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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친구들

by 작은영웅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어릴 때는 무척 내성적인 아이였다. 목소리는 모기만 했고 자신감이 없어서 어른들 앞에서는 더욱 말을 못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발표도 잘하고 무대 위에서 춤도 잘 추었다고 하니 초등 6학년 때부터 부모님을 떠나 남의 집살이 하면서 사는 통에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런 성격 탓에 친구를 사귀기도 쉽지 않아서 주로 등교 첫날 옆에 앉은 아이가 주로 단짝이 되었다. 그룹으로 다니는 적극적인 아이들과는 일 년 내내 말 한마디 안 하고 지냈다. 성격도 소극적인 데다가 키도 작았기 때문에 자리도 항상 앞자리였다. 키 큰 뒤쪽 아이들은 나를 귀여워했던 것 같고 괴롭힘을 당하거나 특별히 나를 싫어한 경우는 없었다. 아마도 눈에 띄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키대로 번호를 정했는데 1학년때는 고만고만했던 1,2,3번이 절친이 되었다. 나는 3번였는데 1,2번이 쌍둥이였다. 눈이 크고 빼빼 마른 두 아이는 재미있고 좋은 아이들이었으나 쌍둥인지라 둘이 너무 친해서 가끔 외로웠다.

그래서 한 명을 더 영입했고 네 명이서 친하게 지냈다. 근데 이 아이가 거친 면이 있어서 나하고는 맞지 않았다. 어울려 지냈지만 조금씩 멀어졌다.

그러다 여름 방학이 되었는데 나는 그 아이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펼치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화선지에 빨간 글씨로 써 내려간 편지, 내용은 나에게 배신당했다는 분노의 내용이었다. 혈서 느낌(아마도 붉은 펜이었을 거다)이 나는 그 편지는 너무 섬뜩해서 답장도 하지 않았고, 2학기 내내 그 아이를 피해 다닌 기억이 있다. 어린 마음에도 미움을 가장한 그 아이의 사랑이 두려웠던 기억이 있다.


그러면서 2학기에 새로운 친구들과 가까워졌다. 한쪽 다리를 저는 소아마비를 앓는 친구와 늘 그 아이를 돌보는 다른 아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두 아이와 어떻게 가까워졌는지 생각나지 않지만 친해진 이후로는 주말까지도 많이 어울렸다.

소아마비 친구는 얼굴이 예쁜 부잣집 아이였다. 시험기간에 그 친구집에서 셋이 밤을 새워 공부했다. 당시에는 귀했던 음식들을 계속 먹으면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려서 주말이면 셋이 야외스케치를 나갔다. 풍경 좋은 곳에 이젤을 펴놓고 그 아이가 그림을 그리면 우리 둘은 돗자리에서 친구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맛있게 먹곤 했다. 그렇게 붙어 다녔는데 반이 바뀌면서 자연스레 멀어졌던 것 같다. 아마도 이 친구는 지금도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지 않을까. 타인의 마음을 읽어내는 예리한 눈매와 당찬 성격의 이 아이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다리는 고치지 않았을까 지금은 뭐든지 가능한 시대니까.


2학년 때는 첫날 바로 옆에 앉았던 얼굴이 동글고 어른스러우며 공부도 잘하던 친구였다. 그 아이는 공부로는 라이벌이었고, 마침 그 아이랑 나는 갓 태어난 막냇동생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춘기 소녀들에서 어린 동생의 탄생은 다소 민망한 일이었으므로 둘이서 속닥거리며 어린 동생의 성장에 대해 얘기를 많이 했다. 이제 이가 났다는 둥, 물건을 잡고 선다는 둥, 언니야 했다는 둥. 서로의 집에 가서 아이랑 놀아주기도 했던 것 같다. 절친이 라이벌이니 공부도 열심히 해서 둘이 번갈아 가며 1등을 하기도 했다. 학년이 바뀌고 반이 갈라지면 친구들은 멀어졌다. 매일 다른 반에 있는 친구를 찾아다닐 열정까지는 없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교실에 아는 애가 하나도 없었다. 이 때는 번호와 자리는 키순이었기 때문에 나란히 앉은 1,2,3번이 친구가 되었다. 이 키 작은 친구들은 그 뒤로도 인연이 이어져서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나는 친구들이다. 비슷하게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결혼시키고 하는 인생의 과정을 함께 한 소중한 친구들이다. 부부동반으로 여행도 가고 우리끼리는 더 많이 여행을 한다. 만나면 편안하고 사심 없고 순수한 친구들. 그런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고3 시절에는 힘든 시절이었던 만큼 친구에 대한 집착이 컸던 것 같다. 그때 절친이었던 아이는 눈이 동그랗게 크고 마른 몸매에 참으로 예쁜 아이였다. 귀엽고 사랑스럽고 내 말을 정말로 잘 들어주었다. 자율학습 중간에 어두운 운동장 벤치에 앉아 내 인생의 모든 애달픈 사연들을 쏟아 내고, 울고 했었다. 그럴 때면 그 아이는 내 등을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당시에 집안에도 사건이 많아 마음 둘 곳 없던 나는 친구에게 마음을 많이 주었다.

그런데 대학입시가 끝나고 공부를 곧잘 했던 나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으나 친구는 대학 진학을 하지 못했다. 내 이야기만 하느라 친구의 형편에 무심했던 나는 졸업식 후에 친구의 연락처도 모르게 되었다. 이사를 가버렸기 때문이다. 알아보려고 했으면 가능했겠지만 새로운 대학 생활에 바빴던 나는 그 친구를 서서히 잊었다.

하지만 가끔 외로움이 밀려올 때는 그 친구가 생각난다. 나의 하소연을 한없이 받아주던 그 친구가. 예쁜 아이였으니 지금 잘 살고 있겠지 하면서 가끔 그 친구를 그리워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쉬움과 그리움이 많다. 능력이 된다면 찾아서 만나보고 싶은 친구도 있다. 옛 연인이 그립듯이 옛 친구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려온다. 늙어 가는 나이에 소녀 시절의 친구를 만나면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이란 출발과 끝이 유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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