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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by 작은영웅

소설을 좋아하진 않지만 스릴러를 좋아한다. 굳이 범죄소설이 아니어도 스릴러 요소를 가미한 소설이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어린 시절에는 셜록홈스 시리즈를 많이 읽었지만 커가면서 애거서 크리스티에 흠뻑 빠졌다. ‘오리엔트특급 살인사건’이나 ‘나일강 살인사건’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말미 부분에 탐정이 모든 관련자들을 모아 놓고 범인을 확정 지을 때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애거서의 매력에 빠진 이후로는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도 스릴러 계통을 좋아하게 되었다.

내가 보통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순정 만화나 로맨틱 코미디와 같은 장르를 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다.

소녀 시절 심취했던 ‘캔디’를 예로 들어보자. 주인공 캔디가 설움을 당할 때마다 그녀의 주위에는 4명의 멋진 남자가 있다. 나는 그중에도 앤서니를 좋아했는데 그 만화를 보면서 캔디에 감정이입을 하면 너무 행복했을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 모든 것을 가졌으나 캔디 때문에 남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이라이자라는 여자 아이가 불쌍했다. 감정이입을 이라이자에게 함으로써 그 만화는 나에게 고통이 되었다. 캔디를 향한 질투심 때문에 만화를 다 읽고 나서도 일주일은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성향은 지속되어서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도 역경 속에서도 온갖 사랑을 다 받는 여주인공이 아닌 그 옆에서 질투하는 악역에 자꾸 마음이 가는 바람에 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대신 선택한 것이 범죄 영화였다. 그런 영화 속에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엑스트라고 사랑받기는커녕 온갖 범죄에 휘말리며 개고생을 한다. 더 이상 질투의 대상일 수 없다. 여주인공을 질투하는 이상한 증세를 가진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것이다. 형사와 여주인공 사이에 로맨스가 생긱기도 하지만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그마저도 부러울만한 것은 아니어서 편안한 마음으로 오로지 범인이 누군가에만 관심을 두면 된다. 범인을 제대로 추리했을 때의 뿌듯함에 반전 매력까지.(머리가 좋아진다는 착각까지)


스릴러는 킬링타임과 스트레스 해소에 효과적이다.

요즘 대세가 스릴러인지 각종 드라마에 스릴러가 가미된다. SF나 사랑 이야기 등과 버무러진 스릴러는 괜찮은데 스릴러가 공포나 호러를 만나면 별로이다. 영화에 대한 예비지식이 없이 영화관에 갔다가 공포 관련 영화를 보고 오면 일주일 정도는 집에 온통 불을 켜놓고 지낸다. 어두운 곳이 무섭기 때문이다. 뛰어난 상상력 때문에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게 몇 번 고생을 하고 나니 공포 쪽은 아예 시선도 두지 않는다.

공포가 가미되지 않은 현실에 일어날 법한 스릴러는 그렇게 무섭진 않다. 내 주변에서 바로 일어날 수도 있는 택배, 도어록, 스토커와 관련된 스릴러를 볼 때면 나하고는 거리가 먼 상황으로 여겨서 그런지 현실 공포를 유발하진 않는다.


그래서 난 어제도 스릴러를 읽었고 오늘도 스릴러를 읽을 것이다. 이러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건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궁금함으로 나를 빠져들게 하는 스릴러의 유혹을 떨치기 어럽다.

나에게 기대감을 주고 나를 즐겁게 해주는 스릴러 작가들을 좋아한다.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작가가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아직 국내에는 추리소설의 대가라고 할만한 인지도를 가진 추리소설 작가는 없는 것 같다. 차츰 생겨나리라 믿는다.

나를 설레게 하는 유일한 오락이 스릴러인데 미국 소설은 호흡이 너무 길고, 일본 소설은 많이 읽다 보니 조금은 식상하다. 그것이 한국형 스릴러를 기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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