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임금 비례의 환상

'일이 쉬운가', '대체가 쉬운가'—그것이 문제다.

by 피디아

세상에는 많은 직업들이 있다.

그리고 그 직업들은 사회에서 각자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대가로 수익을 얻거나 임금을 받는다.

그런데 '노동의 힘듦', '노고의 숭고함'과 임금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때로 누군가는 풋냄새나는 정의감에 근거해서

아래와 같이 주장하기도 한다.

'힘들수록 높은 임금을 받아야지!'

그런데 그 사람에게 반대로

'너의 일이 그만큼 힘들지 않으니까 임금을 낮추겠어'

라는 말을 던진다면?

아마 싸움이 일어나고, 임금협상은 그대로 파투가 날 것이다. 임금은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니까.


이처럼, 정의감에 불타서 성급하게 임금격차를 비판하거나

한발짝 나아가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무구한 발상이다.



질문을 좀 더 근본적으로 던져야 한다.

어째서 직업별로 임금이 다른 것인가?

힘드니까? 그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은 위에서 증명됐다.

어려워서? 괜찮은 접근이지만 명중은 아니다.

때로는 일은 쉬워 보이는데 떼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진짜 문제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쉽게 대체되는가'이다.




경제학적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는 중학교 경제시간에 '희소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배운다.

이는 '시장에서 그 재화가 얼마나 드문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가면 '대체 탄력성'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는 어떤 재화가 다른 재화로 얼마나 쉽게 대체될 수 있느냐를 의미한다. 즉, 대체탄력성은 해당 재화의 희소성에 영향을 끼치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고용시장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체가 쉽다는 것은,

고용시장에서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의미이다.

이는 임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효율 임금 이론이라는 개념도 등장한다.

놀랍게도, '근로자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업이 자발적으로 임금을 높게 지불한다'는 이론이다.

단순하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는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조직이고, 따라서 임금을 낮출수록 유리하다고 1차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시장경제의 플레이어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때로, 대체가 가능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사람'에게는 더 높은 임금이 주어진다.


'특별한 사람'임을 증명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스펙, 개개인의 역량, 그리고 자격요건 같은 것들.

즉, 상대적인 강점이 있는 특별한 사람들은 동일 노동을 수행함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임금을 받게 된다.

똑같이 고기를 썰어서 요리를 하지만,

누구는 주방장의 셰프고, 누구는 아르바이트생이다.

그들은 동일 노동을 하고있―다고 아르바이트생은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도 그것을 동일 노동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AI가 급속도로 발달하는 현대사회일수록

이는 더욱더 심화된다.

많은 직업들이 AI로 인해 대체되고 있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이다.

어쩌면 나 역시 AI에게 밥그릇을 빼앗길 미래 앞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밤새 쓴 보고서를 AI가 5초 만에 작성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월급이 빈곤해지는 이유일 것이다.

그 순간, 나의 연봉협상력은 AI 구독료보다 저렴해져야 한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AI가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더욱더 빠른 속도로 밀려날 것이고,

결국 일반인이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AI를 능숙하게 활용하거나,

AI로 대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최후까지 남을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이 단어는 정의감의 측면에서는 맞는 말로 들리지만,

실상 내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정확히는 "표면적 동일 노동의 비동일 내실 노동"이라고 보아야 한다.


겉으로는 같아 보여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노동인 경우가 많다.

똑같은 족발을 시켜 먹어도 어디는 별점이 4.9점이고, 어디는 별점 0.8점에 고객응대 1.2점이다.

누구도 똑같은 족발을 팔고 있으니 똑같은 가격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성별이나 출신, 연령이나 신분 등의 비합리적인 차별로부터는 노동의 가치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시장에서 발생하는 보상 격차는 그와는 별개의 문제다.


만약, 당신이 힘들게 일을 하는 것 같은데도 임금이 형편없다면,

그런데 그것이 성별이나 출신 등 비합리적인 차별 때문이 아니라면

1. 당신이 임금 협상을 너무 엉망진창으로 했다거나

2. 당신의 자리를 고무찰흙으로 채워두어도 조직이 무리없이 돌아가거나

둘 중 하나이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소득은 힘들고 숭고한 것으로 책정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것으로 책정된다.

시장은 우리가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를 보지 않는다. 오직, 우리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만 본다.

그래서 우리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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