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산골짜기에 작은 마을에서 살았다. 하루에 2번 버스가 다니는 곳이었다. 그런 외진 곳에 있던 마을 입구에 우리 집이 있었다. 차가 다니는 학교 앞 길에서 보면 우리 집이 보였다. 시골집에 어울리지 않게 집 마당에는 온갖 정원수들이 심어져 있었다. 뒤뜰에는 유자나무가 잔뜩 있어서 가을이면 노란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곤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구경삼아 들어와 감탄을 내뱉던 그 집은 우리 가족의 자랑거리였다. 원래 그 집은 도시에 살던 부자가 고향 마을에 별장처럼 만든 곳이어서 고급적인 취향이 가득 찬 집이었다. 아이들이 뛰어놀만한 마당은 없었으나 겉보기에는 그럴듯한 집이었다. 외지에서 들어와 이 집을 구입한 아빠는 애지중지하셨다. 정원은 늘 잘 관리되고 있었고 LP판 음악을 들으며 마루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후 도시로 이사 나온 후 우리 집은 항상 아파트였다. 아파트에서 북적이며 살았던 우리 형제는 딸이 넷이고 아들이 하나라서 딸 넷이 이층 침대 두 개를 놓고 기숙사처럼 한 방을 썼다. 내 방 갖기가 소원이었던 나는 결국 내 방을 갖지 못하고 살다가 결혼을 했다.
내방이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 나는 결혼을 하면 20대에는 20평,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에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돌이켜보면 그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아왔다. 비록 대출은 있었지만 두 딸아이에게는 넓고 쾌적한 예쁜 방을 각자 만들어 주었다. 내가 못 이룬 꿈을 아이들을 통해 이룬 셈이다.
아이들이 자라서 집을 떠나 분가하고 난 후 40평대 아파트에서 우리 부부 둘이 산다. 전에는 방이 많으면 한 방은 독서방, 한 방은 영화방 이런 식으로 꾸미고 살아야지 했었는데 온 집이 내 것이 되니까 그런 의욕들이 사라졌다. 그저 청소하기만 버겁고, 혼자 있다 보면 텅 빈 집이 허전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굳이 큰 집이 필요 없어서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는 친구들 집에 가보면 아기자기하고 아늑해 보여서 신혼집처럼 예쁘게 꾸며 군더더기 없이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말에 남편과 둘이 집에 있어 봐도 거실에서만 오락가락하는 게 일상이다 보니, 굳이 큰 집이 필요하지 않다. 집에 혼자 있으면 거실이 서재도 되었다가, 영화관도 되었다가, 식당도 되었다가 변이가 가능해서 굳이 구역을 나눌 필요도 못 느낀다.
유명한 작가들처럼 작업실에 출근하는 개념으로 방 하나를 멋진 작업실로 꾸며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는데 아직은 출근해서 작업할 게 없다.
나중에 은퇴를 하면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고, 그러면 집이 나의 놀이 공간이 되었다가 작업실이 되었다가 할 것이다. 집이 나의 소중한 공간이 되었을 때를 생각하면 40평대의 이 공간을 멋지게 꾸미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시간이 될 때까지는 다른 공간들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한 곳에 정착해서 변함없이 사는 것보다 공간을 바꿔서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도 해본다.
지루함을 싫어하고 싫증을 잘 내는 성격에 집안에서 가구 배치라도 바꿔보는 걸 즐기는 나, 이런 나에게 매일 똑같은 집에서 일상을 살아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남편을 바꿀 수도 없으니 집이라도 자주 변화를 주어야 생동감 있는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밖으로 돌 수밖에.
청소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더러움을 잘 견뎌 내는 나도 가끔 정리와 청소 충동을 강하게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벤트로 힘들게 정리와 청소를 한다. 그러고 나서 뿌듯하게 집안을 둘러본다. 하지만 그때뿐이다. 집은 다시 방치되고 더러워진다. 남편은 청소해 주는 사람을 부르라고 하지만 집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아직 내키지 않는다. 이런 마음을 버리면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좀 더 나중에는 그렇게 해야지.
지금 이 순간도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종일 집을 청소해서 안락한 공간을 만들까, 아니면 집을 탈출해서 예쁜 카페 투어에 나설까.
일단 오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 카페로 가야겠다.
청소는 나중에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