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동 북클럽입니다.

by 여정


사실 이름만 지었고, 세세한 규칙 같은 건 정하지 않았다. 방을 일단 만들고 나서야 간단한 소개 글과 해시태그를 건다. 이름이 ‘사파동 북클럽’이니 사파동에서 북클럽의 모임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장소는... 사파동 어디라도 좋을 것이다. 작은 공원이 될 수도 있고, 동네 카페일 수도 있다.


정기적으로 모여서 같은 책을 읽고 감상을 나눌 거다. 책은 한 달에 한 권이 적당하지 않을까? 2주에 한번 분량을 반씩 나누어 읽어서 감상을 나눠보는 것이다. 그런 내용을 공지사항에 먼저 정리해서 올렸다. 그리고 방의 소개 글에는 이렇게 썼다.


‘사파동 북클럽입니다. 책을 읽고 자유롭게 감상을 나누는 모임입니다.’


간단한 한 줄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한 줄을 더했다. 이건 나의 이기적인, 이 방을 만든 방장으로서의 특권으로 내 마음대로 규칙을 정했다.


‘읽을 책은 방장이 선정합니다.’


그렇게 적고 나자 왠지 모르게 신이 났다. 나의 뜻대로 무언가를 정하고 진행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어쨌든 첫 번째로 읽을 책은 정해져 있었다. 이 북클럽을 만들게 된 계기, 당연히 샬럿 브론테의‘제인 에어’ 일 것이다. 그리고 얼마나 사람들이 들어올지 모르겠지만, 2주 뒤에 첫 독서 모임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루 이틀 동안 채팅방에는 여러 사람이 들락거렸다. 그냥 말없이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 이것저것 물어보다가 뭔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휙 나가버리는 사람, 아무 말이 없어 내가 쫓아낸 사람.......


그래도 나는 먼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첫 번째 읽을 책은 ‘제인 에어’이며 모임은 2주 뒤 사파동의 어느 카페에서 모이겠다고 모임 공지를 올려두었다. 아직 누가 올지 모르는 상태였지만 말이다. 혹여나 아무도 없다 할지라도 나 혼자라도 그 카페에 갈 생각이었다.


‘혼자 책이라도 읽어야지.’


방이 만들어진 3일째 되는 날, ‘목공’이라는 대화명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목공: 안녕하세요.

-정안: 반갑습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28살 사파동에 살고 있는 북클럽장 정안이라고 합니다.

-목공: 네, 저는 32살, 사파동에 살고 있는 목공입니다.


목공? 이름은 아직 밝히기 조심스러운 모양이었다.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근데 왜 대화명이 목공인지 궁금했다.


-정안: 목공이라 하시면 직업이 목공이신 건가요?

-목공: 네, 맞습니다.

-정안: 그러시군요. 저는 취업 준비 중입니다.


왠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의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서 먼저 나 자신을 드러내야 한다고.


-목공: 네, 그런데 공지사항을 보니 책, 모임 일정이 벌써 잡혀 있네요. 저도 바로 참여 가능한가요?

-정안: 네, 가능합니다. 사실 북클럽을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아서요. 혹시 ‘제인 에어’ 읽어보셨나요?

-목공: 아니요, 읽어보진 않았는데 알고는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읽어봐야겠네요.

-정안: 네, 그럼 정해진 분량만큼 읽고 카페에서 만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목공님과의 대화가 끝났다. 건조한 말투였지만 거기에서 뭔가 진지한 태도가 느껴졌다. 이 사람은 이 방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았다. 나로서는 한 명이라도 참여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러나 좀 더 많은 사람과 감상을 나누고 싶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바람을 이루어주듯 한 명이 더 들어왔다. ‘은수’라는 대화명의 그는 25살의 공시를 준비 중인 사람이었다. 내가 취업 준비 중이라고 하니 아주 반가워했다. 말투에서 귀여움이 가득 느껴져 절로 웃음이 났다. 왠지 나보다 어린 동생일 것 같았다.


-은수: ‘제인 에어’! 어렸을 때 읽었던 거 같아요.

-정안: 그렇죠, 저도 어렸을 때 읽었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더라고요. 어렸을 때랑 지금이랑 느낌이 다를 것 같아서요.

