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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vist Jun 20. 2023

01. 예민한 딸과 책벌레 엄마의 만남

합이 맞는 관계

 나는 아이에게 타고난 기질이 있다는 말을 믿는다. 부모가 기르는 방향과 별개로 태어날 때 갖고 있는 성질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시끄럽고 뛰어놀기 좋아하는 아이를 자리에 앉혀 조용한 아이로 만들 수 있을까?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그 시도가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망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끄러운 아이에게 때와 상황에 맞게 에너지를 발산하도록 가르칠 수는 있다.



 생각할수록 내가 타고난 기질은 안 좋은 쪽으로 갈 여지가 많았다. 나는 자기 영역에 방어적이고 예민했으며,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면 회피하려는 성향도 강했다. 산만했고 다른 사람의 상황에 감정적으로 공감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다행히도 우리 엄마는 아동 심리와 발달에 관심이 많았고 나에게 멋진 선물을 해줬다. 바로 책이다.



 나는 놀랍게도 어릴 때부터 책을 제일 좋아했다. 모든 일에 금방 싫증을 내면서도 책만 주면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앉아서 책만 읽었다. 차에서도 길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24시간 중 대부분을 시간 동안 책을 봤다. 사실 내가 그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아빠가 티비로 야구나 바둑을 봤기 때문이다. 나는 도저히 티비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었고 더욱더 책에 빠져들었다. 얇은 어린이책은 하루에 열 권씩 볼 수 있어서 엄마는 한 달에 수백 권이 넘는 책을 중고로 사고팔았다. 다른 집에는 거실에 티비가 있는데, 우리 집은 안방에 티비가 있고 그 외의 모든 방은 책으로만 차 있었다. 내가 씻거나 화장실을 갈 때도 책을 보니, 물에 많이 젖어 쪼글쪼글한 화장실 전용 책장도 화장실 문 옆에 있을 정도였다.


 

 책을 읽으며 나의 예민한 성질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책의 주인공을 이해해 보도록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딸에게 많은 것을 바란 것 같지만, 엄마는 내가 다른 아이에게 장난감을 빌려줄 수 있지만 다른 아이가 나에게 장난감을 빌려주지 않는 것을 이해하는 어린이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감정적 공감이 힘든 나에게 이유를 나에게 논리적으로 이해시켜 주었다. 어렸던 나는 역지사지의 논리를 납득했고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완벽한 엄마였지만 내가 F였으면 서로 힘들었을 것이다. 엄마는 말을 날카롭게 하고 왜 다른 사람이 상처를 받는지 가끔 이해가 힘든 전형적인 T다. 그리고 나는 엄마의 말에 상처받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아무리 화가 나도 엄마의 말이 논리에만 맞으면 맞는 말이긴 해...라고 납득하는 전형적인 T다. 엄마는 내가 F였어도 나를 사랑했겠지만 지금처럼 솔직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항상 말한다. 엄마와 내가 만난 것은 서로에게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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