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축제를 위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혼란한 생명의 싹 틔움이 절로 떠오른다.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따위에 순백 문외한이지만 굉장히 혼란스러움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곡이다. 겨울의 얼어붙은 모든 것을 뚫으려 내려오는 햇빛,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피어나는 푸른색의 힘, 땅에 스며들어있던 냉기들이 천천히 솟아오르다 사라지는. 이 모든 것들이 생명의 새로운 시작, 다시 한번 계절이 돌아왔고 그것은 봄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한편으로는 폭력적으로 느껴질 만큼 강한 음악으로 들려온다. 처음 들었을 때 충격에 가까웠다. 아버지가 클래식 마니아였기에 어깨넘어 들어왔던 오케스트라의 음악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알겠더라. 녹아내리는 봄에서야 들어보는 봄의 제전은 분명 봄에 대한 적확히 표현한 것임을. 그리고 봄의 제전이라는 제목은 단순한 한 부분의 음악이 아닌 마지막에서야 알 수 있다. 이것이 축제라는 것을. 봄이 왔다는 것은 축제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다.
최근 하늘은 지상의 모든 생명력을 가진 것들에게 분명하게도 일러주고 있다. 봄이 왔다고. 아침에 눈을 뜨면 보이는 천장과 벽에 비치는 어스름한 빛마저 외치고 있었다. 봄이 왔음을. 단 하루 차이인데 몸에 따스한 느낌이 감돌고 온화함을 느끼는 것은 정말 봄이 왔다는 것을 구석구석 속속들이 알리는 느낌이다. 창을 투과하여 내리쬐는 햇빛도, 전선에 걸쳐진 채 언제 떨어질지 모를 새벽 이슬들도, 맞은편 빌라 옥상 난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지저귀는 참새들도 모두들 축제준비인 듯하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알려주었다. ‘이제 추웠던 겨울이 지나 따스한 봄이 왔어!’. 딸아이는 저게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고개를 갸우뚱하고 쳐다보고 있었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아직은 이해하기 힘든 것이리라. 그 사이 나는 거실로 들어오는 햇빛이 좋아 그 위에 앉아있었다. 딸아이에게 아빠 옆에 있는 햇빛으로 오라고 손짓 했다. 무척이나 따스하다고. 그 말을 듣곤 바로 후다닥 달려와 햇빛이 비추는 선명한 자리에 뒹굴거렸다. 내가 말한 햇빛을 잠시 느끼는 듯했다. 따듯하냐고 물어보니 따듯하다더라. 그것이 그냥 나의 말에 대답한 것일까 궁금했을 찰나에 뒹굴 누워버리는 것이 진짜 좋았던 것 같다. 어쩐지 나의 옆에 햇빛을 받으며 뒹굴거리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봄이 더 실감이 되었다. 그 모습만으로도 마음까지 따스해지는 느낌. 유난히도 눈이 많이내렸던 지난 겨울의 얼어붙은 모든 것들을 녹이는 듯한 따스함이었다.
생각해 보니 봄을 준비하는 내 마음 한가득 페스티벌 중이었다. 마음 구석구석 각지에서 서로의 집들에 꽃이며 아름다운 장식들을 처마와 문 난간 우편함까지 꾸미고 있었다. 그 축제는 무엇을 위한 축제일까.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 다들 분주하다. 일곱 난쟁이들이 백설공주를 다시 맞이하기 위해 이곳 저것 마음을 쓰고 하나하나 손쓰는 듯한 모습이다. 마음속에서도 이제 봄이 왔음을 어느새 깨닫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있다. 일년의 시작이 1월이 아닌 바로 지금인듯 하다. 많은 것들이 얼어붙어 있는 겨울엔 잘 느끼지 못했다. 새로운 해의 1월 1일이 나에게 다가온다 한들 새로 시작되는 것에 정확한 감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3월은 다르다. 봄이 왔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새로운 날이 시작될 것이 분명했고 새로운 일들이 시작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새로운 것들이 시작되어질 준비들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렇게 봄을 완연히 느껴본 것은 언제였을까 싶었다. 봄을 받아들이고 있는 이 순간. 모든 것들이 축제였다. 어쩐지 이제부터 있을 나날들은 행복하고 잘 될 것 같은 유려한 생각들이 샘솟았다. 이 감정을 잘 이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일 일기를 쓰며 나의 마음을 담아내고 있고 햇빛이 있으면 피부로 닿기 위해 옷을 걷었다. 이전까지는 일광욕을 왜 하는지 전혀 몰랐지만 이제야 일광욕을 하는 행동의 취지를 알게 되었다. 햇빛을 맞이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삶의 많은 것들이 축제같게 느껴진다. 이렇게 느껴진 이상 내 마음속에서 일어날 축제를 잘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오늘의 감각을 잊지 말아야겠다. 재빨리 일기를 써 내려갔다. 내 인생에도 봄이 왔음을. 그간의 굳었던 내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기회일 테니. 컴퓨터를 켜고 한글 2018 버전을 켜 봄에 대한 글을 써 내려갔다. 그간 냉랭했던 대지에 빛이 내려와 따스함을 주고 꽃이 만개하고 녹음이 우거지게 될 테니까. 글을 다 쓰고 나니 한숨이 나온다. 다급함과 불안함 그리고 불안정함에서 나오는 한숨이 아닌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가득 차고 새로 생겨나 잠시 배출해 내는 한숨 같은 것. 모든 것에 봄이 오고 있다. 정말로 봄이 다가왔다.
어쩐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조금은 더 행복하게 그리고 긍정적으로 살아도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것이 우매하거나 세상을 참 모르는 소리같이 생각되지도 않는다. 나의 인생이 그럴 뿐. 너무 예민하지 않아도. 너무 모든 것을 관여하지 않아도. 너무 많은 것을 해내려 하지 않아도 될 뿐. 그러다 보면 행복을 더 알게 될 수 있고 행복을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럴수록 더 많은 것들에 대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또 긍정적인 면모를 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나 역시 긍정적으로 행동하고 대할 수 있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설렘. 행복하고 싶다. 행복하기 위해서 이제는 살아가고 싶다. 세상은 따듯해지고 있고 너도 따듯해질 거야라고 하늘이 봄을 알리듯이 말이다. 봄이 왔으니 이제는 나도 좀 발을 쭉 뻗어 행복을 가득 온몸으로 온 피부로 담아내고 싶다.
분명하게 축제다. 봄이 왔다는 것을 아는 것이 축제다. 봄의 제전. 나는 나의 인생의 축제의 시기가 다가왔음을 그리고 그 축제를 온전히 즐길 준비가 되어있음을 깨닫고 있다. 축제의 주최자는 나, 주인공도 나, 관객도 나. 오로지 나를 위한 축제. 다가올 축제를 위해 나는 행복해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