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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작가 Mar 13. 2024

일본어 공부 도전기 3

비록 나이 많고, 머리 나쁘지만

새로운 수업, 새 교실, 새 선생님. 살짝 들뜬 마음으로 강의실 문을 연다. 순간 헉하는 소리가 나온다. 칠판을 향해 앉는 것이 아니라 마주 앉는, 그것도 아주 가깝게 책상과 의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역시 이번에도 나는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구석 자리에 앉는다. 수강생을 세어보니 10명, 역시 딱 봐도 20대들이다. 수업 시작 직전, 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수강생이 들어온다. “난 학원이 처음인데, 잘 따라갈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 “그러면 문법반도 안 듣고 바로 회화반으로 오신 거예요?” “1년 동안 유튜브로 혼자 공부하다가 안 되겠다 싶어 학원 등록했어요.” 죽어라고 두 달 학원에서 공부한 나와는 달리 독학으로 공부해서 바로 회화반이라니.. 속으로 학원 언니로 모시기로 결심한다.

드디어 시작된 회화반 수업. 선생님, 아니 센세.. 처음부터 한국어는 한 마디도 안 하고 폭풍 일본어가 휘몰아친다. ‘수업 중 한국어 금지. 서로 리액션 잘하기, 매일 단어와 리스닝 시험 보기’.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 진다. 이어서 각자 자기소개를 한다. 세상에.. 다들 어찌나 다 잘하는지 기가 팍 죽는다. 모두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다. 그중 제일 어린 여학생...  16살이란 그녀는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의대를 준비 중이며 하루에 다니는 학원만도 5개란다. 수강생들 중 가장 나이 드신 학원 언니는 은퇴한 남편과 삿포로 1년 살이를 위해 공부 중이란다. 정말 다들 말을 너무 잘한다. 나는 너무 못한다. “저는 000이며 직업은 000다. 일본도 자주 가고, 아들도 살고 있고, 일본 영화도 좋아한다. 그래서 일본인과 대화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수강생들 중 가장 짧게, 가장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한 사람, 바로 나다.

회화반은 시작부터 어렵다. “내 이름은... 내 직업은..” 뭐 이렇게 기본적인 것을 하는 게 아니라 두 달 동안 배운 문법을 응용해 긴 문장으로 말하는 것을 배운다. 숙제도 많고 매일 단어시험도 있다. 그나마 단어 외우기에 조금은 적응됐는지 하루에 60개씩 외우게 된다. 매일 쓰면서 외우다 보니 어느새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에 펜혹이 생긴다. 예전 원고를 펜으로 썼을 때 두툼하게 생겼던 펜혹이 수년 만에 다시 생긴 거다. 이게 끝이 아니다. 내 머릿속의 단어와 내 입의 단어가 따로 논다. 응용력이 떨어지는 건가 잠시 우울해지기도 한다. 차라리 쓰는 작문 숙제는 낫지만, 숙제 발표에 이어지는 묻고 답하기에서 다시 내 입은 머리와 따로 논다. 옆 자리 학원 언니를 보니 분명 나이 탓이 아니라 머리 탓이다.

처음엔 서로 예의를 지키며 조심스럽던 반 분위기가 하루하루 지나며 달라진다. 작문 숙제 주제가 대부분 개인적인 것이라 서로를 알아 가는데 딱이다. 수강생들의 숙제를 듣고 있노라면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물어볼 것도 종종 생기지만, 문장을 못 만들어서 답답해한다. 오늘 작문 주제는 ‘요즘 내가 하는 고민, 도와주세요.’ 대부분의 고민은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는 터라,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다. 공부에 열중할 것인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부담을 덜 것인지...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센세에게 양해를 구한 뒤 우리말로 한 마디 한다. “공부는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것이고, 공부에 최선을 다해주는 것이 부모님들이 바라는 거예요.” 오지랖이 부끄럼을 이겼다.

또다시 찾아온 진급 시험. 당연히 시험 전 날, 전처럼 밤을 새운다. 이 학원에 다니면서 다섯 번째 치르는 진급시험이지만 긴장되는 건 한결같다. 나이도 많고 머리도 나쁜 내가 가진 건 시간과 무모함 뿐. 예상한 것보다 일본어 공부가 어렵고 힘들지만, 일단 무조건 잘 버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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