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2007년, 시제철을 맞아 고향마을 재각에서 시제를 모시던 중, 어릴 때 추억에 젖어 쓴 글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5,60대 이상의 장년들만 기억할 것입니다. 묘사를 지내고 있는 산소까지 떡을 얻으러 다니던 개구장이 시절 추억입니다.
겨울이 올 무렵, 대개 양력으로 11월 중순 경에는 고향 마을 아래 윗동네에서는 아제들이 모여 조상님들의 위패를 모시고 철마다 올리는 시제(時祭)가 한창이었다.
산중에 있는 조상님의 묘소까지 제물을 직접 가져가야 하는 번거롭기 짝이 없는 일인지라 요즘은 각 집안마다 잘 지어진 재실에서 간단히 제를 올리고 끝내버리지만, 우리 동기들이 어렸을 적에는 아제와 아주머니들이 며칠 전부터 마련한 떡이며 바다고기, 육고기, 나물과 탕, 과일들을 비롯한 음식들과 어디 그뿐이랴? 제사에 쓰이는 병풍과 크고 작은 목기들을 아주머니들은 머리에 이고, 아제들은 지게로 져서 일일이 조상님들의 묘소에 까지 지고 가서 정성껏 시제 준비를 했다.
겨울의 초입을 알리는 찬바람이 추수가 끝난 텅 빈 들녘을 휭 하고 한번 휘몰아쳐 오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시제 철이 돌아왔다.
열 살 안팎의 어린 동기들이 학교를 파하고 교문을 나선다. 멀리 산등성이에 흰 두루마기를 걸친 아제들이 너울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 우리 동기들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동시에 냅다 논둑을 따라 혹은 그냥 텅 빈 논을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집 마당으로 들이쳐 어깨에 멘 책가방을 대청에 휙 던지고는
-할매, 보자기 오데 있노?
나는 대문 밖으로 내달으면서 할머니가 챙겨준 보자기를 바지춤에 넣고는 골목 중간 중간에서 달려 나와 만난 동기들과 함께 아까 보아둔 산등성이로 달려 올라갔다.
아제들이 너울거린다. 우리들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제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산등성이를 타고 올라오는 초겨울 바람은 우리들이 견디기에는 제법 매서웠지만 우리들은 잘도 버티었다.
제가 끝나면 아제들은 떡이며 대추, 곶감, 시루에 찐 바다고기들을 토막 내어 담은 함지를 뷔페식으로 쭉 늘여놓고는 보자기를 들고 서 있는 우리들을 차례로 불러 한 주먹씩 나누어 주었다. 양력으로 11월 중순부터 11월말 까지 윗동네 아랫동네에 있는 성(姓)씨들의 시제 일을 귀신같이 소문으로 듣고 첩첩산중의 산소까지 찾아가 아제들의 시제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버티고 섰는 것이 우리의 신나는 재미였다.
지난주 일요일(2007년 11월 18일)은 우리 진양 하씨 집안에서 제를 올렸다.
시제에 올라 있는 제일 윗대 할어버지의 '유세차..'에서 제일 나중 할아버지의 '상향..'할 때 까지 보자기를 들고 달려오는그 시절 우리 동기 또래의 아이 놈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