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렌 켈러와 감동 서사의 역설
현대 미디어와 교육은 헬렌 켈러를 '장애를 극복한 인물'로 기념한다. 그녀의 생애는 수많은 위인전과 감동 콘텐츠에서 반복 소비되고, 그 핵심 장면은 언제나 같다—물 펌프 앞에서 'W-A-T-E-R'를 깨닫는 순간, 그리고 설리번 선생의 헌신. 이 반복 구조 속에서 켈러는 위대한 실천가이자 사상가가 아닌, 감동적인 서사의 배경화된 '장애인 아이콘'으로 전락한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장애를 이겨낸 위인'이라는 이 표면적 찬사가, 사실상 그 인물을 위인으로 대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사회를 바꾸고자 했던 정치적 주체, 철학적 글쓰기를 이어간 사유의 실천가로서의 정체성은 전면에서 사라지고, 장애를 극복한 '존재' 자체가 칭송의 전부가 된다. 그녀가 무얼 생각했는지, 무얼 주장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녀가 불리한 조건을 견뎠다는 사실만이 콘텐츠의 주제가 된다.
이는 인간을 '완전한 개인'이 아닌, 특정한 조건 속에서만 가치 있게 여기는 방식이다. 켈러는 여성 참정권을 외쳤고, 사회주의를 지지했으며, 인종차별과 제국주의에 반대했다. 그녀의 저서들은 단순한 체험담이 아니라 사회적 성찰과 급진적 문제의식을 담은 문서다. 하지만 대중은 그 모든 것을 장애를 극복한 사람이 쓴 글 정도로만 치부한다. 그러므로 감동 서사는 위대한 실천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천의 주체를 비정치적 존재로 탈색하는 장치다.
설리번 선생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짜인 이 '특수교육 스토리'는 마치 헬렌 켈러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다는 메시지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헬렌 켈러는 자신의 생각과 판단, 선택의 주체가 아닌, 교육받은 결과물로 재현된다. 이는 위인에 대한 재조명이 아니라, 지워지는 방식의 존경에 가깝다.
결국, 헬렌 켈러는 위인으로 불리지만, 위인으로 대접받지 않는다. 우리는 그녀의 철학을 외면하고, 그녀의 삶의 정치성을 삭제하며, 오직 '감동적이었다'는 감정만을 되새긴다. 그것은 존경이 아니라, 박제다. 우리가 정말 헬렌 켈러를 기억하고자 한다면, 그녀의 장애가 아닌 그녀가 어떤 인간이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