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사이의 두 사람이 함께 한 3일
가끔 뜻밖의 사람과 뜻밖의 여행을 떠날 때가 있다. 이번 제주도 여행이 그랬다. 직장에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던 중 동행하게 된 이랑 제주도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겨울에 제주 동백이 그렇게 예쁘다고.
그러면서 그이가 겨울에 제주도를 같이 갈 수 있느냐고 물었나 보다. 난 무조건 좋다고 했겠지. 늘 여행에 대해서는 오케이니까.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이가 물었다. 이제 비행기표를 끊자고. 이미 가족과 제주 여행을 준비했던 나는 당황했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어서 1월에 나는 또 제주에 오게 되었다.
큰 기대감은 없었다. 약속을 지키자는 마음이었고 단둘이 오는 여행은 처음인지라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여러 지인들과 수도 없이 여행을 다녔지만 둘이서 여행은 경험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상대방의 취향에 맞출 것. 이게 내가 정한 이번 여행의 방침이었다.
공항에서 만나자마자 한 나의 첫 질문이 이것이었다. ‘어디 가서 무엇을 하고 싶어요?’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미술관, 책방 이런 곳에 가고 싶어요.’ 낯설었다. 내가 평소에 제주 여행 때 잘 가지 않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이번에는 평소에 가지 않은 곳으로 한번 가보자. 그것도 이색적이고 좋지 않을까.
일단 첫날은 광치기 해변에 갔다. 바람이 너무 많이 불었고, 손은 시렀다 1월 초에 만났던 제주와 너무 달랐다. 옷을 가볍게 입고 왔는데 피부에 닿는 바람의 느낌이 달랐다. 바깥에 조금만 있으면 머리가 띵하고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서둘러 카페로 들어가 창문을 통해서 바다를 감상해야 했다. 그런데도 편하고 좋았다. 함께 한 이가 긍정적이고 따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늘 이렇게 말했다.
‘바람이 불어서 시원하네요,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아요.’
‘창밖의 풍경이 너무 좋아요. 어쩜 이렇게 멋진 카페를 알고 있어요.’
그녀는 운전을 하고 나는 갈 곳을 정했는데 그이는 내가 안내하는 곳마다 좋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감탄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이는 그걸 잘하는 사람이었다.
소박한 숙소에 도착해서도 감탄, 아침 조식에도 감탄, 그이의 감탄은 나를 행복하게 했다. 특히 숙소 창문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일출은 너무 감동적이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풍경이 창밖으로 펼쳐지자 가슴이 두근거리까지 했다.
다음 날은 동백꽃 투어를 했다. 한 달 전에 모두 와본 장소이지만 그이의 감탄이 좋아서 내가 가장 좋았던 곳으로 안내했다. 동백꽃은 조금은 색이 바랬지만 바닥에 떨어진 꽃잎이 너무 아름다웠다. 붉은 융단을 깔아 놓은 듯한 풍경이 너무 예뻤다.
게다가 평일이어서 그런지 우리가 간 곳마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심지어 귤체험을 하고 귤차를 마신 카페에서는 우리만 있었다. 너무 사람이 없어서 신경 쓰는 나에게 그이는 이런 고즈넉함이 너무 좋다고 행복해했다.
그이 덕분에 찾아가게된 바닷가 작은 책방은 소박하지만 작은 울림을 주었다. 글쓰기와 여행을 좋아하는 책방지기의 삶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무료인 줄 알고 갔던 곳을 비싼 돈을 내고 들어갔는데 별 볼 것이 없었다. 속았다고 구시렁거리는 나를 보며 나름 좋은 이유를 만들어 내는 그이가 참 따뜻했다.
직장 동료였지만 그이가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이제야 그이의 장점을 알게 된 것이 아쉬웠다. 그이는 다른 회사로 이직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떠나도 여행을 함께 다니자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다 보니 작별 여행이 된듯한 느낌도 있다.
마지막 날에는 녹차밭과 동굴에 갔다. 동굴샷을 찍고 녹차밭을 구경하고. 비밀의 숲에 가서 또 열심히 인증샷을 찍었다. 내가 사진을 찍어 주면 열심히 찍히는 그녀가 사실은 사진 찍히기를 싫어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다. 그녀의 모든 행동이 나를 배려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배려와 감탄. 이 두 가지가 나이 들어가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면 다른 이들로부터의 배려에 익숙해지고 이를 당연시하기 마련인데, 타인의 배려에 감탄할 줄 알고, 더 나아가서 타인을 배려해 준다면 좋은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와 함께할 때 불평하고 못마땅해하는 태도는 정말 버려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타인이 나에게 갖는 마음을 헤아리고 그 노고를 생각한다면 최소한 불평은 하지 말아야지.
이번 여행을 그이와 함께 하면서 배려와 감탄이 타인에게 주는 효과를 몸소 체험했다. 3일간의 여행이 그이에게도 참 좋은 여행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