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오늘도 학원에 가야 하는구나.”, “오늘도 말 못 하면 어떡하지?” 한국인 선생님과 하는 회화반에 들어온 지 2주가 될 무렵 학원에 슬슬 가기 싫어진다. 수업은 60개 가까이 되는 단어를 시험 보고, 들으며 받아 쓰고, 그날 배운 문법을 응용한 문장을 돌아가면서 말하거나, 선생님이 준비해 온 게임 스타일로 수강생들과 일본어 회화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작문 숙제를 발표하고, 내 숙제에 대한 질문을 다른 학생들에게 받는다. 매일 있는 단어 시험 때문에 달달 외워가도, 시험만 끝나면 내 머릿속 단어들은 어디선가 나타난 지우개로 빡빡 다 지워진다. 어제 배운 문법은 다음 날만 되면 마치 새로 배운 것처럼 보이는 마법에 걸린다. 귀는 막히고 입은 열리지 않으니 수업이 힘들어진다. 학원이 가기 싫어진다. 내가 어쩌자고 이 어려운 회화반을 매일반으로 신청했을꼬... 권태기, 아니 일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포기하자니 2주를 잘 버텼고, 이제 2주만 버티면 되는데 아깝다. 남은 2주가 두 달 같이 느껴진다. 결국 학원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선생님에게 개톡을 보낸다. “요즘 꾀가 납니다. 말도 안 나오고 너무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잠깐 쉬었다 할까란 생각도 듭니다. 지친 건지, 못해서 의기소침한 건지 아무튼 그렇습니다.” 수업이 끝났는데 선생님이 불러 세운다. “지연 상, 자꾸 한국식 표현으로 만들어서 말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단순하게 아는 단어에 ‘살’만 붙여서 말해보세요. 무엇보다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세요. ‘지금 나는 7살이다.’” 7살, 아니 내 수준은 5살이다.
선생님의 말을 새기고 입을 여니 조금 수월해진다. 온갖 아는 단어를 꿰맞추려 하지 않고 내가 배운 것만으로 문장을 쓰고 말한다. 이제 공부한 지 3개월 밖에 안 됐으면서 3년 배운 것처럼 말하려는, 그러니까 나는 주제파악을 못한 것이다. 반에서 제일 못했지만, 함께 하는 수강생들과는 점점 친해져 간다. 그 혹은 그녀들은 단어시험에선 히라가나로 쓰기 바쁜 나와는 달리 한자로 척척 쓰고, 말들도 하나같이 잘한다. 작문 숙제는 대개 개인적인 것들, 가령 “내가 요즘 빠져있는 것”,“나의 결심과 노력으로 바뀐 것” 등등 주관적인 주제들이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의 이야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 덕분에 그 혹은 그녀들에 대해 천천히 알게 된다. 심지어 언제부터인지 간식도 싸와서 나눠 먹고 수업 전후로 개인적인 이야기도 나눈다. 젊은 피, 아니 건강한 피가 수혈된다.
오늘, 한국인 회화반 진급시험이다. 선생님이 늘 지적했듯 단어와 문법은 나름 괜찮았지만 청해가 큰 구멍이다. 그래도 6번의 진급시험을 한 번에 통과했으니 나 스스로를 대견하다고 칭찬한다. 긴장과 설렘으로 시작해서 잠깐 열정을 태우다가 권태와 좌절을 거치며 다시 용기를 낸 3개월 차 일본어 초보. 앞으로도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겠지. 다음 달부터 올라가는 원어민 회화반은 조금 천천히 하기로 한다. 슬렁슬렁, 아니 뚜벅뚜벅 나의 일본어 공부는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