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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n 07. 2024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아동보육시설 그룹홈



“지금 어디로 가는 거에요?”



제법 집에서 멀어진 듯했는데 차가 끝도 없이 달렸습니다. 가도 가도 산이었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약간 긴장이 되어 잠이 오진 않았습니다.



‘설마 나를 이상한 곳으로 데려가진 않을까? 에이 그건 아닐 거야' 하던 차에, 어느 집 앞에 저를 내려주셨습니다.



시설이라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냥 일반 가정집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소규모 양육시설 그룹홈이었습니다.



낮 시간이라 아이들은 학교에, 집엔 시설장이신 목사님, 사모님 그리고 넘 애기같은 아들내미가 있었습니다.



”음료수 먹어도 돼요?”
“그럼! 안 물어봐도 돼”



처음엔 좀 낯설었지만 왠지 모를 편안한 분위기에 금방 적응이 되었습니다. 생긋생긋 웃던 아들내미와 놀아주다 함께 잠이 들었습니다. 안 그래도 먼 길을 오며 피곤하기도 했고 긴장이 풀렸던 것 같습니다. 근 몇 달간 잔 것 중에 가장 개운했습니다. 사모님도 ‘애기가 다른 사람과는 잠을 안 자는데, 신기하다’고 하셨습니다.






편안한 것이 오히려 낯설었던 그룹홈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입소하고 보니 아이들 중 제가 가장 언니였습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룹홈을 찾아오고, 때로는 떠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양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룹홈에서 지내면서 ‘내가 겪은 것은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느낀 적도 많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그룹홈에 입소한 아이들은 '큰아빠' , '큰엄마'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저는 그런 호칭이 약간은 어색해서 '목사님', '사모님' 이렇게 부르기로 했습니다.



한동안은 동생이 아버지에게 맞는 악몽에 수없이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난 삶 속에 익숙해지면서 동생과의 기억도 점차 흐릿해졌습니다.






그룹홈 입소 절차를 마치고, 전학을 가자마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기말고사가 바로 그다음 주에 있었던 것입니다. 시험 범위도 달랐고 준비할 시간도 많지 않아 준비가 미흡했습니다. 시험을 보고 나니 수학 과목에서


13점


을 받았습니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점수였습니다. 그런데도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니! 뭔가 기분이 너무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운 좋게도 국어 과목은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 전학 가자마자 교내 팝송 경연대회도 개최되었습니다. 나갈까 말까 한 5초 정도 고민하고 나가기로 했습니다. ‘My love will show you everything’이라는 노래를 기깔나게 불렀습니다. 1등을 하면서 반 친구가 ‘너 혹시 폭풍의 전학생 아니냐‘ 물었을 때 내심 우쭐했습니다.



심리적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 저는 의욕적으로 공부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성적도 수직상승했고 그룹홈에서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사귄 친구들도 너무 좋았습니다. 대학을 가긴 가야겠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주위 친구들을 많이 귀찮게 했었는데 참 친절하게 모르는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점심 먹고 같이 매점 가고, 학교 일찍 끝나면 분식 먹으러 가는 소소한 일상을 함께 하는 것도 참 즐거웠습니다. 지금까지도 힘들 때 서로 의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좋은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편하고 좋은 친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터놓고 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습니다. 친구들도 굳이 묻진 않았지만 속마음을 꺼내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제 상황을 누군가 알고 놀릴까 방어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생 땐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약간은 호전적인 면도 있었지만 제가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학교 선생님들과 목사님이 옆에서 많이 조언해 주셨습니다.



지금 학원 선생님이 되고 보니,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이끄는 것 또한 많은 정성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종종 제게 진심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으신 어른들을 생각하면 참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대학 원서접수를 앞두고, 어렸을 때부터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았고 바로 취업하는 것보다 진학해 공부하면서 진로도 조금 더 고민하고, 교환학생으로 해외에도 나가보고, 기회가 되면 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실 공부 그 자체에 엄청난 흥미가 있었다기 보단 어렸을 때 해외에 나가고 싶었던 그 바람을 대학 진학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룹홈에 오지 않았다면, 목사님 사모님 같은 좋은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룹홈 덕에 제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온 것처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을 키워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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