-은수: 오, 다를 것 같아요. 저도 다시 읽어봐야겠어요ㅎㅎ


은수 역시 모임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모임은 3명이 되었고, 많지 않은 수였지만 그래도 나는 만족했다. 더 깊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실제 만나는 것에 대하여 불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설레었다. 그렇게 나는 ‘제인 에어’를 다시 펼쳤다.


첫 번째 모임에서는 제인 에어를 반 정도 읽고 만나기로 했다. 정확히는 제인 에어의 어린 시절, 로우드 기숙학교 시절, 손필드에서의 가정교사 생활, 외숙모 리드 부인과의 재회까지의 이야기다. 그 뒤의 이야기는 다음 모임에서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모임까지 2주간의 시간이 남았다. 그 2주 동안 나의 일상은 매일이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며 결제한 강의를 들으며 공부한다. 몸이 뻐근해질 무렵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가 점심을 간단히 차려 먹는다. 커피 한잔을 타 먹고 다시 자리에 앉아 오후 공부를 시작한다. 좀 지겨워지면 그때 책을 펼쳐 읽는다. 자기 전이 원래 정해둔 독서 시간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일정표에서 벗어난다.


그렇게 오후를 보내다 보면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함께 저녁 식사를 한다. 식사 후 소화가 되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조깅을 한다. 하루 종일 앉아 있었으니 이렇게라도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땀을 빼고 오면 샤워를 한다. 그렇게 밤 9시가 되고 오늘 공부한 내용을 빠르게 훑어보고 그러고 나면 드디어 조용한 독서의 시간이 찾아온다. 독서 등을 켜고 책을 펼친다. ‘제인 에어’의 첫 문장.


‘그날은 산보를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은 빠른 듯하면서도 느리게 흘러가 약속된 모임 당일이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가족 외의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치여 지냈으니 다시 시작된 이 고독한 수험 생활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답답했었다. 그렇기에 오늘 이 모임을 고대했었다. 하루에 몇 마디 하지 않고 지냈었는데 오늘은 좀 더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임은 토요일 저녁 7시 30분 동네의 적당한 크기의 카페에서 이뤄진다. 나는 동네 카페에 좀 다녀오겠다고 부모님에게 말씀드렸다.


“책은 집에서 읽으면 되지 않아?”


되돌아온 엄마의 약간 못마땅한 듯한 질문 아닌 질문,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 아빠가 나를 도와주었다.


“가끔 카페 가서 읽어도 좋지. 내내 집에 있으면 답답하잖아.”


아빠의 말에 엄마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집에서 나와 여기서 한 10분 정도 걸으면 있는 카페로 향했다.


-은수: 저 먼저 와있어요! 왼쪽 구석 자리에요.


채팅방에 알림이 떠 보니, 은수님이 보낸 톡이었다. 벌써 도착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이 모임이 정말 이루어진다는 실감이 들면서 왠지 모르게 설레었다. 그러면서 걸음을 재촉하게 되었다.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을 열었고, 왼쪽 구석 자리로 시선을 돌리니 거기엔 한 여자분이 앉아있었다. 약간 밝은 톤의 생머리를 한 앳된 얼굴을 한, 내가 상상했던 느낌을 가진, 그분도 소리를 따라 내 쪽을 바라보았다.


나는 살짝 어색한 미소를 짓고 다가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은수님...?”

“아, 안녕하세요! 정안님?”

“네, 맞아요.”

“반갑습니다. 김은수입니다.”


인사와 함께 환히 웃는 은수님의 얼굴을 보고 왠지 모르게 안도가 되었다. 그 미소에 긴장이 풀려 나 역시 편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이정안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때 딸랑-하는 소리가 다시 들렸다. 우리는 함께 다시 문 쪽을 바라보았고 거기에는 약간 짙은 피부색을 가진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체크무늬 리넨 셔츠의 팔목을 걷고 청바지를 받쳐 입은 다부진 인상을 가진, ‘목공’이라는 대화명이 바로 떠올랐다. 그는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사파동 북클럽...?”


우리가 클럽원이라는 확신의 악수 요청과 달리 그는 묻고 있었다. 그 모순이 뭔가 웃겨서 나는 웃음을 참으며 그 손을 잡았다.


“네, 사파동 북클럽입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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