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집중하는 삶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다. 조용한 음악을 듣고 조용하게 식사를 한다. 아이와 놀아줄 때는 어쩔 수 없이 아이에 맞추어 소리가 높아지고 흥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신나게 소리를 지르고 하는 것을 좋아하는 입장은 아니다. 단순히 육아이기에, 아이와 교감하기 위해 그럴 뿐이다. 프로답게. 그럼에도 아기와 있을 때 가능하다면 침착하고 싶고 -비록 소리는 시끄러울지언정- 조용히 독서를 하고 조용하게 글을 쓴다. 운동 역시 조용하게 하는 편이다. 운동도 웬만하면 나 혼자서 조용히 해결하는 부류다. 대부분의 운동은 달리기인데 조용한 음악을 들으면서 무던하게 뛰어간다. 혹은 강의를 듣거나. 딱히 누구에게 알리거나 내가 하는 운동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집에서 맨몸 운동을 할 때에도 모든 행동을 조용하게 가져간다. 그러는 것은 정말 모든 것을 다 조용하게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더라. 사실 조용하게 산다는 것을 방금 전에 인지했다. 생각보다 수많은 것들을 조용하게 하더라. 인지한 다음부터 조용함들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조용하게 사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윗집 이웃의 생활은 시끄럽다고 느낀다. 정말이지 언제나 신경 쓰인다. 하지만 불편함이 발생하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조용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저들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나는 조용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엇도 아닌 그냥 내가 그렇게 살기로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객관적으로 그들이 매우 시끄러워도 말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고 조용하다. 너무 단순해서 나한테 친구가 있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물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들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대체적으로 연락도 잘 주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락이 와도 잘 모른다. 핸드폰의 알림 기능은 꺼져 있고 물리적인 거리도 웬만하면 멀게 둔다. 그것 또한 그것대로 시끄럽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내 핸드폰은 꽤나 조용하다. 아니 조용하다고 느낀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때도 있긴 했다. 나의 핸드폰 역시 이전에는 꽤나 바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이를 만들기 위해서 나 역시 노력했었다. 실시간을 주고받는 사이에도 장점은 굉장히 많았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누군가와 같은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전산망이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관계에 소홀해지고 멀어지면서 굉장한 괴리감이 있었다.
그런 시간들이 이제는 소용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지나버린 시간들이 아깝기도 했다. 지금은 바쁘게 알림이 울려 답장을 빠르게 해야 하는 그런 관계들은 없다. 내가 정리해 버린 것이다. 그래야만 할 이유도 필시 있었고 꼭 그래야만 했나 싶기도 했던 생각들이 공존한다. 그럼에도 지금은 정말 조용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조용해서 침착하다. 조용하게 혼자서 하기에 누구를 탓할 것도 없다. 단순하게 나만 집중하면 된다. 조용한 삶이란 그런 것이더라. 내가 나에게 집중하는 것. 다른 외부의 소리들을 스피커 볼륨을 줄이듯 줄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그렇다면 얼마나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느냐 이다. 내가 나에게 집중을 해낼 수 있다면 이런 조용한 삶은 내가 나를 정말로 위하는 삶인 것이다. 대게는 외향적이고 바쁜 것이 좋고 복잡한 것이 좋은 사람이 많다. 나 역시 그랬다. 내가 처음 사회생활에 뛰어들며 가고 싶어 했던 부서 역시 제일 바쁘고 제일 힘든 곳을 가고 싶었다. 그러곤 끝끝내 그곳에 갔다. 그리고 나는 일을 잘 해냈다. 인정도 받았고 승진도 무난하게 하고 직장자체에서 나의 입지는 탄탄했다. 정말 바쁘게도 살아갔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내가 없었다. 깜깜한 방 속에 눈을 뜬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도 자세하게 돌아봐도 정말 내가 보이질 않았다. 지금 나의 모습이 내 모습인지 분간이 가질 않았다. 거울 속의 나는 분명 나인데 내가 아는 나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분명한 이질감. 내가 분명 모르는 사람이 거울 속에 나로 존재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맨인블랙'의 외계인에게 몸이 먹힌 것 같았다. 바쁘게 살아간 만큼 바쁘게 뛰어가는 인생의 속도만큼 내가 보이질 않았다. 내 몸속의 누군가 나보다 더 빠르게 달려 나가는 것 같았다. 유체가 이탈하는 듯 빠져나간 나를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거울을 보면 거울 속에 내가 빠르게 지나가곤 했다. 너무나도 바빠서 나를 돌볼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더 자세히 따지자면 거울을 들여다 보고 내 얼굴이 어떤지도 볼 시간이 없었다. 그것 또한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러한 시간들 역시 나를 이루게 된 중요한 발판이겠지만. 내가 나에게 집중하지 못해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바쁘지만 단순하게 살아왔다. 바쁘며 단순해서 좋은 것인 줄 알았다. 사실 나는 지치고 힘들었는데 말이다. 그 힘듦을 나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단순했고 바쁘게 살아왔다.
지금은 그런 생활과 완전히 반대되는 삶을 선택했다. 조용한 삶. 정적에 가깝다. 조용한 삶이란 실제 데시벨이 적은 것도 맞지만 온전한 나만의 삶이라 볼 수 있다. 특별한 이벤트가 적기에 조용하다고 표현한 것도 맞는 것이다. 바쁘지 않기에 조용하다. 바빠도 조용하게 살아가기 위해 억지로 속도를 늦춘다. 그럴 수 없어도 강제로 늦춘다.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항시 올려둔다. 그리곤 제동을 원할 때 건다. 실제로 소리도 많이 내지 않기에 조용하다. 청각적으로나 촉감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조용한 것이다. 밥도 집에서 삼시 세끼를 잘 챙겨 먹는 것도 조용한 삶이다. 거창한 식사도 필요가 없다. 좋아하는 라면에 콩나물 한 줌 넣어 뚝딱하면 조용한 한 끼가 해결된다. 하루에 운동과 글쓰기모두 빼먹지 않고 사는 삶 역시 조용한 삶이다. 작은 전등을 하나 켜두고 나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러곤 워드파일을 켜고 슥슥 써 내려간다. 조용한 삶은 그런 것이다. 조용하게 내가 할 일을 꾸준히 하는 것. 그리고 그 꾸준함을 사랑하는 것. 조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나는 그런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가끔은 이전사진들을 보고 이전에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과 연락을 들춰보고 싶은 욕구도 강하다. 그럴 때도 있다. 그럴 땐 핸드폰을 쉽게 놓지 못한다. 그런 잔상들이 나를 다시 착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제는 그렇더라도 다시 나만의 조용한 자리로 돌아온다. 조용한 삶을 몸도 정신도 현재의 내가 그 모습을 사랑하는 것 같다. 조용하게 살기로 한 이상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다. 조용하게 살기로 했다. 그리고 조용하게 더 살아나가려 한다.
정말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있다. 바다처럼 파도가 출렁이며 나에게 다가오지도 않는다. 그냥 물이 존재할 뿐. 자극적이지도 않다. 물이 존재하기에 바람에 의해 가끔 움직일 뿐. 빛이 있기에 물체들이 빛에 의해 반사되어 호숫가에 비추어질 뿐. 그저 그런 삶.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 지금의 모든 것들이 자신에 집중한 순간들이 모인 조용한 삶을 이루고 있다. 조용하게 산다는 것. 정말 그것은 내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삶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