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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재윤 Nov 26. 2022

할머니가 계셨다.

하재윤의 회상.

글쓴이 주: 다음 블로그가 종료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있던 옛글 몇 편을 옮겨왔습니다.

‘하재윤의 회상’이라는 부제로 몇 편 올려볼까 합니다.     


이번 글은 기억이 생길때 부터 중학을 졸업할 때까지 같은 방에서 지냈던 할머니를 기억하며 쓴 글입니다. 같은 방을 쓴 것이 아니라 할머니 방에서 제가 자랐던 것이지요?




할머니가 계셨다.

부제- 하재윤의 회상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는 내가 어릴 적부터 꼬부랑 할머니였다.      


내가 태어난 고향집은 부엌, 큰방, 작은방이 일자로 연결된 몸채에 기역자로 구부러져서 사랑채와 헛간이 달려 있는 조그만 시골집이었다. 큰방은 할머니가 계시고 작은방은 아버지 어머니의 방이었다.      


나는 중학을 졸업할 때 까지 할머니랑 한 방을 썼다.      


허리가 꼬부랑한 우리 할머니는 잠자리에 들어서는 한낮에 몸을 지탱하던 근육의 긴장을 풀어 잠시 허리를 펼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신기하여     


-우와, 할매 허리가 일자(一字)로 펴졌다. 할매 키 크네!!     


하고 무척 놀라워하곤 했다.     


할머니의 젊었던 시절에는 키가 크고 얼굴이 미인이셨던가 보다. 설에 할머니를 뵈러오는 할머니를 몹시 닮은 나이 터울이 많이 나는 친동생 이모할머니의 눈동자가 크고 맑아서 눈매가 참 시원하셨다.      


우리 동기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중학생 형들은 교복을 입었다. 내가 중학2학년 겨울방학이 끝나고 개학했을 때 교복자율화가 실시되었다. 1983년 2월의 일이다.      


나는 같은 동네 손유호 형한테서 중학교 교복을 물려받았다.      


초등학교 6년을 마친 마지막 겨울방학, 내년이면 나는 중학생이 된다. 나는 유호형에게서 물려받은 교복을 벽에 걸어두고 저녁마다 입어보았다.


할머니는 검정색 창이 달린 모자와 금빛 단추가 번쩍번쩍 빛나고 목에 카라(collar)가 채워진 새까만 교복을 입고 들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으신지,     


-재윤아 교복 한 번 입어봐라.     


하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는     


-할매, 교복 한 번 입어 보까?     


하면서 얼른 교복을 입고 티브이에서 본 군인아저씨들처럼 척척 걸어가는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이가 듬성 빠진 입을 환하게 벌리시고 좋아라 하셨다.     


군에서 제대하여 3학년이 되어 복학생이 되었을 때, 우리 꼬부랑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셔서 누워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우리 할머니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동생이 계셨다. 우리 할머니보다 더 일찍 건강이 안 좋아진 이모할머니는 동기 언니를 뵈러 불편한 몸으로 한 해 걸러 한 번 정도 오셨다.


그때마다 이모할머니는 방문 밖에서 우리 할머니에게 큰절을 하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그러면 두 자매는 또 언제 볼까 싶어 아주 많이 우셨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랑 이모할머니가 왜 우시는지.     


할머니는 내가 결혼할 무렵에 거동이 매우 불편해 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 수년 동안 문 밖 출입을 못하셨다. 할머니의 대소변은 어머니가 대신 받아내셨다. 할머니 덕분에 우리 어머니는 대한노인회에서 주는 효부상을 받아야 했다.      


할머니는 내가 쌍둥이를 낳아 증손자들을 처음으로 안겨드리자 당신의 오염된 몸을 내심 걱정해서인지 갓 태어난 증손자들의 얼굴이랑 손은 만지려 하지 않으시고 발만 어루만지시다가     


-둘 다 니가 낳았나?     


하셨다.     


-그라모 할매, 내가 낳았지. 누가 낳노?     


나는 꺽꺽 웃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꽃상여 앞에서 어머니는 참 많이 우셨다. 언니에게 꼭 큰절로 문안을 여쭙던 이모할머니는 언니의 장례에 참석치 못했고, 몇 년 뒤 언니가 갔던 길을 따라 먼 길을 떠나셨다.     


할머니의 아들도 할머니를 따라 가시고, 증손주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할머니 사랑을 듬뿍 받은 손자는 이제는 안 계신 할머니를 그리워할 뿐이다.     


2007년 6월 5일 화요일

오래된나무 하재윤 배상          


2022년 11월 26일 퇴고.

나의 어머니도 올해 2월 소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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