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론에 대한 독립선언
존재론자들에게는 몰라도, '존재한다'는 말은 의외로 별 감흥이 없다. 철학적으로 존재는 증명될 수 없지만, 과학적으로는 존재는 증명될 수 있다. "존재하냐, 존재하지 않느냐"는 질문은 이제 과학과 논리의 문법 속에서 다뤄지는 팩트 문제다. 컴퓨터 회로가 물질적으로 존재하고 전자 신호가 흐르면 AI는 존재하고, 물리적 입자가 감지되면 사물은 존재한다. 요컨대, 존재는 증명 가능한 사실의 문제다. 그리고 나는 그걸 부정하지 않는다. 그걸 부정하면 아무 얘기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그 존재가 과연 중요한가?
존재를 논하는 수많은 철학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존재 자체를 사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선다. 존재의 사실성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의미를 가지는 건 아니라는 입장에 서있다.
내가 관심을 두는 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다. 존재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나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것이 내 삶과 어떤 맥락 속에서 작동하는가—이런 것들이다. 존재론이 '이게 있다'고 말할 때, 나는 '그래서 그게 뭣이 중헌디?'라고 되묻는 쪽이다. 나는 존재론에서 출발해, 의미론을 통과하고, 다시 존재비판으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생각을 굴린다.
이런 사유는 플라톤이나 하이데거 같은 대철학자들처럼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쪽은 아마추어의 자유로움, 실험성, 유동성이 가득한 사고의 현장이다. 나는 철학적으로 말하면 절대주의자도 아니고, 완전한 상대주의자도 아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고 해체하면서도, 존재라는 출발점은 부정하지 않는 모순적 중립자다.
그래서 내 철학의 모래성은 자주 해체되고 다시 세워진다. 존재를 출발점으로 삼지만, 결코 종착점으로 삼지는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 출발점 조차도 모호하다. 존재는 출발, 의미는 여정, 해석은 지도다. 그리고 나는 그 지도를 들고 끊임없이 다른 길을 탐험한다. 어떤 날은 존재가 모든 것의 중심 같고, 어떤 날은 그것이 단지 배경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진다.
결론은 이렇다
존재는 사유의 시작이지, 목적지는 아니다.
존재는 사실일 뿐이고 의미는 이유다.
중요한 건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존재에 우리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이다.
존재는 이미 증명된 것이고, 의미는 장차 부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