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며 만나고 헤어지고 마주치고 부딪히고 지나치는 인연의 수는 무한하다. 그럼에도 한국의 정서상 인연을 굉장히 때론 과도하게 소중한 것으로 대접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이 정도면 인연 아니겠냐. 인연. 인연. 인연. 인연은 나와 닿는 모든 존재의 연결선을 의미한다. 인간일 수 있고. 물건 역시 인연이고 사랑하는 강아지이고 반려묘도 인연이다. 또는 매번 달리기를 할 때마다 마주하는 느티나무이자 내가 밟고 있는 길이다. 인연은 꼭 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이 나와 마주해야 할 수밖에 없던 인연일 수 있고 시간 역시 그러하다. 회사 역시 인연이며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이 인연이다.
그런데 사실 나는 인연의 소중성을 가치절하하는 편이다. 그 중요성을 잘 모르는 편이 맞겠다. 내 옆에 있으면 옆에 있는 것이다. 나의 앞에 있으면 앞에 있는 것이지 그것이 나의 마음속에서 나를 움직이게 만들고 나를 이끌며 나를 끌어당기는 그런 인연을 사실 바라지 않는 편이다. 그런 인연으로는 나의 배우자와 딸아이 정도로면 사실 족하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누구든 어떤 것이든 인연임을 알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연결된 선이 있다는 것을 느낄 때 유독 인연이구나 하고 깨닫곤 한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직장에서 누군가의 행동에 분노로 휩싸이곤 한다. 너무나도 이기적이고 모순적이고 불합리하며 언행불일치에 가까운 사람을 보면 나는 엄청난 분노에 사로잡힌다. 분노의 기운은 꽤나 오래간다. 나름 감정에 충실한 편이라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무시하려 해도 쉽지 않다. 그럴 때 난 굉장히 어리구나. 나이는 들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어린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 그럴 때, 그 순간에 인연임을 느낀다. 변태 같지만 꼭 그러하다. 분노의 절정에서 인연을 느낀다니. 그때 느끼는 인연의 선은 내 감정에 소용돌이를 잠재워 준다. 이기적이지 않았을 것임을. 모순적이지 않았을 것임을. 불합리하지 않았을 것임을. 다 이유가 있었을 것임을. 최선을 다했을 것임을. 효과적으로 행동했었음을 생각해 본다.
그럴 때 유독 나는 인연임을 느낀다. 내게 그런 감정을 쥐어주는 누군가는 분명 나와 어떤 연결된 선과 줄이 있어 내게 이런 감정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리곤 상황이 나를 스쳐 지나가면 다른 시선으로 분노유발자를 돌아보게 된다. 그럼 분노는 단지 가벼운 농담 같았을 뿐이다. 가볍게 지나간 감정. 인연이 아니라면 그런 감정이 과연 진정될까. 인연이라는 것은 행복의 감정만 즐거움의 감정만 소중함의 가치만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느낀다. 인연은 다른 존재다. 다른 개념을 제시할 수 있고 나와는 다름을 통해 내게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인연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나의 세계만 알고 있다. 나는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내가 살아가는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서만 그리고 내가 아는 바 대로 수용할 수 있다.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언어를 내가 알아볼 수 있다면 엄청난 인연이 아닐까. 가르침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가르침을 제공하고 시야를 열어주고 귀를 열어주고 시간적 공간적 개념을 뛰어넘는 어떤 가치를 꿰뚫을 수 있는 그런 존재. 인연. 그런데 가만 보면 그것도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인연이어도 보지 못하면 인연일 수 없고 인연이어도 듣지 못하면 존재를 알 수 없다. 내가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고 내가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어떤 존재가 나의 인연임을 알 수 있다.
인연은 도처에 존재한다. 어느 곳에든 내가 닿는 어떤 것이든 내가 도달한 시간이든 내가 도달한 공간이든 정말 무궁무진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내가 그런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의 인연이 될 수 있다는 건 축복과 같은 일이고 선물같은 일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다른 시선을 줄 수 있고 누군가에게 다른 개념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걸로써 굉장히 멋진 존재아닌가. 그런 인연을 많이도 만나고 싶고 나 역시 그러고 싶다. 누군가와의 연결된 자그마한 줄에 소중함을 알고 싶고 누군가에게 등을 돌리고 있어도 다시 돌아보고 맞이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감정에 휩싸이는 어린 존재이지만 그것을 잠재우고 좋은 모습을 보려할 수 있는 그리고 볼 수 있는 그런 사람. 인연은 내가 준비가 되어있어야 인연임을 알 수 있기에. 인연은 내가 정의하는 것이기에.
10대. 20대. 30대. 세번의 구획. 그 안에서 나는 인연을 얼마나 알아채고 만나왔을까. 지나쳐온 인연들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잘지내는지 알고 싶다. 친구든 직장동료든 초등학교 동창이든 나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든. 나의 인연들은 잘지내려나. 지나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지금 나와 겹쳐진 인연들에겐 소중함은 분명히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