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103일, 교정일 38일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우리 아이는 결국 태어난 지 103일, 교정일 38일에 기관절개술을 했다.
2020년 12월 31일 둘째 봄봄이가 태어났다.
임신 30주 5일 만에 1602g으로 태어나버렸다.
2021년 3월 4일 저녁, 난 봄봄이를 소아중환자실에 혼자 두고 집으로 왔다. 죄책감, 슬픔, 분노, 절망 또 그때 내가 느낀 표현이 또 없을까..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첫째를 돌봐야 했다. 첫째 앞에서는 울지 말아야지 다짐하였다. 오랜만에 엄마를 본 첫째는 ‘엄마’ 하며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런 첫째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그냥 주룩주룩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이제 6살인 첫째는 그렇게 우는 엄마를 보며 슬프기도 하지만 무서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첫째는 전에 없던 분리불안을 겪게 되었다. 내가 둘째 출산 때문에 병원에서 4일, 산후조리원에서 일주일 있어서 첫째와 떨어져 지냈지만 한 번도 나를 찾지 않던 아이였다. 오히려 영상통화를 하자 해도 할머니랑 놀거나 아빠랑 논다고 핸드폰을 쳐다도 보지 않던 아이였다. 그런데 엄마인 내가 둘째 수술로 병원에 다녀온다고 말하고 동생도 없이 며칠 만에 와서는 계속 울고 힘이 없이 지내니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어린이집 등원할 때마다 엄마랑 있겠다고 우는 것은 기본이고, 초반에는 내가 화장실만 가도 엄마를 찾았다. 울지 말아야지 웃어야지 하면서도 순간순간을 못 견뎠었다. 첫째한테 너무 미안하다. 그 후에도 둘째가 병동으로 올라왔다 다시 중환자실로 내려갔다를 반복하느라 첫째를 안정시킬 시간도 없게 된 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3월 6일 토요일, 다시 둘째를 보러 갔다. 이날은 둘째 봄봄이의 원래 출산 예정일이었다. 그래서 더욱더 보고 싶어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었지만 병원으로 향했다. 소아중환자실 간호사 선생님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사진으로 본 둘째는 너무 부어있었다. 우리 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괜히 보러 왔나 싶었다. 더 힘들어 보이는 것 같았다. 예정일도 안된 아기를 수술시킨 내가 다시 한번 원망스러웠다.
탈장수술을 한 소아외과 주치의, 중환자실 담당 교수님, 중환자실 주치의 선생님에게 ‘우리 봄봄이 살 수는 있는 거죠,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거죠’ 계속 붙잡고 물어봤었지만 어느 누구도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의사들은 ‘살 수 있다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지만 난 그 말 한마디만 들으면 희망이라도 보일 것 같았고 언제까지나 둘째를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한마디 해주지 않는 의사들이 너무 미웠다.
주말 주일 사이 둘째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주말부터는 호흡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제 살았구나 했다. 나도 좀 살 거 같았다. 그런데 나아졌다고는 했지만 아직까지 둘째가 왜 수술에서 못 깨어났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고 한다. 폐가 많이 접혀있어서 폐 쪽 문제인 것 같다라고만 했다. 의사들 하나같이 둘째 NICU 때를 자꾸 물었다. 수술 당일 중환자실에서 못 깨어날 때부터 몇 번이고 물어서 똑같은 대답을 몇 번이고 했다. 이른둥이지만 NICU에서 호흡이나 폐에 문제가 없었고 거의 아무 이벤트 없는 아기였다. 의무기록지도 수술 전에 외래 때 제출했다고 하니 의무기록지를 주셨었냐며 찾아보겠다는 말을 한다. 의무 기록도 제출하라 해서 제출했더니 그거 하나 제대로 본 의사 하나가 없는 것 같아 화가 치밀었다.
3월 9일, 호흡이 돌아오니 점점 다 좋아지고 있다며 기관삽관을 빼고 산소만 압력을 주면서 넣어주고 있다고 하였다. 곧 병동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우리 둘째가 정말 기특하다. 그동안 난 울고만 있었는데 우리 둘째는 있는 힘껏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고맙고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