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클래식하게 [클래식 한입]
쇼팽의 연주를 들으면, 내가 저지른 적도 없는 죄를 뉘우치며 눈물을 흘리고,
내 일이 아닌 비극에 슬퍼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Oscar Wilde 1881]
Frédéric Chopin
1810-1849 폴란드 피아니스트, 작곡가
| 219 개의 작품
피아노의 시인, 클래식계의 유일무이한 왕자,낭만시대의 아티스트의 집결체이다.조국 폴란드의 해방을 위해 독립운동가로도 활동했으며, 그의 간절한 바람 끝에 그의 심장만은 조국 폴란드의 바르샤바 성 십자가 성당에 안치될 수 있었다.
1831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쇼팽은 조국 폴란드를 떠나 빈, 슈투트가르트를 거치는 와중 러시아군의 잔혹한 진압으로 혁명이 실패로 끝나고, 그때의 비통한 심경을 음악으로 써 내린 곡이 바로 ‘에튜드 혁명’이다. 그 후, 쇼팽은 문화예술의 중심지 파리에 자리 잡게 된다.
섬세하고 예민한, 그리고 여린 감수성을 지닌 쇼팽.
귀족 사회와 유명인사들의 집거지 살롱 연주회에서 호평을 받으며, 쇼팽은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위한
작곡을 하게 되었다.
조르주 상드와의 만남 이전, 쇼팽은 바르샤바에서 만났던 친구의 여동생 보진스카와 약혼을 한 상태였지만, 쇼팽의 건강의 악화와,보진스카의 주위 사람들의 반대로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후 리스트의 연인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 주최한 파티에서 당시 화제의 인물이자 소설가 조르주 상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문학계에서 뛰어난 인물로 화자 되는 조르주 상드는 여성인권 옹호자이며 남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남성들과 염문을 벌였다.
남장을 하고 시가를 입에 물고 있던 여성. 이른바
‘팜므파탈’이었던 조르주 상드.
이와 대조되는 내성적이고 섬세한 성격을 가진 쇼팽은 첫 만남에는 그녀가 썩 내키지 않았으나, 조르주 상드의 적극적인 애정공세에 마음을 열게 된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쇼팽은 성적인 능력을 잃어버렸고, 사실상 조르주 상드와는 플라토닉 한 사랑으로
10여 년 동안 연인 관계를 지속했다.
플라토닉 러브가 가능한 지도 의문이지만 10년 동안이나 사랑을 지속 가능 할 수 있었던 데에는 조르주 상드의 정성 가득한 헌신이 있었기때문일 까.
한편, 몸이 약했던 쇼팽은 조르주 상드와 함께 요양을 위해 스페인령의 섬 마요르카 섬에 가서 지내게 되었다. 버려진 발데모사 수도원 근처의 오두막집에서 지내게 된 쇼팽은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최악의 상황을 맞이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르주 상드는 쇼팽의 음악 작곡을 을 도우며 성심성의껏 간호하고 돌보았다. 이 과정에서 상드에 대한 쇼팽의 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수많은 명곡을 작곡해 냈다.
상드의 회상록 “내 생애의 역사” 중,
나는 쇼핑을 하기 위해 아들 모리스와 함께 외출을 나갔다. 그런데 비가 내리더니 점점 심해졌고, 게다가 갑자기 불어난 급류로 길이 막혔다.
그래서 우리는 평소보다 몇 시간이나 늦게 집에 도착했다. 집 지붕에서는 장대 같은 비가 기왓장을 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피아노에 앉아 있는 쇼팽은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말했다.
“나는 빗속에서 당신들이 모두 죽었다고 생각했소.”
빗방울은 그의 가슴속에서 눈물로 변했고, 그는 세상이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쇼팽의 애통함,조르주 상드를 기다리는 마음,사랑하는 마음이 빗방울에 섞여 토톡 토톡 떨어진다.
당시 그가 작곡한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
조성진의 연주를 통해 감상해보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 op.28 n.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