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계절
When You Sense Me Not
제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코리아타운에 산지는 37년째입니다.
또한 와이프를 만나서 26년 차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딸도 이곳에서 태어났고 지금은 22살이 되었습니다.
긴 세월만큼이나 코리아타운은 많은 발전을 이루면서 든든한 한인 상권이 형성되어 이제는 한국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타인종까지도 즐겨 찾고 로스앤젤레스에 오면 꼭 방문해야 할 명소가 되었습니다.
딸은 이곳에서 학창 시절을 시작했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는 5학년이 되기 전까지 한국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한국분들은 학구열이 높으셔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던 좋은 학군의 학교로 자녀들을 보냈습니다.
한국분들이 코리아타운에 많이 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겠지만 똑같은 사정으로 딸이 입학한 학교에는 4학년까지 한국친구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때 한국말을 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한국분인 몽골에서 온 친구였는데 딸이 얼마나 좋았는지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부모들 간에도 인사했고 딸들이 친하게 지내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딸은 그 친구와 함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중학교로 입학해서 8학년 1학기까지는 전혀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딸은 6학년(미국 중학교의 시작) 1학기의 자신의 성적을 보고서는 지금까지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모든 과목에 A학점을 받았고 학교의 리더십 프로그랩에도 참여해서 학교 홈페이지 관리와 졸업앨범을 만드는 일에도 관여했습니다.
이런 딸을 선생님들도 좋아해 주셨고 언제부턴가 다른 한국 친구도 생겨서 집에 놀러 오기도 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만났던 친구는 초등학교 때도 공부를 잘했었고 중학교에 와서도 공부를 잘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딸이 공부를 잘하게 되고 선생님들의 칭찬과 다른 친구들의 관심을 받게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몽골에서 온 친구는 딸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딸을 험담하기 시작했고 없었던 일까지 만들어서 모든 친구들이 딸의 곁을 떠나가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집으로 놀러 왔던 친구까지도 멀어지게 하고 자신들은 더 친하게 지내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졸업식에서도 소수민족을 대표해서 몽골에서 온 친구가 연설을 했습니다.
딸은 오바마 대통령상도 받았지만 연단에서 받지 못했고 그 상장과 메달도 졸업장 밑에서 찾아내는 있을 수 없는 일까지 당했습니다.
그래도 수학선생님과 과학선생님의 따뜻한 포옹이 졸업식에서 있었던 유일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딸은 자신이 가고 싶어 하는 대학교가 MIT공대였기에 유독 수학과 과학 과목에 관심이 많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두 분의 선생님은 딸에게 특별한 분들이었습니다.
"딸! 친구가 없어서 외롭고 힘들겠지만 너는 꿈이 있으니까 너의 꿈을 생각하면서 목표를 향해 지금처럼 열심히 가보자"
마음이 축 쳐져있는 딸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아빠로서 해줄 수 있는 말이 이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딸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새로운 친구도 만나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겨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뒤돌아보면 그 생각은 현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꿈같은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딸이 자신의 목표를 정해놓고 열심히 생활하던 때였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작은 아이 같아도 속은 무척 큰 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딸도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학교생활을 해보겠다고 오히려 아빠를 안심시키는 말을 해주기에 정말 고맙고 대견했습니다.
고등학교 9학년에 진학한 딸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수학은 이미 중학교에서 한 단계를 앞서서 공부했기 때문에 수학과목과 수학이 필요한 과학과목은 10학년 이상의 언니, 오빠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컴퓨터에 관련된 학교 클럽에도 가입해서 활동했고 대학과목도 한 과목을 들으면서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제발 공부 좀 그만하고 자자!" 할 정도로 딸은 열심이었고 그것을 지켜보며 저는 딸이 꾸는 꿈을 함께 꾸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꿈을 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와이프와 결혼한 후에 나름 여러 일에 도전해 보았지만 하는 일마다 계속 순탄하지 않았기에 그때부터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하게 일을 했을 뿐이지 어떤 막연한 꿈이라도 꾸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딸이 꿈을 꾸면서 열심을 내고 나보다 더 노력하는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면서 딸과 함께 같은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딸과 함께 꿈을 꾸면서 나는 일하는 시간도 즐거웠고 몇 년 후에 보게 될 딸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딸의 변함없는 열정에 이 꿈은 꼭 이루어 질거라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