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없다. 진리란 허상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진리란 무엇일까. 현대사회에서 진리라는 말이 명제상으로 옳은 것일까. 이렇게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축적된 사회에서 옳은 것. 옳은 것을 주장할 수 있는 정확한 논지가 존재할까. 그것이 시간의 흐름에 실려 다른 시간으로 이동하게 된다면 과연 옳다고 하는 주장을 그대로 인용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양날의 검이고 이제는 양날의 검이 아닌 뭐 십이날의 검이지 않을까. 어떤 면을 보아도 보는 면의 옳음이 존재하겠지만 다른 면에서 보면 그것은 옳음이 아닐 테다.
1000년 전에 참이었던 것이 지금도 참일까. 적진에서 보는 잔인무도한 검사는 아군에서 보면 영웅이다. 우리나라 인구이상의 사망자를 낸 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히틀러는 독일 내에선 기간적으론 분명 국가 영웅이었다.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이지. 사람들은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은 지금 현재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안다는 것은 과신이고 맹신이다. 그것 또한 시간의 흐름을 거친다면 어떤 것도 알 수 없게 된다. 사막에 모래언덕에 존재하는 어떤 것. 그 어떤 것도 시간의 흐름을 지나면 모래 속의 일부가 된다. 어떤 것도 진리적일 수 없고 진리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기독교였다. 먼저 밝히지만 지금은 기독교가 아니다. 무신론자에 가깝다. 물론 나약해졌을 때 먼저 찾는 것은 신이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하나님.', '예수님.'의 존재를 찾지 않는다. 그냥 신이라는 무형적 절대자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지. 그래서 나는 진리가 있다고 여겼다. 기독교는 진리의 종교다. 모든 종교가 그럴 수 있지만 내가 배우고 익히고 알아온 30년 가까운 세월의 기독교는 유일신, 그리고 진리를 외친다. 그때가 편했다. 진리가 존재했던 나의 시기. 30여 년 동안 누군가가 알려주던 진리를 따르면 세상을 사는 데에 이렇게 편할 수 없었다. 진리는 존재하는 것이었으니.
그러나 그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진리다. 성경도 신이라는 존재가 말했거나 행했거나 이룬 것들을 작성해 놓은 것이라 하지만 '작성'이라는 기본적 책의 근간적 행위는 인간이 한 것이다. 작성, 기록은 강자에 의해 기록된다. 역사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성경이라고 진리의 영역이라고 인간이 한 행동 역시 진리로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기록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는다의 기본 전제는 '어떤 행위를 하는 인간은 실제 그 행동의 속성을 알지 못한다.'에서 근거하겠다. 안다고 하는 것은 착각이다. 자신이 듣고 보고 느낀 것. 그것을 들은 것 자체의 속성. 본 것 그 자체의 속성. 느낀 것 그 본질을 이해했다고? 절대 착각이다. 절대적인 착각. 알 수 없음을 나는 믿는다. 알 수 없음. 모호함. 그곳에서 나는 안정감을 찾았다.
대게 어떤 것을 안다고 함으로써 얻는 것은 불안감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알아야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성을 알지 못하는데 안다? 그것을 불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나는 알았다.'라고 손으로 하늘에 떠 있는 해를 가릴 뿐이다. 오히려 알지 못함을 인정하고 알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여야 그곳에서부터의 해방이 발생한다.
나는 기독교의 모순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교회를 가야만 한단다. 왜? 성경에 나온 한 구절. 주일성소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믿어야 한단다. 왜? 지옥 가니까. 기독교의 논리는 상벌구조다. 그런데 나는 기독교를 만든. 만들었다고 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이라는 유일신과 그의 아들이라는 예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며 그들에 존재 혹은 가치를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믿는 믿었던 그리고 그것을 진리라고 여기는 자들에 대한 혐오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정말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자신들이 믿는 신이 어떤 존재인지도 모른다. 평생을 자신들이 믿는 신 안에서 신 아래서 그가 전한 메시지를 읽고 또 읽고 마음에 품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도 벌벌 떨면서 살아간다. 그러곤 교회를 벗어난 어떤 것에서 자신은 기독교다.라는 전제로 다른 것, 기독교가 아닌 것에 대한 벌을 내리려 한다. 자신들도 벌벌 떨면서.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오래 다니고 믿고 눈물 흘리고 숭배한 교회에 대한 것도 알지 못하면서 자신들은 자신들이 더 모르는 행동과 말을 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진리도 믿지 않는다. 내가 하는 행동을 내가 안다는 전제를 나는 품을 수가 없다. 나는 내가 하는 행동과 말을 알지 못한다. 그 가치와 속성을 분명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설파를 할 수도 상벌을 규정지을 수도 없다. 나는 모르니까.
무엇을 하는지 모르는 것. 그것으로 나치의 히틀러는 전쟁을 제외한 홀로코스트 이념으로만 서울시민 숫자에 가까운 인간을 학살했다.
무엇을 하는지 모른다. 그 근원지로부터 테러리스트들은 여객기를 납치하고 건물에 들이받는다.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기에.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것은 너무나도 무섭지만 나는 그것을 인지하고 살고자 한다. 그것은 때로 너무나도 매섭고 너무나도 안정적이며 매우 잔혹하니까. 그렇게 맹신적 진리란 없으니까 무엇인지 무엇일지 알 수 없다. 진리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