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동료들과 이야기를 하다 흥미로운 주제로 꽤 오랜 시간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시작은 테슬라의 창업자인 일론머스크의 가치? 신념? 같은 것을 나누는 순간이었다. 일론 머스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출처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지만 인터뷰라고 한다.
I'd rather be optimistic and wrong than pessimistic and right.
나는 비관적이고 옳기보다는 낙관적이고 틀리겠다.
이 이야기로 수많은 생각들이 서로에게 옮겨갔다. 비관적 옳음이란 무엇인가. 옳음을 비관적으로 증명하는 방식일까. 옳음은 그대로 진리적인 개념의 옳음 아닌가. 옳음이 진리적 영역이라면 비관적이어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비관적 옳음. 어떤 문제가 있을까. 내 시선에선 옳음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또 다른 상대적 개념으로 이전의 옳음은 먹힐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옳음을 주장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옳음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 뒤에 혹은 앞에 또는 둘러싸고 있는 비관적 태도가 문제가 된다. 비관적 옳음. 옳은 비관. 비관적으로 상황을 대하다 보면 결국 닿는 곳은 수많은 벽이 세워진 막다른 길이다. 관계적 막다름.
자신에 집중하라 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크게 신경 쓰지 말라한다. 너무 관계에 연연하지 말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사방에 벽이 둘러싸여 있어 관계적인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신을 지키면 다시 길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이 개척하는 길은 자신만이 해결할 수 있음엔 굳이 더 붙일 말이 없다. 그러나 거기서 파생되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알면서도 하지 않음. 혹은 모르는 척하기. 수동적 태도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옳음이라는 가림막에 가려져 벽에 둘러싸인 막다른 미로가 아니라 뒤주게 갇힌 채 눈을 감고 해가 떠있는지 달이 떠있는지 귀를 막고 새가 지저귀는지 바람소리가 들리는지 아무것도 수용하지도 못하는 상태이다.
결국 비관적 옳음 자체에 문제성이 존재하지만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로 파생되는 수동적 태도. 눈가림. 귀 막음.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비관적 옳음이 참 혹은 진실이 될 수 있는 예는 사실 스티브잡스로서 증명되었다. 전설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가진 옳음으로 수많은 것들을 증명했고 게다가 비관적이기도 했다. 그의 사망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전설적이다. 그것은 비관적 옳음이 증명된 것보단 그의 감각, 직감이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기에 가능했다고 본다. 스티브 잡스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이 남긴 말에서 그 증거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애플이 애플이 될 수 있었던 여러 가지 순간이 있는데 그 결정들의 순간을, 스티브 잡스와 결정을 공유하고 나눈 켄 시걸의 '미친 듯이 심플'이라는 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결정은 스티브 잡스를 위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비관적임에도 그가 누군가에게 최악의 인물일지라도 분명한 것은 자신들보다 위대한 직감과 감각의 소유자였고 그것을 증명해 낸 사람이었고 과거 유명했던 위대했던 위인이 아닌 실제 자신의 눈앞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비관적 옳음은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관적 옳음이 허용될 수 있는 조건은 이러하다. 증명된 업적, 타인보다 위대한 감각 혹은 직감, 확실한 행동력, 행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관철, 그리고 생존.
반대로 그런 것들이 따라오지 못한 비관적 옳음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증명되지 않은 업적을 가진 이가 비관적 옳음을 주장한다. 감각과 직감이 꽤 후진데 비관적인 옳음을 주장한다.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비관적 옳음을 주장한다. 지구력이 없음에도 옳음만을 외친다. 그리고 그 모습들은 결국 내 눈엔 생동적인 사람처럼 살아있는 생명력의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상 사망상태다. 생물학적 사망이 아닌 정신적 사망상태. 그래서 나는 비관적인 옳음에 좋은 시선을 지니기 어렵다. 그리고 사실 나도 그러했다. 비관적인 옮은 자. 비관적으로 나의 옳음을 주장했던 자. 나의 감각만을 믿었던 자. 행동은 하지 않으면서 옳음만을 주장했던 자.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나는 도저히 비관적으로 옳음을 외치기가 힘들다.
비관적 옳음을 내포하고 있는 사람은 쉽게 변화할 수 없더라. 자신의 옳음이 너무나도 소중하고 중요하고 진리라서 다른 어떤 것이 들어올 틈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주장이 사실 진리가 아닐뿐더러 아집스러운 태세유지는 사실 어떤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틈을 내어주지 않는 것이 문제다. 어떤 생각도 수용이 불가능한 상태. 정신적 사망상태. 그 상태에서 발생하는 무행동력은 지독하게도 절망스럽다. 그래서 차라리 무지한 것이 낫다고 본다. 모르는 것이 약이다. 모르면 해맑다. 그러나 모름의 상태에선 얻을 수 있는 지혜가 차고 넘친다. 그리고 모름에서 앎으로 전환하는 곳, 그 지점에서 발생하는 빛의 틈은 감탄을 야기한다. 그리고 그 감탄은 누군가를 찬탄할 수 있으며 그 기억은 소중하게 자리 잡아 번뜩이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비관적이고 옳기보다는 낙관적이고 틀리겠다. 나에겐 아직도 증명한 여러 업적이 없으며 타인보다 위대한 감각을 지니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행동력이 우수하다 할 수 없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관철의 힘 역시 약하다. 그래서 난 비관적이며 옳음을 강조할 수 없는 요건이다. 그러나 희망인 것은 낙관적이고 틀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 빛의 틈인 모름에서 앎으로의 전환으로 어쩌면 나는 업적을 남길 수도 있을지도 모르고 지금 없는 감각이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면 낙관적이고 틀릴 수 있는 상태가 능동적으로 희망적이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낙관적이려 한다. 그리고 틀려보려 한다. 그리고 감탄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