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by 여정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4시간 정도를 기차에 가만히 앉아 있던 나는 캐리어를 끌고 역 바깥으로 나왔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는 평일 낮이라 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고향 역에 몇 달에 한 번은 이렇게 왔었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늘 시간을 내어 마중 나오셨던 부모님은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평일 낮이다 보니 생업으로 나오지 못한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내가 서울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그리 달갑지 않은 자식의 귀향이었다.


나는 역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택시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바깥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땀이 나기 시작했고, 얼른 택시에 올라타고 싶었다. 내 인생의 무더운 여름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의 여름은 이제 시작되고 있었다.


“사파초등학교 앞에 내려주세요.”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 택시에 올라탄 나는 목적지를 말했다. 사파초등학교 근처 주택가가 나의 본가였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잠시 눈을 감았다. 알아서 집에 오라던 엄마의 약간 차가운 말투가 떠올랐다.


“그 좋은 직장을 왜 그만둔다는 거야?”


엄마는 내가 서울에서 누구나 알아준다는 기업에서 일하는 것을 늘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려서부터 시키는 대로 말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했던 딸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을 졸업했다. 또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직장에 들어가 4년 넘게 일하고 있는 것이 엄마의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그렇게 묵묵히 정도를 걷고 있던 내가 힘들다는 말은 몇 번 했었지만 정말 이렇게 관둘 줄은 생각도 못하셨을 테니, 엄마의 그 실망과 약간의 배신감을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역시 일을 그만둘 때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었으니까.


4년간의 직장 생활은 나에게 있어 지금처럼 무더운 여름과도 같았다. 신입 때는 그 뜨거운 열기에 더운지도 모르고 정신을 못 차렸다. 가족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만 곱게 자라온 내가 갑자기 생존만이 목적인 광야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나부랭이는 어떤 이에게는 그저 방해물에 지나지 않았다. 물이 모자란데 자신의 물을 나눠줘야 하고,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데 잠시 멈춰 서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니까. 운이 좋은 이들은 좋은 사람을 만나 그 광야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은 낙오되기 쉬웠다. 나는 그 광경을 가까이에서, 또 멀리서, 늘 보았다.


나는 운이 좋다 할 것이다. 그래도 4년 간 그곳에서 살아냈으니까. 광야라고 하여 사람이 아주 못 살 곳은 아니다. 중간중간 오아시스가 있었고 길을 가며 사람들을 만나 서로 물물교환 하며 정보도 얻는, 그리 황폐한 곳은 아니었다. 물론 도적을 만나 내 것을 억울하게 빼앗기기도 했고, 이미 다 말라버린 오아시스를 허무함과 함께 마주하게 된 적도 있고, 인색하고 냉정한 사람에게서 상처받기도 했지만.


4년간의 훈련은 나를 숙련된 생존자로 만들었다. 그냥저냥 거기서 먹고살만한 능력을 갖추었다. 그러나 나는 더 버티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도착했습니다.”


어느새 사파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계산을 하고 짐을 내린 나는 택시를 보내고 잠깐 학교 쪽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적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곳에서 뛰놀던 예전의 내 모습을 잠시 떠올리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캐리어가 드르륵 끌리는 소리를 내며 집으로 향하는 내 뒤꽁무니를 쫓아왔다.


“난 내 일을 사랑해요.”


일을 그만두기 전, 먼저 퇴사한 친구와 하와이로 휴가를 갔을 때 들은 현지 가이드의 말이었다. 구릿빛 피부에 금빛 머리칼을 가진 여자는 해양 스포츠를 체험하기 위해 찾아온 나와 내 친구에게 말을 걸었었다. 그 말을 하며 웃고 있던 그의 얼굴에는 한 치의 가식이나 주저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나는 그에게 부럽다 하며 내 일이 얼마나 힘든지 늘어놓았었다. 그때 보인 그의 안쓰러운 얼굴, 우리는 더 그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여행은 내 퇴사 결심에 확신을 더해주었다. 어느 일이나 힘들겠지만 최소한 저 말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저 말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늘 안정적인 것을 추구하고 누군가가 이미 길을 낸 길만 걸어온 나에게 애초에 내가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일이 무엇인지까지는 알아낼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살 수 있는지도.


“일단 좀 쉬고 나서 공무원이나 공기업 준비하려고.”


그래서 나는 그만두고 뭐 할 거냐는 엄마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이렇게 대답해야 더 말이 길어지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엄마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이직 준비를 병행하면 안 되냐고 물었다. 거의 매일 야근하고 집에 오면 자기 바쁜데 어떻게 병행하냐며 짜증 섞인 대답으로 그 대화를 겨우 끝낼 수 있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문 열고 들어간 집 안은 조용했다. 그리고 익숙한 냄새를 맡으며 집 안에 들어섰다. 학생이었을 때는 몰랐던 집이 주는 편안함을 나는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학생 때는 서울 생활이 즐거워 방학에도 집에 잘 내려가지 않았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는 최대한 자주 가려고 했다. 서울의 원룸은 주지 못하는 것이 여기에는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주는 이 편안함과,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면서 나는 다시 광야로 나갈 힘을 얻었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나는 좀 긴 휴식을 이곳에서 보낼 작정이었다.


그리고 난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그 시간이 아주 조금은 필요했다. 그것이 다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는 유아퇴행적인 행보일지라도. 그래서 그때 내가 했어야 할 일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내가 진정 사랑하는 일을.


캐리어를 내 방구석에 두고 침대에 풀썩 엎드려 누웠다. 여기는 내 집, 내 방이었다. 서울에서의 집은 내 집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와도 같아서 정이 가지 않았다. 이곳, 아무도 없는 지금의 내 집. 그 안락함에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나를 지배하지 못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