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기억이 가물가물한 걸 보면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이었던 것 같다)
다 고만고만하게 산다고 생각했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집은 가난한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럼에도 아빠의 월급날, 생일 같은 특별한 날, 시장에서 특별한 음식을 득템 한 날에 소박하지만 가득했던 한상차림은 나에게 완벽한 ‘식탁’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떤 비싼 고기보다 맛나게 먹었던 삼겹살 구이, 먹기에 너무 무서웠지만 아빠가 먹여주던 참기름 바른 꿈틀이 낙지 탕탕이, 오버해서 거의 반나절을 끓였던 것 같은 닭백숙.
형제자매가 없던 덕에 식탐을 부리지 않아도 내 몫은 늘 넉넉했던 식탁.
나를 챙겨주는 부모님의 손길이 더 따뜻하게 남아 있기 때문일까…
지금은 당연한 학교급식 대신 엄마들의 수고와 정성이 녹아난 엄마표 도시락이 아이들 사이에서 감성 그대로 평가되던 시절을 보내며, 내 식탁은 점점 더 소박해졌다.
엄마가 직업 전선에 뛰어들면서부터다.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내가 나이가 들수록 파트타임 일거리를 시작으로 식당일을 나가시더니 아빠와 함께 식당을 차리고 꽤 오랜 시간을너무나도 치열하게 식당 주방에서 보냈다.
요리솜씨가 좋았던 엄마였지만 하루종일 음식을 만들다 보니 집에서도 다양한 반찬거리를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해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늘 마른 멸치볶음, 진미채, 콩자반, 다양한 종류의 장아찌 같이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 두고 오래 먹을 수 있는 찬거리로 채워졌다.
물론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면 금방 차려지는 맛있는 정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나를 위한 도시락은 오랜 학창 시절 동안 거의 비슷한 메뉴로 구성되었다.
딱히 가리는 음식도 없고, 엄마의 뻔한 사정도 아는지라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그 이후부터 난 멸치볶음을 싫어했던 것 같다.
태생적으로 식탐이 없어선지, 후천적인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끼니'란 그저배고픔을 해결하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정도의 가치였다. 이와 관련해 크게 불편한 일도 없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형성된 식사에 대한 나의 생각은 결혼을 하고 내 가족의 끼니를 챙기게 되면서 나에게 고난이 되었다.
요리에 완전 젬병은 아니었지만, 메뉴를 선택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에너지를 쏟는 일 자체가 내겐 엄청난 노동이었다.
그냥 있는 음식을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될 것 같은데, 남편은 귀하고 맛난 음식을 ‘굳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일부러 찾아’ 먹는 수고를 좋아했고, 아이들을 위해서도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식의 맛집탐방, 먹방의 트렌드를 이미 어린 시절부터 생활 속에 녹여 온 사람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내게는 요리에 대한 내 능력치 이상의 애씀이 ‘시간낭비’ 같았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나와, 가족을 위한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이 더 가치롭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애써서 장보고, 음식을 만들고, 식탁을 차렸지만, 그건 내 기준에서의 ‘끼니 해결’인 경우가 되었다. 남편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는 되지만, 회사 업무와 집안일에 비해 요리는 그만큼 나에게 어려운 숙제였다. 결혼 초기, 육아 초기, 서로의 가치관과 식습관의 차이로 생기는 사소한 갈등이었고, 하루하루 삼시세끼, 때론 외식찬스를 쓰며(남발했을지도….) 쌓아 온 내공이 어느 정도 생겨서 적당한 타협으로 식사에 대한 가치관의 간극을 좁혀가고 있다.
하지만 문득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위한 밥상을 차려 에너지를 소진한 후, ‘귀한’ 나의 요리지만 ‘남겨진’ 음식을 ‘처리’하는 내 모습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찮다는 이유로, 어린 시절 손님에 밀려 냉장고의 마른반찬으로 채우던 나의 도시락처럼, 내가 나의 식탁을 ‘남은 것’으로 채우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먹고 싶은 음식을 생각하고
정성스레 준비해서나에게 대접한다.
혼자라도, 온전히, 예쁘게 나를 챙기는 그 시간이 쌓여 ‘빛나는’ 내가 되기를 바라며…
음식을 대하는 태도에서 발견한 나와 그 너머.
반성이라기보다는 ‘알아차림’을 통해 나를 챙길 수 있었던 하루다.
오직 나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면서 삶이 크게 달라졌다고 믿는다
"오직 나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차리면서 삶이 크게달라졌다고 믿는다"- 강효진(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