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함께 다닐 그녀들

가족처럼 편안한 사람들과의 여행

by 작은영웅

분기별로 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다. 무려 6명이나 되는 멤버이지만 일 년에 네 번씩 꼬박꼬박 여행을 다닌다. 여행 마지막날 다음 여행일자와 장소를 잡고 심지어 숙소 예약까지 마친다. 그러니 빼도 박도 못하고 핑계도 대지 못한다. 뜻밖의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전원 참가는 원칙이다.

주로 국내여행을 다니는데 이번에는 추운 날씨를 핑계 삼아 대만에 다녀오게 되었다. 여행지는 내가 추천했다. 3년 전에 자유여행으로 다녀온 가오슝의 날씨가 너무 나에게 딱 맞은 날씨였기 때문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낮에는 반팔을 입어도 되는 따뜻한 날씨에 대한 기억이 다시 가오슝을 찾게 된 이유였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자유여행을 추진할 재능 있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우리는 패키지여행을 선택했다. 대신 동남아 패키지의 최악 아이템인 쇼핑은 빠진 상품으로.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설렘, 영하 10도를 넘기는 추운 날씨에 따뜻한 곳으로 떠난다는 행복감, 비행시간 2시간 만에 계절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 등이 떠나는 우리를 기쁘게 했다.

비행기에 내리자마자 공항 바깥 날씨를 체크했다. 은근 쌀쌀했다. 대만에 한파가 왔다고 한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코트나 패딩을 입었다. 하지만 우리는 얇은 스웨터를 입고 야시장에 간다. 바람은 불지만 피부에 닿는 느낌이 상쾌하다. 가을밤에 산책 나온 느낌이다.

그 기분 그대로 야시장에 가서 고구마볼이랑, 오징어튀김이랑, 지파이를 사 먹었다. 과일은 망고가 없어서 석과라는 이상한 과일을 사 먹었다. 망고는 5월에 나온다고 한다. 근처에 누가크래커 맛집에 가서 갓 나온 크래커를 한 상자씩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방 하나에 모여 근처에서 사 온 맥주와 새우깡 비슷한 과자와 야시장에서 사 온 튀김과 누가크래커로 안주를 했는데 너무 맛있었다. 안주가 맛있으니 맥주가 마구마구 들어간다.


조식은 그저 그랬으나 남이 차려주는 음식에 그저 감동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은 맛있게 먹고 컨딩을 향해 떠났다. 대만 최남단 아름다운 바닷가이다. 전에 자유여행 때 거리가 멀어서 못 가본 곳이라 기대가 컸다.

2시간 남짓 달려서 도착한 바닷가는 정말 아름다웠다. 옥색 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초록초록한 해안선.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조금은 제주와도 닮아 있는 그곳에서 산책하고 뛰어다니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바람이 세기가 남다르다. 거세게 부는 바람으로 머리가 산발이다. 이쁜 사진 찍기에는 글렀다. 하지만 그 바람 속에서도 사진 찍기 좋아하는 우리 멤버는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는다. 서로 조심하라고 하면서 바위에 올라가고, 바다를 향해 나아가고 정신이 없다.


다시 가오슝으로 돌아와서 용호탑에 갔다. 호숫가에 만들어진 대만의 상징물, 용의 입으로 들어가 호랑이 입으로 나오면 ‘악운이 행운으로 바뀐다’고 한다. 좋은 얘기라서 우리도 그렇게 했다. 반대로 하면 어떻게 되나 궁금해하면서.


숙소에 다시 돌아와서 근처에 술집을 물색했다. 오늘은 아들이 부장 승진한 분이 한턱 쏘기로 했다. 대만돈으로 환전을 안 한 우리는 카드가 가능한 곳을 찾아야 했는데 의외로 가오슝이 카드가 안 되는 술집이 많았다. 카드가 되는 곳을 겨우 찾아가서 파파고를 활용해 겨우 주문을 마치고 하이네켄 생맥주로 목을 축였다. 대충 주문한 안주는 기가 막히게 맛있고 우리가 찾은 집이 핫플인지 평일밤인데도 젊은이들도 가득하다. 분위기에 젖어서 하이네켄 생맥을 여러 잔 마셨다. 그럼에도 총 결제 금액이 10만 원 남짓이니 물가가 저렴하긴 한 것 같다.


세 번째 날은 우리나라 경주와 비슷한 타이난에 갔다. 대만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수학여행 온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 이곳은 수학여행 철인가 보다. 우호적인 눈빛으로 코리아를 외치는 아이들이 반가웠다. 이제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이니까.

타이난의 대표 고적인 적감루, 공자묘, 안평고보 등을 돌아보았으나 갑자기 투입된 어설픈 가이드에게서 아무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래서 그냥 사진만 찍었다.

가오슝에 돌아오는 길에 들는 불광사는 규모가 일단 커서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다. 대만이 불교국가라는 생각을 여기서 했다.


마지막 날은 가오슝의 명소인 치진섬과 영국영사관, 보얼예술특구를 둘러봤다. 3년 전에도 왔던 곳이라 자유여행과 패키지여행의 차이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는 치진섬에서 자전거도 타고 카페에서 망고 빙수도 먹고 영국 영사관 카페에서 차도 마시고 했는데 그런 것을 할 시간은 없다. 보얼특구 써니힐 펑리수집에서 무료로 주는 차를 마실 수도 없다. 중국인이 대만 여행을 안 와서 그런지 전에 줄 서던 곳이 이제는 모두 한가해 보이는데 너무 여유 없는 일정이 아쉽다. 이래서 자유여행을 하나보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아무 불만 없이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면 된 거지 뭐.


떠나는 날 유난히 날씨가 좋다. 따사로운 볕을 마음껏 누리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중국처럼 기름지지 않은 담백한 느낌의 현지식으로 식사를 마무리하고 공항에서 커피 한잔으로 마무리한 후, 비행기에 올랐다. 갈 때는 당기지 않던 컵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온 동네 냄새를 피우며 먹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눈발이 휘날리고 온 세상이 눈으로 가득했다. 마중 나온 남편이 반가웠다. 눈길을 조심조심 운전해서 가느라 오랜 시간 걸려서 집에 도착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 집 앞 창문에 펼쳐졌다. 이렇게 나는 또 계절을 이동해서 여기 겨울 속에 서 있다.

이 정도면 참 멋진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