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를 좋아하는 똑똑한 당신에게

세상은 당신처럼 똑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by 피디아

똑똑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그들은 세상의 현상을 구조화해서 보려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실은 복잡하고, 사람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똑똑한 그들에게는, 세상은 무질서한 혼란처럼 느껴진다.

또한, 똑똑하기 때문에 구조화된 시선이 무질서 속에서 거의 본능처럼 작동한다.

그리고 너무 똑똑할수록, 현상을 구조화해서 보는 것이 더 직관적이고 예측가능하게 느껴진다.


이 과정은 효율적일 뿐 아니라, 윤리적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책임은 개인이 아닌 구조로 향하고,

분석하는 자는 냉정하고 이성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리고 구조가 정교할수록, 개념이 날카로울수록

현실은 쪼개지고, 설명은 세련되어 보인다.

그렇게 똑똑함은 구조와 함께 진화한다.


하지만——정말 그럴까?




구조로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시도는

얼핏 지적이고, 때론 매혹적이다.

개인이나 현상은 통제하기도, 설명하기도 어렵지만,

구조는 훨씬 명료해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구조로부터 유도된 결과물이 아니다.


구조를 좋아하는 이들은

사람들을 마치 부속품처럼 다룬다.

그들의 눈에 사람은 '구조 내 변수'이며, 예측 가능한 톱니바퀴다.


그들의 논리는 이런 식이다

"A는 자극에 반응하고, B는 그 반응을 이용해 이득을 취한다.

전체 결과는 예측된 수치 안에 수렴한다."


그 구조는 명료하다. 단 하나, 사람만 빼고.

우리는 명료한 걸 좋아한다.

그런데 '명료함'은, 때로는 '단순함'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한 것으로 설명하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복잡하고 때로는 비이성적인 존재이다.

아무리 복잡한 구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복잡성은 구조의 그것을 넘어선다.


인간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동시에 비이성적이며,

서로 다른 기준과 판단을 가진 집합체이다.

슬픔, 감정, 질투, 미련, 충성심, 망설임,

갑자기 찾아오는 철학적 회의 같은 것들.


현실이 구조에서 이탈하는 순간은 언제나 인간 때문이다.

그 이탈은 오류가 아니라 현실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구조는 인간의 '집합'이다. 인간이 구조의 '부속'이 아니라.

똑같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만약 인간이 구조의 부분이라면,

구조에 대한 이해는 곧 인간에 대한 이해이다.

그러나 사실은, 구조가 인간의 집합이며,

우리는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복잡성을 단순화한다.


즉, 구조를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현실과 구조―그 사이에

인간이라는 변수에 대한 섬세한 조율이 필요하다.

바로 그 틈에서, 구조는 도구가 되고, 현실을 따라가게 된다.



'개념은 틀릴 수 있다'

중요한 말이다.

특히, 개념이 현실과 어긋나는 순간의 태도가 중요하다.

개념은 현실을 설명하는 도구이지,

현실을 강제로 구겨넣기 위한 조형틀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 모델이 아무리 완벽할지라도,

썸녀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남자는 그 모델을 부수기에 충분하다.


그럼에도 개념이 현실과 어긋날 때, 현실을 개념에 우겨넣으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개념이든지 현실에 대한 설명으로 고안된 것이지,

현실이 개념에 맞춰 바뀐 사례는, 내가 아는 한 없다.

설령 그렇게 보일지라도, 그건 개념을 통해 현실을 '해석'한 것이지,

개념이 현실을 '구성'하거나, 현실이 개념에 '수렴한' 것은 아니다.

개념은 현실을 설명하는 언어이지, 그 자체로 현실을 창조하거나 조작하는 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괴리는, 덜 다듬어진 개념에

현실을 무리하게 끼워넣으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그렇게 구조지상주의자들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유의 부정이 아니다.

오히려 사유의 유연성을 요구하는 말이다.




완벽한 구조는 없다.

설령 그런 구조가 있다 해도 현실과 멀어졌다면,

그것은 빛이 바래버린 지도나 다름없다.


다만, 구조를 사랑하는 당신이

개념을 좋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인간은 본디 세상이 설명되기를 바라는 존재이고,

어쩌면 당신이 똑똑하기에 '구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좀 더 또렷해보이고 다루기 쉬웠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완벽한 이론도 있고,

놀랍도록 정교한 모델도 있고,

무릎을 치게 만드는 개념 구조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현실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구조를 통해 감탄을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 감탄은 현실에 닿지 못한 채 메아리처럼 흩어져버릴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생명 탐사라는 말의 뒷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