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달리기와 나. 세 번째.

달리기 일지 그리고 그림자 쫓기

by 지우

어느 러닝 하는 날이었다. 진작에 새벽 5시 알람을 맞추어 눈을 뜬 것이지만 이렇게도 어두운 새벽일 줄은 몰랐다. 아직 겨울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새벽이라 그런지 예상과는 다르게 빛이 나를 반겨주지는 않았다. 그렇게 유독 더 어둡게만 느껴진 새벽이었다. 전날 새벽 5시에 알람을 호기롭게 해 두었지만 밤동안 잠을 온전하게 자지 못했기에 몸을 일으키는데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전날 오늘만큼은 새벽에 뛰어야겠어라는 힘을 마음에 심어놓아서 일단 몸을 힘껏 일으켰다. 새벽 5시는 육아에 있어서 굉장히 위험한 시간대이다. 아이가 잠을 적당히 잘만큼 잔 시간대라 깨어있을 때도 있고 선잠을 자고 있어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기도 하다. 그러기에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느린 속도와 최고의 예민도로 아이가 깨지 않게 살금살금 문을 열고 나와 주섬주섬 영하 3도의 맞는 달리기 복장을 갖추었다. 그래봐야 타이즈 1개, 달리기용 패딩조끼를 입는 것뿐. 시간으로 따지만 10초도 안된다.


오늘은 산책로를 따라 뛰지 않고 종합운동장에 있는 트랙을 달리기 위해 밤새 얼어붙었던 차에 올라탔다. 종합운동장까지는 차로 약 10분 정도 거리다. 차는 말 그대로 냉동고였다. 고작 영하 3도의 날씨였지만 영하 3도의 온도가 누적되어서 그런지 체감상으로는 영하 10도에 가까웠다. 오히려 잠도 깨고 좋지 뭐 하며 긍정회로를 돌렸지만 손은 온열시트 전원버튼으로 향했다. 오히려 온열시트가 활성화되니 잠을 떨쳐내기 어려워 노래도 신나는 것을 듣고 입도 풀고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하는 등 잠을 쫓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헛수고인 듯했다. 우여곡절 끝에 종합운동장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가 코끝을 때리고 있었기에 가벼운 조깅으로 몸을 풀로 했다. 대략 3바퀴 정도. 트랙은 보통 한 바퀴에 400m쯤이니 1km 근방을 뛴 것이다. 몸이 적당히 데워진 것이 느껴졌다. 슬슬 제대로 된 오늘의 달리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다. 10km를 목표로 달리기를 설정했다. 아직 나의 러닝실력으로는 10km가 무리하지 않는 선의 경계지점이다. 1km당 6분 페이스로 시작하다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려 4분 중후반대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종합운동장은 굉장히 부지런한 공간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어언 2년이 되어가지만 트랙은 처음이기에 이런 분위기는 제법 생소했다. 새벽 5시에 나만 뛰고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할머니 중 나이가 더 있으실 듯한 할머니 한분과 트랙을 벗어나 더 넓은 공간을 달리는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있었다. 두 인물은 나의 트랙 위 달리기에 방해가 될만한 위치는 아니었다. 오롯이 트랙 위엔 나 자신뿐. 나만의 트랙에서 내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앞뒤로 반복운동을 하는 팔과 나의 형광색 러닝화를 신은 두 다리 그리고 하늘에는 위성으로 보이는 밝은 빛과 그 옆에 작은 별들 그리고 새벽행 비행기들이었다. 많은 것들이 자극적이지 않았기에 그저 달리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집중해서 달려본 적은 처음이라 오히려 집중이 되지를 않았다. 무한궤도의 반복이며 뫼비우스의 띠 위에 내가 올라간 느낌이었다. 위에서 말했듯 트랙 달리기는 초행이다. 항상 산책로의 흔한 강물의 흐름과 나무 그리고 풀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 거리에서 달렸었다. 그랬기에 트랙에서 홀로 달리는 느낌은 굉장히 기묘했다. 기묘하다 못해 현실성이 떨어지는 듯 달리기를 했다. 그러면서 보였던 것은 운동장에 작은 불빛에 맞추어 나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고정된 조명에 맞추어 때로는 나의 뒤에서 때로는 나보다 훨씬 앞서나가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보다 저 멀리 앞서있을 때는 내가 그림자에게 종식당할 것처럼 보였고 내가 그림자보다 앞서 있을 때는 무언가 모를 성취감도 들었다. 그 반대로 느낄 때도 있었다. 앞서있던 그림자를 맹렬하게 쫓았고 또 뒤따라오는 그림자를 떨쳐내기 위해 열심히 달렸다. 그림자를 인식한 다음 그림자만을 생각했다. 결국 내가 경쟁하고 싸워야 할 대상은 나임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누구도 중요하지 않은 상태로 그저 나와 대결을 하는 것이다. 외부의 대결이 아닌 내부의 대결이다. 나의 인생을 통틀어 나의 그림자가 나를 앞서있을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혹은 빛이 나를 비추어 그림자보다 앞서있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한층 한층 더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갔었을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나아갔다면-지금 잘 살고 있는 것 보면 나아갔던 것 같다.- 나의 그림자를 앞질러 한 번 더 성장했을 것이고 뒤따라 오는 그림자에게 잠식당하는 것처럼 보여도 다시 한번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정말 맹렬하게 쫓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맹렬하게 이기고 싶었다. 아마 내 옆이나 나의 앞에 같은 러너가 있었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도 못했을 것 같다. 총 10km를 달리는데 필요한 트랙바퀴수는 30바퀴 정도. 그림자와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니 30바퀴는 어느새 시간의 감각을 넘어서 자연스러운 나의 몸의 움직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때로는 따라잡고 때로는 따라 잡히고. 잠이 덜 깬 채 달렸지만 새벽 달리기 안에서 누군가에게 가르침을 받은 듯했다. 한 시간 남짓 달리는 거리 안에서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다. 인생에서도 그러하지 않았는가 싶었다. 그러기에 나는 계속해서 삶을 맹렬하게 쫓기로 했다. 달리면서도 다짐했고 그 다짐이 계속해서 되뇌었는지 아니면 곱씹은 것인지 메모해두지도 않았지만 그것을 다시 기억해 내 적어가고 있다. 삶은 맹렬한 것이다. 맹렬하게 버티고 뒤집고 앞서고 다시 뒤처지다 보면 원하는 지점에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그 무엇도 아닌 내가 나를 쫓는 것이기에 맹렬해도 큰 손해가 없다. 결국 나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이날의 달리기를 생각해 본다. 그때의 맹렬함이 아직까지고 살아있나. 오늘 나는 맹렬하게 살았나. 적당히 그런 것 같기도 한 날이 있고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적당히든 열심히든 맹렬 히든 하루는 평안히 살았든 결국 그림자를 생각하며 다음 하루를 준비한다. 그렇게 달리기로서 얻은 가르침을 기억한다. 하루하루 내가 해나갈 수 있는 것들은 항상 해나가고 있다. 그러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맹렬하게 쫓고 있음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계속 발전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맹렬하게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