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보다는 만남을 위한 여행

딸을 만나러 가는 길

by 작은영웅

결혼한 큰딸 아이 생일이 어제였다. 생일 당일은 자기들끼리 이벤트가 있을 것 같아 다음날 길을 나선다. 평소 생일을 챙기는 자상한 엄마가 아닌지라 아이는 조금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반기는 눈치다.

임신 6개월에 접어들면서 입덧은 조금 가라앉았지만 아직 잘 먹지 못하는 아이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아이는 차로 운전해서 가면 4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산다. 운전을 못하는 내가 딸 집에 가려면 전철을 두 번 갈아타고 2시간 남짓 걸려서 가야만 한다. 쉽사리 움직이기 어려운 거리이다.

택시를 타고 가면 얼마나 나오는지 검색해 봤는데 3만 원이 조금 넘었다. 나중에 딸이 아이를 키우다가 급하게 나를 찾으면 택시를 타고 가면 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하여튼 오늘 나는 맘먹고 휴가를 내서 딸 집에 방문하기로 했다. 12시에 딸 집 근처 번화한 식당가에서 만났는데 아이가 선택한 메뉴는 삿포로식 카레덮밥이었다. 나오는 길에 친구 인스타를 봤는데 삿포로 여행 중이었다면서 그 친구가 부러워서 음식이라도 삿포로 음식을 먹고 싶다는 것이 음식 선택의 이유였다. 일본식 카레는 나도 좋아하지만 아이가 비싼 메뉴를 고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웠다.


맛있게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여러 가지로 안쓰럽다. 여행을 좋아하는 딸아이가 ‘아이가 태어나면 당분간 해외여행은 못 가겠지’ 하길래 ‘엄마가 봐줄 테니 어디든 다녀와. 유럽여행도 괜찮아.’라고 말해 주었다.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혼자서 손녀를 돌본다는 생각에 겁이 좀 나지만 같이 웃어 주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딸이 좋아하는 에그타르트집에 갔다. 새로 생긴 집이라는데 앉아서 먹을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결국 포장을 해서 집으로 가기로 했다. 딸 집이지만 가자고 하지 않으면 가지 않은다. 아무리 엄마지만 보여주고 싶지 않는 모습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이 그렇게 하자고 하니 난 불만이 없다. 카페에 앉아 있는 것보다 집에 편안하게 있는 게 더 좋으니까.


패딩을 입으면 아직 임산부 티가 나지 않는 딸과 마을버스를 탔다. 이럴 때 내가 운전을 못하는 게 조금은 아쉽다. 버스 카드를 찍는데 기사분이 둘이 많이 닮았다고 하신다. 큰아이는 생김새가 나보다 남편을 많이 닮았는데 아마도 분위기가 비슷한가 보다. 작은 키, 하얀 얼굴, 웃는 모습 등이 닮았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집에 도착해서 아이가 내려준 커피에 에그타르트를 먹는다. 잘 어울리는 맛이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뒹굴거리면서 아이의 회사이야기, 태어날 아이의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눈다. 난 그저 들어주고 맞장구 쳐주고 칭찬해 준다. 쓸데없는 조언은 금물이다. 관계만 나빠질 뿐이니까.

아이가 자신의 어릴 적 사진이 들어 있는 앨범을 가져온다. 큰아이는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였다. 우유도 많이 먹지 않고, 밤에 잘 자지도 않고, 이유 없이 잘 울었다. 어린 엄마였던 나는 먹이고, 기저귀도 갈아 주고, 안아주어도 우는 아이를 감당하지 못해서 같이 울 때도 많았다. 키우기 힘든 아이였다.

워킹맘이었던 나는 그 시간들이 힘들었다. 지금도 낳는 것보다 키우는 게 열 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하고 4년이 되어도 아이 낳을 생각을 안 하는 아이를 보며 안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자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기에.

앨범을 보며 그때를 떠올리니 많은 감정이 올라왔다. 얼마 후면 이렇게 예쁜 아이가 거실을 기어 다니겠지 생각하니 기쁜 마음이 들다가도 그 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할 딸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딸아이랑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딸아이의 살아가는 모습이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구나. 내가 살아온 삶이 아이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구나. 나의 좋지 않은 모습까지 아이가 따라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책감이 느껴진다.

남편을 대하는 태도, 시부모님을 대하는 태도, 집안의 경제 활동 등등. 나랑 유사한 점이 많았다. 딸아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하니 새삼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이제까지 보여준 삶의 모습은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라도 본보기가 될만한 삶의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아이는 앞으로 과거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를 키워나가겠지. 자신이 받았던 좋은 부분은 따라 하고, 싫었던 부분은 하지 않을 것이다. 외모는 그다지 닮지 않았지만 비슷한 생활 태도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게 된 딸아이를 보며 책임감을 다시 한번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철에 임산부 자리를 보는 마음도 예전 같지 않다. 아이는 재택근무를 주로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전철로 출근을 하는데 많은 사람이 배려해 준다고 한다. 배가 부르지 않아도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달고 다니면 주위 사람들이 챙겨서 앉혀 준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중간에 아이를 안고 탄 사람이 있었는데 나이 든 어르신이 얼른 일어나서 양보를 해주시는 것을 보았다. 그런 따뜻한 마음들이 보기 좋았다.


딸을 만나 아이가 만들어 가는 세상을 엿보고 돌아온다. 아이가 이룬 세상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흘러가기를 바라면서 나의 세상도 잘 지켜나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엄마가 만들어 가는 세상을 지켜볼 것이고 그것이 보기 좋다면 아이도 엄마를 닮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멋진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