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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왜 그렇게 넋이 빠져있어 어디 아픈 거야?
털보가 물었다 그러나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요 며칠간 깊숙하고 무거우며 심히 어두운 잠에 빨려 들어가 다행스럽게도 잠이라는 것을 잤지만 자고 일어난 뒤 내가 왜 털보 앞에 앉아 있는지에 대한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털보가 묻는 질문에 대답할 말이 잘 생각나지 않았다. 요 근래 자주 이렇다.라는 식의 수신호를 보냈다. 누군가 나에게 반응을 보이는 것에 대한 나의 반응이 굉장히 더뎌졌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내게 솔직하지 못한 것을. 내가 나에게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 가끔 숨이 가빠온다. 숨이 가빠지다 숨이 가빠지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나면 천천히 마음을 가다듬고는 대답을 생각해 본다. 이치에 맞는 대답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 말고는 정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느낀다.
잠을 잘 못 잔 것 같아. 그냥. 뭐.
그래? 그래도 뭔가 이상해. 이상해서 이상해. 커피를 달라하지도 않고 멍하니 가게로 걸어오기에 손을 흔들어도 초점 없는 눈과 힘없이 문도 겨우 밀고 들어와서 말이야. 힘든 것이 있으면 차라리 말을 하라고. 그래야 걱정을 안 하지 그러고 있으면 송장 같다고. 송장 같으면 여기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 것이야 알겠어? 뭐 라고만 말을 하지 말고 뭐에서 뭐가 있다는 거 아니야? 그럼 그것을 말하면 되는데. 그렇지 않아?
귀에는 왱왱거리는 털보의 말이 들리지만 그 말에도 대답할 말을 찾는데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다. 모기 한 마리가 귓가에서 작은 날갯짓을 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귀찮지만 또 그렇게 신경 쓰이지도 않는. 역시나 대답의 끈을 찾지 못했고 끈도 실제로 없었기에 고리에 걸어 깊은 내면의 문을 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나의 일정 부분의 문이 닫혔다. 굳게 닫힌 문 안으로 내가 나를 가둬두었다. 문의 뒤쪽으로의 나는 조용히 문 뒤에 숨어 죽은 듯이 있다. 그래서 털보가 힘내라는 듯 시끄럽게 열변을 토했음에도 대화의 갈피를 대화의 기로를 대화의 기반을 찾지도 알지도 인식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냥 손만 위아래로 흔들어 모르겠어.라는 수신호만 보내고 대충 문을 밀고 나왔다.
나의 상태와는 다르게 해와 아스팔트 그리고 공기의 열기는 엄청났다. 슬리퍼를 신고 나온 것인지도 의문이 들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검은색 슬리퍼를 녹여 내릴 듯 아스팔트는 지글지글 끓고 있었다. 끓는 아스팔트는 검고도 너무나도 검었다. 타고 있었다. 아스팔트가.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을 가늠할 수도 없을 만큼 맑았다. 맑아서 더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해는 너무나도 강렬했고 감히 자신을 쳐다볼 수도 없을 만큼 지상을 강타하고 있었다. 내리쬐는 햇빛과 끓는 아스팔트 사이의 공기는 답답한 습기와 합쳐져 목을 죄어오는 듯했다. 그리고 검은 아스팔트와 푸르고 맑은 하늘의 괴리는 말로 다 이룰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언제나 이런 순간에 나와는 다른 세상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곤 한다. 나른하게 불어오는 답답한 여름 바람과 짙고 어둔 초록색의 그늘에서 느낄 수 있는 여운. 그리고 맑은 하늘과 맑은 개울가. 그리고 거대한 괴리감. 나는 막혀 있고 어둡고 닫혀있는데 세상은 그런대로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가득한 세상 속에 나를 구성하는 세계는 어둡고 막막하다. 그런 생각이 가득한 채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길을 걷고 또 걸었다.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알 수 없이 본가에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버지의 호출이 있었다. 잠시 방문하라는 호출이었다. 유독 정확치 않은 부모의 말은 마음과 정신의 근간을 흔든다. 지금 살고 있는 강서구를 기준으로 본가까지 도달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하게 발전된 문명을 받아들이면 되는 이치였다. 버스가 있고 지하철이 있고 택시가 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아스팔트가 서울엔 잘 깔려있다. 본가는 여전했다. 어머니는 기존에 하고 있던 일을 하고 있음에도 집안의 곳곳 청소와 요리 그리고 정리정돈까지도 신경 써야 하는 고전적인 주부 그리고 현대적인 배우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었다. 그 사이 고상한 아버지는 소파에서 기분 좋게 때론 엄마를 굉장히 고달프게 하듯 책을 읽었다. 판화같이 큰 통 창을 통해 비치는 빛이 아버지를 피해 다른 곳을 비추었다. 그와는 반대로 폭은 손바닥정도로 산수화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진 부엌의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엄마를 비추어주었다. 어머니를 주도적으로 밝게 보이게 하는 것이 나로서는 어쩌면 무형적인 혹은 영적인 무엇인가가 무언의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은 것인가 생각이 들게 만드는 빛이었다. 더는 생각을 하기 싫어 본가에 살 때 내가 사용하던 방으로 향했다. 여전했다. 붙박이장엔 해군 시절 매달 알음알음 모은 월급으로 사들였던 약 백여 권의 책들로 가득히 차 있었고 낡아가며 지속적으로 약해져만 가는 목재 침대 틀이 있었다. 그보다 더욱 오래된 원목 옷장이 침대틀보다 더 아름답게 여겨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기품이나 기조 그리고 풍채와 그림자에서 오래된 원목 장은 나의 방을 지켜주는 장승과도 느껴졌다. 원목옷장의 풍채는 기개가 있었다. 나의 옷을 항상 품어주던 존재로 나의 물건을 지켜주는 어떤 존재로 느껴졌다. 아직도 그것은 나의 군 전역복 그리고 엄마가 버리지 않는 나의 옷가지들 그리고 부모님의 옷들이 같이 조화되고 있었다. 이곳저곳 둘러보니 본가에서 지냈던 시절의 기억들이 그리 깔끔하지 않다고 느꼈다. 드문드문 비어있었고 이곳에서 살아왔던 시절이 다른 세상 같았다.
내 방이었던 곳에서 나의 향수를 느끼고 있을 때 엄마가 밥이 다되었다며 불렀다. 그러고 보니 다행히도 엄마가 나를 부르던 기억은 존재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 실험처럼 나는 밥 먹어라는 소리와 동시에 주방 탁자로 갔다. 하나뿐인 친형은 항상 밍기적 거렸었지만 나는 엄마의 그 소리가 좋았다. 밥 먹으라는 소리. 그 말만 들어도 꽤나 든든한 감이 있었다. 오랜만에 온 본가에서 기억에 남아 있는 좋은 향기들을 다시 느끼고 나니 어쩐지 스쳐갔던 좋지 않았던 일들 이후에 닥쳐올 풍파도 어쩌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