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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n 04. 2024

내가 가출한 이유

살려고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동생은?"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등학교로 학교로 진학하면서, 성적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특히 수학 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갈수록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공부도 한다고는 했지만 반 실장으로 지내며 반 친구들 고민 들어주는 일에 더 흥미가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만 해도 아버지께서 매년 생일이 되면 아귀를 시장에서 사다가 아귀찜을 직접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생일은 혼날 일도 없고 1년 중 가장 행복한, 항상 기다려지는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며 생일도 그냥 평범하게 지나가는 날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당시 답답한 마음에 일기장에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는 겨울나무가 안쓰럽다는 내용의 시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어느 날, 집에 모의고사 성적표가 왔는데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러고는 주말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던 중이었습니다. 어릴 땐 참 교회를 열심히 다녔었는데 특히 찬양을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사람들 앞에서 찬양 인도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가 앞으로 나와 저를 향해 손찌검을 하고 손에 쥔 칼까지 휘두르려 했습니다.



당혹스러운 상황에 저는 뒷걸음질 쳤고 교회 전도사님 뒤에 숨었습니다. 어딘가로 데려가 저를 숨겨주시고 문을 잠그셨습니다. 그 뒤의 상황은 대략 경찰차가 왔고 저는 잠시동안 전도사님 댁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집도 아닌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온몸이 떨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집에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만들었던 고등학교 미술 수행평가 숙제, 각종 짐이 집에 있어 집에 다녀와야 했습니다. 혹여나 보복당할까 무서워 경찰관 아저씨와 동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집에 있던 아버지는 제게 컵을 던지며 소리쳤고 컵은 산산조각 나며 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바래져 갈 때도 컵이 깨지며 바닥에 흩어졌던 그 유리조각들의 잔상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뇌리에 남았습니다.



이후 저는 또 한 번 몰래 집에 들어가 겨우 노란 운동 가방 하나를 챙겨 나왔습니다. 부서져 있는 미술 수행평가 숙제까지는 챙기지 못해 결국 제출하지 못했습니다. 집을 나와서 뭘 해야 할까, 아무 계획도 없었지만 그저 집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집을 나오긴 했는데 갈 곳은 없고, 막막한 마음에 먼저 친구네 집으로 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친구네 집에서 저를 받아주지 않았다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후 아는 언니네에서도 신세를 졌습니다. 하지만 신세 지는 것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수중에 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혹여나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진 않을까 하루하루 가시방석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학교 선생님들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제게 용돈도 주시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학교에 오셨습니다. 자세한 가정학대피해를 설명하고 가정으로부터 분리 거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후 가출 청소년 단기쉼터에서 잠깐 지냈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합숙소 같은 느낌의 시설이었습니다. 들어가니 어딘가 어색하고 눈치도 보였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곧 다른 시설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감사하게도 빠른 시간 내에 갈 수 있는 시설을 알아봐 주셔서 얼마 지나지 않아 갈 채비를 마쳤습니다.



반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서둘러 짐을 챙겨 떠났습니다. 친한 친구한테조차도 차마 솔직한 얘기를 꺼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반 친구들은 전학 간 이후 제게 롤링페이퍼를 보내주었습니다.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습니다.



하루하루 불안하고 두렵고 예민했던, 그때는 17살 말이었습니다. 차를 타고 보호시설로 향하면서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또 다른 생각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나는 이렇게 떠나지만, 동생은 어쩌지?‘



아끼는 동생을 두고 집을 나간다는 것은 생각도 안 했었는데, 다신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한 순간의 결심으로 어느새 집을 벗어났습니다. 그렇게 꽤나 먼 길을 떠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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