재미있게도, 내가 올렸던 글들은 하루 만에 사이트 메인에 올라갔었다.

나는 바보 같게도 이 글들이 메인에 올라와 있으면, 시누이가 볼까 봐 걱정이 돼서, 올라간 지 하루 만에 그 글들을 지워 버렸었다. 그래도 짧은 시간 안에 나에게 진심 어린 조언과 충고를 주셨던 익명의 네티즌들께 진심 어린 감사인사를 하고 싶다. 나에게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다고.




오늘 다시 한번 그때 캡처했던 글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또 잊었던 부분을 찾게 되었었는데

그 시아버지가 우리 부부가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 시아버지 :

 " 너희 언제 한국 올 거냐. 한국 올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잘 정해라."라고 말씀하셨고


| 며느리 :

"아버님, 죄송하지만 저희는 한동안 한국 갈 생각이 없어요. 아직 저희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도 하고,

 저희가 때가 되면 알아서 잘 생각해서 정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나는 대답을 했었는데


그 말에 또 화가 났던 시아버지는 남편에게 왈


| 시아버지 :

"어디서 며느리 주제에,  어서 한국 들어와서 시아버지 모시고 산다고 하는  당연하아니냐!!"

" 당장 못 들어올 것 같으면 죄송하다 생각을 해야지, 지가 뭔데 안 온다 마냐 하냐!!"

라고 하며 따졌다고 한다.


혼자 조선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저 집안 조상들을 생각해 보면 딱히 많이 배우고 경우 있는 양반 계열도 아닌 것 같다.


자기 아들도 본인이 돈 들여 가며 외국에서 공부시키는 주제에, 자기가 며느리 돈 들여서 공부시킨 것도 아니고 며느리가 스스로 알아서 장학금 받고 공부하는데 그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우셨는지 들어와서 시아버지를 모셔라는 헛소리를 하셨다. 본인 같음 한국 들어가서 당신 같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싶은지 나는 되묻고 싶다. 


자기 아들한테는 매번 연락해서는

"어디 대학에 자리가 난 것 같다." " 어디 회사에 네가 하는 일이 필요한 것 같다 알아봐라"

이렇게 최신 뉴스는 죄다 보면서 알려주면서


나한테는

"한국 와서 며느리가 시아버지 모셔야지" 라니..

정말 아이러니 그 자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정말 답이 없는 인간이 아닌가.


그날, 시아버지가 우리 부모님께 경우 없는 행동을 한 후.

암 걸렸다는 핑계를 대면서 미안하다 소리 없이 우리의 연락을 또 무시한 후.


나는 그에게 카톡을 보냈다.

왜냐면 전화를 안 받을 걸 아니깐 전화를 하는 것도 의미가 없었다. 카톡 차단하는 방법은 모르시는 것 같아서 보내면 읽기라도 하겠지 하는 생각에 몇 자 적어 보냈다.  


| 며느리 문자

: 아버님, 안녕하세요.  OO입니다.

제가 전화 한 10통 했는데 또 폰을 꺼놓으셨네요.

아버님 다른 말 아니고 이 말 전달드리려고 전화드렸었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해  제 생각 명확하게 다시 전달드릴게요. 혹시라도 제 글 읽으시고, 화가 많이 나시면 아버님도 저한테 "직접"  말씀하세요. 아들한테 말하지 말고요.


아버님, 저는 아버님을 지금도 앞으로 평생 모실 생각이 없어요. 그러기에, 며느리가 시아버지 모셔야 된다 라는 기대는 오늘 이후로 절대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지키지 못할 약속 절대 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제가 누군가를 훗날 모신 다는 건 제 "선택"이고, 제 마음에서 우러나서 하는 게 효도인 거지, 당연하게 제가 며느리라서 시아버지를 모셔야 하는 건 절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부분 명확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 외국에서 더 있고 한국 갈 생각이 없다고 했던 건 저는 지금 태평양 건너서도 아버님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스트레스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들어갈 생각이 더더욱 없습니다.


아기 이름도 제가 평생 불러야 될 이름이기에 제가 원하는 이름 정하는 게 맞고요.


저희 사는 곳에 오시는 것도 적어도 저희 일정 최소한 물어보고 조율하시는 게 맞으시지 일방적으로 일정 통보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께서 제 남편한테 하셨던 말들 이미 제가 다 옆에서 들었고,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이라는 거 잘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임신 8개월 며느리한테 참 배려 없으시네요. 제가 이번 일로 많은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저희에게 계속 인연을 끊으시겠다 여러 번 엄포하셨었는데 저는 그 말씀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제 마지막 문자입니다.


손주에 대한 부분은 저는 아버님께 절대 아이를 보여드릴 수 없다는 게 제 결정입니다.


그럼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문자를 읽었다고 1이라는 숫자는 사라졌지만, 나는 그가 이 문자를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 수 있었다. 미안함 이런 건 하나도 없을 거라는 걸, 본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생각조차 뇌에서 하지 않았을 거란 걸.

내 말들을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 누구보다 알 수 있었다.


왜냐면,

한 두 달 후 그가 남편에게 보낸 이 문자를 봤기 때문이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시아버지 :

(남편 이름)야, 앞으로 전화하지 마.

아빠는 암 수술 앞두고 있어. 엄마도 아프고

우리는 요양병원 예약해놨어. 잘살아

너네 전화번호도 몰라 전화할 일도 없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전화하지 마.

아빠 심정은 결혼 전이었으면 해.


이렇게 보냈다.


이제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당시 그 시아버지는 수술도 하지 않았었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약을 먹고 있었으며, 초기 발견이라 예후도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시어머니께 후에 들은 내용이다)


그런데도 그런 사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비열하게" 본인 아프다는 걸 이용해서, 외국에 있는 아들에게 아프다고, 요양병원 간다 시전 하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그 아들은 마음이 어떨까?

나는 그의 방식이 상당히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그 시댁 사람들의 방식이었다.

항상 남편에게 하는 말

"우리가 엄청 고생해서 너 키웠어" "내가 진짜 너만 보고 살았어" "정말 힘들게 살았었어"

"우리가 그 고생하면서 너 키운 거야"  등등


이런 말들을 어릴 때부터 주입식으로 들어온 내 남편에게, 남편이 어떤 부분들에 흔들리는지 잘 아는 그는

'일평생 고생한 네 부모가 아파 죽겠다는데 네가 어떻게 할 거냐. 네가 우리를 버릴 거냐. '

식으로 문자를 보냈었다.


이건 나중에 뒤에서 적을 내용이지만,

앞서 말했던 천사 같았던 시어머니도 똑같은 방법을 우리에게 시전 했다.

시아버지보다 더욱더 "교활하게" "거짓말"과 함께 "불쌍한 척"까지 합쳐서.


이럴 때 이런 말을 쓰는 것 같다.



부창부수 夫唱婦隨

뜻이 잘 맞거나 행동이 일치하는 부부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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