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이 없다

by 지우

유독 최근 국가의 사정 그리고 세계를 비추는 뉴스들은 세상이 곧 멸함을 당해도 싸다고 느껴질 만큼 복잡하고 어지럽다. 인간이 멸함 당할 근거가 있다면 지금 정도면 충분하다고 개인적으로 느끼는 편이다. 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다면, 그런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라면 지금의 세상을 보곤 '갈아엎어야 할 때가 왔군.'이라고 얘기할만해 보인다. 쓰나미든 거대한 토네이도든 휴지기에 접어들었던 모든 화산이 터지고 인간은 모두 멸함 당한다. 그만큼 인간은 많은 것을 남용하고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오용하고 살아간다. 그 값은 배수가 되고 있지 인간의로서의 생을 부여받은 그 감사함을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행위엔 관심이 크지 않아 보인다.


위 글에 문제점이 하나 있다. 나는 위에 써 놓은 과거 현재 미래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만행과 인간들이 속한 모든 것을 비난한 그럴 자격이 될까. 전혀 아니다. 나 역시 플라스틱을 과다하게 사용하고 비닐쓰레기는 이틀에 걸쳐 한봉투씩 나온다. 그뿐인가. 출퇴근엔 항상 경유를 쓰는 차량을 써야 한다. 내가 다니고 먹고 싸고 행동하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내가 살고 있는 행성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음에 그리고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회피성행동에 무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어쩌면 윗 문단의 실제 대상은 나였을지도.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일지도.


자격이 없다. 나는 누구를 비난할 자격이 없다. 비난엔 대상이 있다. 나를 향할 수 있도 있지만 내가 아닌 누군가를 비난하는게 일반적이긴 하다. 현세의 삶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다. 혼자 살아감을 결정짓고 혼자 사는 것처럼 보여도 국가에 속하고 어느 시 어느 구에 속한 사람이라면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혼자 차를 타고 운전을 해도 앞 뒤 옆 사방에 둘러싸인 차량과의 무언의 소통으로 운전을 해야 한다. 혼자 사는 집이 있더라도 누군가와 연락이 가능한 핸드폰을 가지고 있다. 혼자 산다고 하면 핸드폰은 사실 필요치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은 그렇다.


나는 유독 명明보다는 암暗이 더 잘 보여서 그런지 공동체적 생활권 안에서 누군가의 어두운 면을 잘 보곤 한다. 즉, 약점이나 단점이 한눈에 파악된다. 좋은 점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안 좋은 점이다. 게다가 생각이 많아 어두운 암을 보고 나면 불행하게도 암세포처럼 증식하는 듯 모든 것을 갉아먹는다. 혼자 생각의 굴레는 무한으로 굴러 좋지 않은 점을 더 극대화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오는 자괴감이 있다. 이유는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럴 자격이 없다. 누군가의 어두운 면을 보고 그것을 생각하고 판단할 자격이 나는 없다.


자격이 없는 나는 누군가를 판단할 수 없다. 아니 판단해서는 안된다. 그 사람의 혹은 그 상황에 내가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 본질은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므로. 간호사를 하면서 정말 싫은 사람들 중 하나가 왜 도움을 받으러 와서는 의료진에게 짜증 내고 소리 지르고 겁박하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갑질을 하는가였다. 저 사람은 도움을 받으러 온 것을 맞을까? 아무리 자신의 돈을 낸다 해도 의료진을 믿고 치료를 이행해야 불편한 점이 낫는 것인데 말이다. 하루는 술에 절어 온 환자를 돌보던 때였다. 역시나 정말 스트레스였다. 정말 더러웠고 불결했고 냄새났다. 마스크를 두 개 사용했음에도 몇 날 며칠 씻지 못한 채 바지에 오줌을 싸고 그대로 말려지고 모든 곳에 냄새가 누적되고 또 누적된 그런 냄새는 나를 지독하게 괴롭혀댔다.


술 취하고 집 없고 치료비 마저 없는 사람들이 건강에 문제를 느껴 환자로 오게 되면 도움을 주고 싶어도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병원은 봉사기관이 아니다. 병원 역시 비지니스다. 돈을 낼 수 없다면 치료는 끝까지 진행될 수 없다. 정말 아이러니한 구조이지만 병원에 피고용자로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여느날의 주취자는 돈을 낼 수 없음을 원무과에 얘기했고 원무과 직원은 매일 하는 일이기에 표정없이 그럼 이곳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몇 분의 무성영화처럼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 짧은 영화가 끝나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처럼 그 주취자는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는 그 옆에서 그 눈물의 굵기를 보았고. 그 순간 이 사람의 인생이, 이 사람이 살아온 인생의 곡선이 얼마나 가팔랐을지 상상이 되었다. 그리곤 나는 이 사람을 단 한 톨만큼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끝날 즈음 냄새에 대한 감각도 잊었고 이 사람에 대한 혐오감 역시 깨끗하게 지워졌다.


한 개체로서 인간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명제는 나에게 작동된다. 현재도. 그 사람을 만난 다음부터 나는 어떠한 자격이 없음을 내가 나의 생각을 굴릴 자격이 없음을 알았다. 가까이에 있는 배우자도 아직 세 살도 안된 딸내미 역시 내가 그들을 잘 안다고 내가 그들에게 선을 베풀고 또 베푼다 해도 내가 그들을 어떻게 할 자격이 없음을 안다. 이 부분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그렇다면 내가 어떤 것에 관여할 수 있는가이다. 내가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가. 내가 어떤 판단을 할 수 있는가. 내가 어떤 점을 부여해 줄 수 있는가. 그런데 과거에는 그런 관여가 필요하다 생각했었다. 그래야 나의 존재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것들이 얼마나 무의미한가에 대해 생각한다. 자격이 없다고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자격이 없다고 내가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니다. 자격이 없는 건 어쩌면 남용하지 말고 오용하지 말라는 뜻과 같을지 모른다. 내 생각을 남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 행동을 오용하지 말고 그냥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 타인 자체 존중. 어쩌면 내가 하는 생각들은 누구에게도 이해받기 어렵겠지만 정말 다행인 것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엔 중요한 경험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누구를 판단하고 심판하고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도. 내가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음을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정말로 진실로 다행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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