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괜찮다

by 지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어떻게라는 말이 필요할까. 그냥 살아가자. 그냥 살아가도 괜찮을까.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2023년 칸영화제 수상작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영화의 러닝타임인 124분 동안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괜찮다고. 어떤 방식으로든 어떤 형식으로든 어떤 이라는 설명 필요 없이도 삶은 그대로의 모습대로 상관없다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게다가 언어로서의 전달을 배제하려 노력했다. 그저 생의 며칠을 보여줄 뿐이다. 그 사이엔 아무런 이벤트가 없는 것도 아니다. 견디기 힘든 노동도 있었고 삶의 루틴을 무너뜨린 어떤 이도 있었고 마음에 품던 것이 붕괴되는 경험도 한다. 그러나 영화는 말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삶을 보여줄 뿐.


세상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 내가 그렇게 빨리 달리는 것인지 세상의 속도가 빠르게 가는 것인지 내가 그 속도에 올라타있기 때문에 세상이 지나가는 속도가 그러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사실 알 수 없다. 어쨌든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고 있고 그만큼 수많은 것들의 변화 역시 가파르다.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나 고민해 왔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자랐다. 가치 있게 살아야 한다. 의미 있게 살아야 한다. 성공해야 한다. 성공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성공이 기준점이었다. 아니라고 해도 무언가 이루어야 할 것만 같았다. 상을 타야만 할 것 같고 1등을 해야만 할 것 같고. 물론 상을 수도 없이 수상하고 1등을 해본 적도 없지만 말이다.


그냥 그런 기준점들이 하나같이 부담이었는지도 모른다. 삶의 형식에 대해 무언가 세뇌당한 느낌. 멋지게 살아야만 하고 쉼 없이 살아야만 하는. 뭐 하나 번쩍이던 삶을 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비극적이었다. 그렇게 비극적이게 살았다. 공부를 해도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없었다. 내가 하는 공부는 세상이 원하는 공부가 아니었던 것일까. 나는 내가 중요한 것을 보는 게 좋았다. 선생님이 뭐라고 가르쳐도 내가 중요한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러니 선생의 기준점인 시험에선 역시나 비극적일 수밖에. 나의 삶의 형태가 그러했다. 열심히 해도 세상의 기준은 내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 세상의 기준엔 내가 언제나 어긋났고 도형의 모양을 맞춰 볼래야 맞춰질 수가 없었다. 상은 개근상과 장려상. 1등은 해본 경험은 달리기 뿐.


개근상과 달리기 1등 기록은 세상 사람들의 관심 바깥이다. 그리고 내가 받은 것들의 타이틀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칭찬을 받아본 적도 없고 잘했다고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 아마 그때 겪은 성장기의 경험이 지금의 낮은 자존감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나는 정말 칭찬을 받지 못하고 살아갈 만큼 엉터리였나. 내가 그냥 살아간 것들 자체만으로 학교에 아프지 않고 빠지지 않은 것, 달리기가 수준급이어서 매 학년마다 계주를 했다는 것, 이것들은 정녕 별일이 아니었을까 하고 가끔 그 생각에 빠질 때가 있다.


이제 나의 삶은 내가 돈을 벌고 그 돈을 쓰거나 저축하거나 하며 내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여전히 내 삶의 형식은 동일하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기억하고 세상이 중요하다 외치는 것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런데 이제껏 누구의 칭찬을 받지 못했다고 기억하고 별 볼 일 없이 살아왔다고 스스로 판단할지라도 나는 지금 살 서 있다. 지면 위에 두 다리를 잘 딛고 서있다. 건강하게. 아직도 달리기엔 능력이 남아있는 것인지 달리는 운동도 여전히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 이야기하면 수준급에 속한다. 그리고 세상에서 필요하다는 뭐 어떤 능력도 내게 있지는 않지만 살아가는 데에 정말 1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의식의 결여일 수도 있다. 사실 나의 속도는 느려져 다른 사람은 앞으로 치고 나가고 나는 도태되거나 제자리에 앉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정말 상관없다. 나의 오랜 꿈은 강원도 속초나 고성에 가서 싼 집에 살고 바다가 가고 싶으면 짐을 싸고 달려 5분 안에 도달할 동해바다가 있고 뒤를 돌아보면 울창한 숲과 우뚝 솟은 설악산의 봉우리가 있는 그런 곳에서 달리고 글 쓰고 삶을 살정도로만 돈을 벌며 맥주나 먹고 낮엔 재즈를 들으며 책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런다고 내 삶이 붕괴될까? 내가 뒤로 처져서 나는 폐인이 될까?


수도 없이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런 삶의 속도에 큰 관심이 없다. 딸아이에게 선택권이 없어 미안하지만 딸의 이름 역시 진실로 느리게 살았으면 좋겠는 마음에 진실됨과 천천히라는 뜻이 있는 한자로 지어주었다. 세상의 속도에 편승되기도 했고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 보려 했지만 정말 나랑 맞지 않았다. 난 오히려 그 속도에 탑승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탑승해도 언제나 뒤를 바라봤고 탑승해도 몸이 탄게 아니라 선체 일부를 한 손으로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놓쳐서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래서 영화 퍼펙트데이즈는 마음이 아리고 시렸다. 영화에서 설명은 나오지 않았지만 주인공의 속도는 분명 세상과 맞지 않음을 수차례 시사한다. 헌책방. 카세트. 카메라. 집. 낡은 자동차. 직업. 심지어 청소하는 방식마저.


그래서 괜찮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긴 하지만 영화 주인공이 살고 있는 형식이 현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까. 그건 난센스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꿈 꾸는 삶의 형식은 어떠한가. 강원도. 속초. 적은 돈벌이. 바다. 산. 책. 달리기. 나는 그런 구성요소로 평생을 살아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세상보다 누구보다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해도 된다고 지금까지의 삶의 경험 누적치로 알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정말 괜찮다. 내가 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정말 괜찮다. 굳이 큰돈을 벌지 않아도. 적은 돈을 벌어 모냥이 빠질 수 있지만 상관없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으리으리한 지역에 살지 않아도. 점점 낙후되어 가는 지역에 쌀을 얹혀 밥을 만을 수 있는 전기와 가스가 있고 된장국을 끓일 된장이 있다면 상관없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가까이에 있고 택배나 물품을 시키면 24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는 지하철역과 기차역이 가까이에 있어 언제든 어디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더라도. 30분 이상 차를 끌고 가야만 도착하는 농협 하나로마트만 있어 두부와 콩나물을 살 수 있다면,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으로 시키면 산간지역이어서 4일 이상이 걸리고 일주일 이상이 걸린대도 나는 그 속도가 괜찮다.


정말로 나는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싶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정말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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