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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 Jun 11. 2024

실례지만 자랑 좀 하겠습니다

즐거운 대학생활



“어떻게 여길 오셨어요?”


경찰서였습니다. 자신을 기자라고 소개한 한 남자분이 말을 걸었습니다.



"대학교 면접 보러 왔는데요. 잘 곳이 없어서..."



‘대학 면접이 오전이니 전날 근처 찜질방에서 자면 되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찜질방에서 미성년자 숙박을 받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습니다. 일단 급한 대로 근처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교회 문은 굳게 닫혀있었습니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편의점을 서성이다 이내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런데 편의점 근처에 있는 경찰서 표지판이 보였습니다. ‘경찰서면 그래도 안전하겠지?’ 대뜸 경찰서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출입을 거절당했습니다. 근처를 배회하다 갈 곳이 없어 또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또 거절당했습니다. 삼고초려 끝에 제 사정을 들으시고 민원실을 열어 주셨습니다.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곳에서 면접 준비를 하기로 했습니다. 개인 사생활이 포함되어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민원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고 고성이 오가기도 해서 눈치 보며 면접 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게 말을 건 기자분은 제가 면접을 보러 온 학생이라 대답하자 면접 준비를 도와주겠다 하셨습니다. 모의 면접이라고 생각하라며 이것저것 질문을 하셨는데 매끄럽게 답할 수 있는 문항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 면접 준비 좀 도와주세요.”



무슨 용기로 처음 본 사람에게 그런 부탁을 했는지. 다행히 기자분은 친절하셨고 예상문제와 답변 준비를 도와주셨습니다. 준비하다 보니 밤을 새 버렸습니다.



다음 날, 면접장에서 면접 준비를 도와주신 은인 덕에 준비했던 질문들과 거의 비슷한 질문들을 받았습니다. 찜질방에서 자려고 했던 썰까지 풀어가며 적극적으로 저를 어필했습니다. 결과는 합격이었습니다.



대학 합격 통보를 받고 지방에서 올라와 대학 근처 고시원에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시원비를 내고 나니 당장 통장에 15만 원도 없어 급하게 아르바이트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당장의 생활비를 마련하고 몇 개월 후 대학 기숙사로 이사했습니다. 목사님 사모님께선 제가 필요한 생필품을 보내주셨고, 장학금 관련 공고가 있으면 정보를 공유해 주셨습니다.






대학생활을 떠올리며 가장 기억에 남는 키워드 들을 몇 개 뽑아보자면 전공공부, 봉사활동, 아르바이트, 좋은 친구들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학에 진학하고 첫 학기엔 정치학개론, 국제관계입문 등의 수업을 들었습니다. 당시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공약을 비교해 보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참 재미가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첫 학기를 마치고 나니 전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습니다. 딱히 자랑할 곳이 없어 목사님 사모님께 자랑했는데 제게 메일을 한 통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열심히 했더구나.

이거 읍사무소에서 발급받아서,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하고 왔다며,

(중략)

고생했다.
그리고 정말 열심히 살아줘서 고맙다.

이렇게까지 열심일 줄 몰랐어.
그래서 더 다행이고, 뿌듯하다.


 




‘그런데 다음 학기는 어쩌지?’



역시 돈이 문제였습니다. 아르바이트는 대학 내내 필수였고 새벽까지 일을 하다 오전 수업을 들으러 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재단의 장학금 신청 공고를 보았습니다. 봉사활동을 하면 4년 동안의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얼른 신청해서 면접을 보러 갔습니다.



“학점이 엄청 높네요.”



공부를 열심히 해놓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4년 장학금을 받아 등록금 걱정을 덜었습니다. 장학금을 받는 조건은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침 잘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대학 재학 기간 동안 초등학생 아이들 수학 영어도 가르쳐주고, 외국인 유학생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학습 도우미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또 장애학생 대필도우미도 하고 OO구청에서 진행하는 고등학생 대상 저소득층 멘토링도 참여했습니다.



제가 가르치던 친구는 참 성실하고 조용한 아이였는데 어느 날은 방탈출카페를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해서 같이 갔습니다. 평소 멘토링 하면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이고 활발한 아이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공부가 항상 재미있던 건 아니었습니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에 하기 싫을 때도 많았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 번은 발표가 너무 부담되어 피해버린 날이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한번 더 기회를 주신 덕분에 제 잘못을 반성하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장학금도 받아야 하니 해야지 하는 마음 반, 또 하기 싫은 마음을 누르고 공부하다 보면 ‘나름 재미가 있네’ 여겼던 것 반이었습니다. 대학에서 들었던 수업을 떠올려보니 정치외교 전공을 선택했긴 했지만 주로 정치 관련 수업을 수강했습니다.


한국정치 / 비교정치 / 정치의 이해와 분석 / 민주주의와 선거제도 / 정치통계와 데이터분석 / 북한정치 / 정당정치론 / 대중매체와 정치 / 정치체제론 / 한국정치사 / 여론과 선거경쟁


등의 전공과목을 들었는데 감사하게도 대학 공부에서 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었습니다. 통계 정도를 제외하고는 수학을 배울 일이 거의 없어 ‘수학을 안 하니 살만 하네‘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성적은 날개를 달았습니다.



기억에 나는 과제는 ‘대중매체와 정치’라는 수업에서 제가 ‘정치 이슈와 연예 이슈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나름의 결론을 내 본 일이었습니다. ’정치 이슈가 터지면 연예인 기사로 덮는 것 아니냐‘ 하는 그런 소문들이 진짜 실체가 있는지 참 궁금했습니다. 당연히 답을 내기는 어려운 문제이지만 참 열심히도 고민해 봤습니다. 교수님도 제 열정을 칭찬해 주셨습니다.



수업을 들으며 미디어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언론 관련된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학업은 학업대로, 봉사활동은 봉사활동대로, 아르바이트는 아르바이트 대로, 잘 흘러갔습니다.



등록금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된 이후에는 편의점, 주점, 공공기관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고 지속적으로 좋은 성적을 유지하여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자 본격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피곤하다는 핑계로 진로 고민은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뤄두었습니다.



 옆에서 룸메언니들이 ‘취업 어렵다, 힘들다’ 하며 곡소리를 내던 때에도 다가올 현실을 모른 채 하루하루 살기 바빴습니다. 그때는 그 진로고민을 미룬 대가가 어느 정도의 크기로 돌아오게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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