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은 미치광이를 이길 수 없는가

미친 짓도 반복되면 전략이 되는 세상

by 피디아

현대 정치는 점점 더 이상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기존에는 전략과 정책, 이해관계와 이념이 만들어내는 예측 가능한 질서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질서 바깥에서 움직이는 한 사람이 전체 판을 흔든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문제는 트럼프의 행동이 도무지 '정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정책의 일관성도 없고, 대외전략의 예측 가능성도 없으며, 감정의 조절조차 안 된다. 그런데도 그는 리더로서 지지받았고, 다시 권력의 정점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 이렇게 말한다.

"그 모든 게 계산된 전략이 아닐까?"


하지만 이 가설에는 불쾌한 회피가 있다. 우리는 '정치인이 비이성적일 리 없다'는 가정에 너무 익숙하다. 또한, 비이성적인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그래서 그의 비합리적 행동을 설명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더 껄끄러운 가정은 이것이다.


그는 진짜 미쳤을 수도 있다. 의도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혼란인 사람일 가능성.


껄끄러운 가정에는 더 불편한 질문이 따라온다.

만약 그가 진짜 미치광이라면 그는 왜 통했다는 걸까? 왜 그런 사람에게 힘이 쏠렸을까?

우리는 '이미지', '전략', '카리스마' 같은 단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순서를 되짚어봐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췄고, 그 카리스마가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가 권력을 불러왔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 순서는 정반대일지도 모른다.


힘이 먼저다.


그가 대통령이라는 사실, 그가 세계 최대의 경제·군사력을 쥐었다는 사실. 그 힘이 있었기에 그의 이미지는 포장될 수 있었고, 그 포장은 곧 '카리스마'로 재해석된다.


즉, 그는 강해서 리더가 된 게 아니라, 리더이기 때문에 강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 구조는 굉장히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 구조에서는 어떤 사람이든 리더가 된 순간부터 그에 맞는 카리스마와 전략성을 사람들이 찾아내기 시작한다. 전략이 있어 보이게 만들고, 말이 안 되는 행동조차 '노림수'로 해석하게 된다. 여기서부터는 트럼프의 행동이 전략인지, 비이성인지에 대한 논의는 더 이상 무의미해진다.


결과적으로 이성이 설 자리는 사라진다.


이성은 늘 구조를 따지고, 원인을 분석한다. 그런데 원인과 결과가 역전된 이 판에서는, 어떤 해석도 결국 권력을 가진 자의 행동을 이성적 전략으로 정당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이것이야말로 합리성의 실패다.


말이 안 되는 짓도 권력 아래에선 '전략'으로 인식되고, 반복되면 '정체성'이 된다. 트럼프가 무서운 이유는 그가 똑똑하거나 계산적이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어딘가 결핍되고 충동적일 수 있음에도, 그것이 권력과 결합되었을 때, 우리가 그 행동을 '카리스마'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건,

그가 미치광이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미치광이처럼 행동해도 된다는 권력의 구조다.

그리고, 더이상 트럼프가 이성적인지, 비이성적인지는 중요해지지 않는다.

이성이 무력해지는 지점은 그곳이다.


정상적 질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우스워지고,

그 혼란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결국 혼란 자체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한다.


합리성은 미치광이를 설명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이길 수 없다.




혼란이 전략의 가면을 쓰고, 비이성이 권력을 움켜쥐더라도—이성은 언제까지라도 그것을 통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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