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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ist Jun 20. 2023

02.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인

음식은 기억이다



 김치 싫어하는 한국인이 어디있냐고?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의 김치혐오증은 유치원 때부터 시작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맞벌이 부모님을 둔 4살의 나는 갑자기 유치원에 가게 된다. 그렇게 가게 된 유치원은 좋아하기가 힘들었다. 새로운 환경은 어린 나에게 너무 과했다. 그 과함의 정점을 찍은 것이 김치였다.


 우리 엄마는 태교할 때 자극적인 음식을 피했는데, 그 중 하나가 김치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김치를 잘 먹지 못했는데 어른들은 역시 태교할 때 안먹은 음식은 안 먹는가보다 하며 웃어넘겼다. 하지만 유치원은 그러지 않았다. 배식을 받고 김치를 눈 앞에 둔 나는 그 신 냄새, 매워보이는 색 모든 게 싫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까지 한 번도 무언가를 강요받지 않았는데 바뀐 환경에서 강요받은 음식이 보기 좋을리 없었다.


 결국 나는 집에 와서 유치원 가기 싫다고 엉엉 울었고 부모님을 난감하게 만들었다. 나름 머리를 써서 화목만 가면 안되겠냐고 하기도 했다. 엄마는 골치아파하긴 했지만 나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내가 단순한 편식을 하고 있는게 아니라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맞이한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유치원을 열 번 넘게 옮겼고 결국 도시락을 먹는, 집에서 40분 거리의 먼 유치원으로 갔다.


 엄마는 그 이후로 집에서 김치를 먹으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 학교에서는 먹었지만, 집에 와서는 김치에 손 끝 하나 안대도 괜찮았다. 그 이후로 차츰 김치전이나 김치볶음밥, 김치찌개를 먹게 되었다. 아직도 생김치는 잘 못 먹지만, 확실한 건 엄마가 나에게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고 했으면 나는 절대 김치를 못 먹었을 것이다.


 음식은 추억이고 기억이다. 마산에서 자란 나는 타지에 대학을 오고 나서 본가를 갈 때마다 소고기가 아니라 생선을 먹는다. 시원한 무로 국물을 내고 문어와 홍합, 두부를 넣어 끓인 경상도식 탕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국이다. 엄마는 가끔 요리로 새로운 도전을 하고는 했는데 몇 가지는 맛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 음식들이 싫지 않다. 사실 중요한 건 맛보다 내가 그 음식을 만났을 때의 환경인 것이다. 김치를 처음에 안 좋게 만난 것은 아쉽지만, 내가 김치를 먹을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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