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agi(Hikikomori)
온종일 비가 오니
문득 비를 좋아하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비가 오면 신이 났고
비가 오면 즐거웠고
비가 오면 낭만에 빠졌습니다.
비가 오면 혼자도 좋았고
비가 오면 뭉치는 것도 좋았고
비가 오면 그냥 낭만에 빠졌습니다.
비가 올 땐 커피 향이 코를 자극하고
비가 올 땐 술 한잔이 마음을 덥혀주고
비가 올 땐 친구가 그리워 전화를 했습니다.
비가 올 땐 비를 맞으며 걷기도 하고
비가 올 땐 비에 관한 노래를 들으며
비가 올 땐 비와 함께 드라이브를 했습니다.
참 좋았던 시절이었는데
온종일 비가 오는 지금은
몸이 마음보다 먼저 반응합니다.
비가 오면 관절이 쑤시고
비가 오면 머리가 띵해지고
비가 오면 몸관리에 비상이 걸립니다.
비가 오면 운전도 조심하고
비가 오면 먹는 것도 조심하고
비가 오면 몸조심에 비상이 걸립니다.
비가 올 땐 감자탕이 생각나고
비가 올 땐 김치전도 생각나지만
비가 올 땐 쌍화차 한 잔도 좋습니다.
비가 올 땐 모자와 우산을 꼭 챙기고
비가 올 땐 비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비가 올 땐 일기예보를 자주자주 확인합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일을 해야 하기에
저녁과 새벽에 오는 비를 좋아합니다.
비가 올 땐
낭만을 느끼던 저의 모습도 떠오르지만
낭만을 느낄 수 없는 저의 모습에서 세월을 느낍니다.
낭만을 느낄 수 없는 비가 온다고
몸관리를 해야 하는 비가 온다고
비가 오는 것을 싫어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낭만을 느낄 수 없는 비라도
내가 몸조심을 해야 하는 비라도
가뭄을 해결해 주는 비가 반가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